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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승무원 이야기

얼굴뼈 자르는 의사의 세상 보기


코로나로 비행기를 탈 일도 없는데 느닷없이 승무원이 내 머릿속에 소환된 것은, <승무원 룩북>에 대한 뉴스 때문이다. 그 뉴스가 그 유투버를 나한테까지 노이즈 마케팅 해준 셈이다. 여성 유튜버가 속옷 차림으로 등장해 국내 모 항공사 승무원 복장과 매우 유사한 승무원 복장을 입은 후 선정적인 촬영 포즈를 취한다고 알려진 이 동영상은, 승무원들을 성상품화하고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거센 항의와, 국내 항공사 측의 법적 대응으로 도마 위에 오르면서 몇 번씩이나 기사화 되더니, 얼마 전 결국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면서 또 다시 뉴스 기사가 올라왔다.


승무원이 회자되는 뉴스를 보고 문득 몇 년 전의 내 환자 생각이 났다.


* * *


비행기로 여행을 하게 되면 대부분 대한민국 국적기를 선호하게 된다. 서비스가 훨씬 품격 있고, 안전에도 한층 더 믿음이 간다.



생각해보면, 필자가 의사면허를 딴 이후로 29년간 탔던 한국 국적기의 여성 승무원은 거의 전부 미인 일색이었다. 용모를 보고 뽑지 않고서는 확률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심증이 간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 채용할 때 용모, 키, 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이나 미혼 조건 등을 제시할 수 없다고 한다. 인권위원회가 ‘국내 항공사들이 승무원 채용에 신장 조건을 내걸어 지원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차별적 행위’라며 시정 권고를 한 이후 국내 항공사들은 신장 제한을 풀기로 했다고 하는데, 과연 키와 외모를 따지지 않고 신입 승무원을 채용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신입으로 보이는 승무원들도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환자 A가 어머니와 함께 필자를 찾아온 것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인 수 년 전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입이 특징적이었다. 중등도 이상의 돌출입이었고 웃을 때 잇몸이 꽤 많이 보였으며, 돌출입수술의 대상이 확실해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A가 이미 발치교정을 해버린 상태라는 점이었다. 이미 위, 아래 치아 총 4개를 발치해버리고 3년간 교정을 했건만, 돌출입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웃을 때 잇몸은 더 많이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치아 4개를 이미 잃은 환자에서, 돌출입수술을 위해 치아 4개를 더 빼는 결정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이 경우 대안은, 약 6개월간의 수술 전 교정을 통해 발치했던 공간을 다시 확보한 이후에, 그 공간을 이용해 돌출입수술을 하는 것이다. 환자 A에게 술전교정 그리고 돌출입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나니, 가만히 듣고 있던 환자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다소 당황스러워진 필자가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다. A는 이미 힘들게 발치교정을 끝낸 것도 억울한데다가, 아픈 기억과 후회도 밀려오고, 다시 교정하고 수술 받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A는 솔직했다. 그리고 순수했다. 그녀의 꿈은 승무원이었다. 이미 승무원 채용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모양이다. 승무원만큼 미소가 중요한 직업도 드물 것이다. 웃을 때 잇몸이 많이 보이는 증상(거미스마일;gummy smile)은 특히 친절과 미소로 응대하는 직종에서 흠결로 보일 수 있다. 거미스마일은 비호감을 유발하는 개그소재로도 자주 쓰인다.


A는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잘 알겠습니다. 사실 제 꿈이 승무원인데, 저희 집이 넉넉하지 않아서 지금은 수술할 여력이 못됩니다. 발치교정도 어렵게 대출받아서 했거든요. 그런데도 돌출입이 그대로여서...일단, 방법이 있는지만 알아보러 왔어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책감이었을까? 딸을 다독거리는 A의 어머니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이 때였다.

필자의 머릿속이 채 정리되기 전에,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잠시 만요...우리 병원에서...일하실래요?


-네?


-우리 병원에서...리셉셔니스트(receptionist; 접수담당자)로 일을 하고, 내가 월급을 줄게요. 그 월급을 모아서 수술을 하는 거 어때요. 그리고 나서, 못 다한 꿈에 재도전을 해봅시다.


-네? 정말요?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해주신다면, 저야 너무 감사하고 좋죠.


이렇게 해서 A는 필자의 병원 리셉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사실 1인 성형외과전문의 병원에서, 리셉셔니스트를 따로 두는 것은 사치다. 없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선한 마음, 솔직함이 나를 움직였다. 필자가 누군가의 꿈을 돕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월급은 꼬박꼬박 A의 통장으로 지급되었고, 몇 개월이 지나 수술전 교정을 마친 그녀는 필자에게 마침내 돌출입수술을 받게 되었다. 당시 우리 병원 직원 신분에 걸맞은 비용의 혜택도 제공했다.


A가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이제 그녀와 우리 병원도 서로 작별한다는 의미였다. 애초부터 리셉셔니스트는 필요하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포기 못할 다른 꿈이 있었다.


* * *


직원이었던 A의 핸드폰 번호가 필자에게 저장 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무심코 SMS를 확인하다가 A의 프로필 사진을 보게 되었다.


뿌듯했다.

그녀는 원하던 항공사의 승무원이 되어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진 속의 그녀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보니, 넘 아름답네요. 내 작품! 승무원 꿈 이루었군요!


-원장님! 잘 지내시죠? 감사합니다 ㅎㅎ 네, ***항공 다니고 있어요!!


그녀가 꿈을 이룬 것이 오로지 필자의 수술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쟁률이 높은 항공사 면접시험에 합격한 것이, 전적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와 외모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그녀에게 해준 더 값진 선물은 외형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뜻이 있다면 길이 열린다는 자신감, 진실과 열정은 통한다는 믿음, 복을 부르는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 A가 앞으로 혹여 삶에서 잠시 좌절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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