<채식주의자>를 읽고
별안간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모든 사건은 폭풍처럼 갑자기 일어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영혜는 고기를 섭취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욕망에서 배제되어 갔다.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 내리는 육신, 힘 있는 덧없음의 아름다움. 그녀는 나무가 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질은 영혜의 뼛속에 스며있었다. 저녁 빛에 불타는 미루나무처럼 어린 영혜의 가슴은 불타고 있었다. 우리는 손으로, 발로, 죽은 살점을 씹어 먹는 이빨로, 새치 혀로 그리고 이따금 시선으로 타자를 죽이고 해친다. 그러나 영혜는 그녀의 둥근 젖가슴처럼 아무도 헤치고 싶지 않았다. 점점 말라가는 육체로 영혜는 그토록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고통은 생생하고 가득했다. 하늘을 가벼이 날아다니는 새가 되어야만 비로소 고통은 멈추리라.
지극히 평범할 것 같았던 영혜는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녀의 내면 깊은 곳 상처처럼 모든 이의 가슴에는 그렇다 할 상처가 있을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육신을 벗어나 영혜는 자유로 무장한 혼이 되고 싶은 걸까. 그러나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끈질기게 그녀의 육체를 괴롭힌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둘러싸여 내가 아닌 타자의 욕망을 구겨 넣는 것이다. 기껏해야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이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바보같이.
저서는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 상을 수상하고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에서는 찬사가 쏟아지는 서평을 받았으며 마침내 2024년 저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수상 소식에 뒤늦게 한강의 작품 세 편을 연달아 일독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충격적인 폭력과 생생한 고통 그리고 답 없는 질문들이 질펀하다. 유독 <채식주의자>는 그 전개가 짜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라 삽시간에 완독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영혜는 그녀를 둘러싼 남편과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선에서 그려졌다. 주변인의 시선에서도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과 찢기는 고통은 생생했다. 그녀는 끝까지 주도적인 화자가 되지 못하고 소설은 종지부를 찍는다. 어쩌면 그녀는 나무가 됨으로써 복수가 하고 싶었을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