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또래보다 덩치가 커서 힘깨나 쓴다고 여겨졌지만, 감수성 풍부하고 눈물이 많았다. 가까이서 날 관찰한 가족들은 종종 날 울리려는 장난을 쳤다. 난 그들의 유치한 장난에 놀아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특정한 자극에 쉽게 굴복했다. 지금은 얼마든지 감정과 표현을 다르게 할 수 있는 닳고 닳은 어른이지만, 그때는 느낀 대로 표현하는 방법밖에 몰랐다. 한마디로 순진했던 것이다.
시골 외가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나는 자연스럽게 동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항상 소, 강아지, 고양이 등의 동물이 있었다. 그것들을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감촉, 비가 내리면 진해지는 특유의 냄새, 먹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항상 그들과 가까이 있고 싶어서 엄마에게 동물을 키우자고 몇 번 얘기해 봤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우리 집은 아파트라 마당이 없고, 가족들이 심한 비염을 앓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엄마는 엄청 무서운 존재여서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건물 밖으로 나와 걸어가는데, 교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떠드는 말이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무척 신나는 분위기였다. 난 호기심에 이끌려 천천히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은 종이 상자 주변으로 삥 둘러앉아 있었는데, 다들 머리를 숙여서 상자 속을 보고 있는 탓에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상자 안에서 친숙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삐약삐약삐약.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병아리였다. 열 마리쯤 되는 병아리가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 커다랗고 노란 실뭉치처럼 보였다. 몇 마리는 연신 고개를 흔들며 주위를 살폈고, 몇 마리는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졸고 있었다. 둥글게 모여있는 아이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병아리 주인인 것 같았다. 아저씨 앞에는 한 마리에 300원이라고 쓰인 푯말이 놓여 있었다. 그날 주머니에 300원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300원이 있었더라도 병아리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서운 엄마를 거스를 배짱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아이들이 병아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떠나가는 만큼 병아리는 줄어들었고 어느새 한 마리만 남겨졌다. 난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병아리를 쓰다듬다가 집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외로운 병아리가 불쌍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TV를 보며 놀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주라는 엄마의 말에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보니 동생이 서 있었다. 매일 보는 동생이라 특별할 건 없었다. 다만 동생은 혼자가 아니었다. 두 손으로 받쳐 든 반투명 비닐봉지 속에 노란 실루엣이 보였다. “형아! 이거 봐라. 나 병아리 샀다.” 그 순간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동생의 얼굴 위로 무서운 엄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 생각이 없는 동생은 해맑게 웃으며 병아리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난 엄마의 반응이 무서워 잔뜩 긴장했다. 곧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은 싱겁게 정리되었다. 엄마는 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키울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였다.
“형아! 이거 겨우 산 거야. 한 마리밖에 안 남아 있었거든. 다른 애들한테 뺏길 뻔했어.” 동생의 말을 들으니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난 병아리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동네 슈퍼에 가서 두꺼운 종이 상자를 얻어왔고, 바닥에 휴지를 두툼하게 깔았다. 상자 안에 들여놓은 병아리는 낯선 환경 때문에 불안해했다. 계속 삐약거리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마치 엄마를 부르는 것 같았다.
“병아리 파는 아저씨가 이거 물에 불려서 먹이라고 했어.” 동생의 손을 보니, 작은 비닐봉지에 쌓인 좁쌀이 놓여 있었다. 난 납작한 접시에 물을 조금 따르고 그 위에 좁쌀을 쏟았다. 그리고 상자 안에 놓았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병아리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저 계속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다음 날부터 우리 형제는 병아리에게 모든 관심을 쏟았다. 학교가 끝나면 잽싸게 뛰어서 귀가했고, 집에 오기가 무섭게 병아리를 쓰다듬으며 놀았다. 첫날은 병아리가 좁쌀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아 걱정했지만, 다음 날부터 곧잘 먹기 시작했다. 다만 접시에 놓인 좁쌀이 아니라 내 검지에 올려놓은 경우에만 먹었다.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병아리는 하루가 다르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쑥쑥 자랐다. 며칠이 지나자 병아리는 소리에도 반응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종종종종을 외치면 바로 달려올 정도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난 병아리에게 푹 빠져버렸다. 동물과의 교감이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몇 주가 지나자 병아리의 노란 털 사이사이에 흰 깃털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만지면 감촉이 확연히 달랐다. 노란 털이 강아지의 느낌이었다면, 흰 깃털은 새의 것이었다. 닭이 조류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변화였지만, 당시 나는 꽤 아쉬웠다. 어린 동물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귀여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더 흐르자 노란 털은 모두 빠지고 흰 깃털만 남게 되었다. 먹이도 곡식부터 채소, 과일까지 다양해졌다. 닭으로 변한 병아리는 더 이상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자신의 구역에서 스스로 먹고, 싸고, 졸았다. 몸집이 커질수록 풍기는 냄새 때문에 엄마는 난처해했고, 나의 관심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외할아버지댁을 방문할 때 닭 상자를 들고 간 적이 있었다. 매일 좁은 공간에서 사는 닭을 잠시나마 넓은 마당에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댁의 넓은 잔디밭을 밟아본 닭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더니, 곧 돌아다니면서 땅을 쪼기 시작했다. 잠시 잊고 있던 야생성이 살아나는 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보통 닭은 애완용으로 키우는 동물이 아니다. 당연히 아파트 베란다의 상자보다는 넓은 마당이 어울렸다.
혹시 개들이 물까 걱정스러워 닭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외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외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닭을 잡고 들어 올리더니 온몸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얼마 후 닭을 가만히 내려놓는 할아버지의 표정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현섭아. 네가 가지고 온 닭의 항문을 보니 아무래도 병에 걸린 것 같구나.” 당시 항문이라는 단어를 몰라 외할아버지께 되물었던 기억이 있다. 외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닭이 병에 걸리면 똥구멍이 지저분해지고 짓무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너무 커버려 아파트에서 키우긴 힘드니, 옆집에 주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책임감이 완전히 형성되기 전이었고, 닭에 대한 관심도 떨어진 상황이라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할아버지와 함께 닭을 들고 옆집으로 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는 퉁명스럽게 생긴 여자애가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여자애는 하던 놀이를 멈추고 쪼르르 다가왔다. 여자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외할아버지는 손으로 머리를 쓱 쓰다듬었다. “지은아. 우리 손자가 키우던 닭인데 너무 커버렸구나. 네가 맡아서 키워보는 게 어떠니?” 여자애의 얼굴에 웃음이 묻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퉁명스러운 표정은 사라지고 환한 얼굴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잘 키울게요.” 닭을 맡기고 외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키우던 동물을 포기하면서 오는 미안함과 이제는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만약 아직 노란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였다면 포기했을까? 솔직히 말해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치료해 주기 위해 더 극진히 보살폈을 것이다. 그러나 닭은 더 이상 병아리가 아니었고, 나의 관심도 처음과 같지 않았다.
며칠 후 외할아버지 집을 다시 방문했다. 닭을 두고 온 게 계속 맘에 걸려서 난 도착하자마자 옆집으로 달려갔다.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당 한쪽 구석에 여자애가 혼자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닭 어딨어?” 단도직입적인 나의 질문에 여자애는 천천히 일어나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다가왔다. “쪼그만 게 어디서 반말이야? 어딨긴 어딨어? 네가 주고 간 바로 다음 날 죽었다. 어쩔래?” 잠시 멍하게 서 있었는데, 그 뒤에 들려온 여자애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여자애는 내가 돌아간 후에 닭에게 모이를 주었지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만지려고 할 때마다 도망가는 통에 짜증스러웠고, 몇 번 시도하다가 되지 않아서 그냥 포기했다. 닭은 여자애를 피해 마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울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나온 여자애의 눈에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닭의 모습이 보였다. 방과 후에 묻어주려고 했으나,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동네 개들이 물어간 것 같다.
그 후 꽤 오랫동안 나는 부끄러웠다. 편의에 따라 한 생명을 쉽게 포기했다는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온 우주를 끌어안는 것만큼 무겁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포기함으로써 병아리의 우주는 허무하게 끝났다. 설사 외할아버지 말씀처럼 병에 걸린 게 맞았더라도 계속 키웠으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 사건을 겪은 후, 나는 무엇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보다 키울 때 가져야 할 책임감과 이별한 이후에 오는 상실감이 훨씬 무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운전하며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듣고 끄적거린 것치곤 꽤 길어졌다. 누군가는 하늘나라로 가버린 가수가 보고 싶다고 하겠지만, 난 얄리가 훨씬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