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오후의 초등학교 앞은 우산을 든 부모들로 북적인다. 우산을 챙겨가지 않은 딸이 생각난 엄마, 어린 아들이 걱정되어 나온 아빠 등 그곳에는 우산 종류만큼 다양한 사연이 있다.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가장 큰 감정의 교집합은 사랑이 아닐까?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우산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틈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환한 얼굴로 뛰어오는 아이들을 보며 보상받는다. 아이는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부모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따뜻한 감정의 교류 속에서 아이들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어느새 북적이는 사람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학교 건물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이가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꽤 굵은데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끝을 보며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입고 있는 후드티의 모자라도 뒤집어쓰면 좋으련만 아이는 떨어지는 빗물을 머리로 받아내고 있다. 잠깐 사이에 젖은 머리는 이마에 달라붙고 머리카락 끝을 따라 이어지는 빗물이 마치 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살짝 떨리는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규칙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겨울비가 내리는 추운 날 우산 없이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기억은 35년을 거슬러 유년 시기로 날 옮겨 놓았다.
지금은 맞벌이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통념에 따라 남편은 열심히 일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부인은 집안일부터 교육까지 그 밖의 모든 것을 챙겼다. 직장과 가정을 양분하여 하나씩 책임지는 모습이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사업을 하느라 항상 바빴고, 집에 있을 때는 주로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성 역할이 철저하게 구분된 시절의 아빠들은 돈만 잘 벌어온다면 그 밖의 나머지는 무관심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난 자연스럽게 엄마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엄마와 보냈다. 성인이 되어 들은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난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였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커서 분리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무서웠던 엄마는 어르고 달래다가 급기야 매를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혼난 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때려놓고 미안하다며 엄마가 건네던 빨간 사탕만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기억은 선택적으로 저장되고, 심지어 편의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는 좋은 예이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꽤 멀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한눈팔지 않고 걸어도 족히 15분은 걸렸던 것 같다. 엄마는 첫날만 데려다주고 다음부터는 혼자 다니게 했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매일 집을 비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친구들은 뭔가 표정부터 달랐다. 자기는 대우받고 있다고 우쭐거리는 모습이었다. 엄마와 함께 등교하는 친구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인적이 드문 등굣길을 찾는 것뿐이었다.
입학 후 시간이 좀 흐른 어느 봄날이었다. 아침부터 부는 강한 바람 때문에 만개했던 벚꽃이 마구 흩날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금방 하늘이 어두워져서 마치 저녁이 된 것 같았다. 산만한 저학년답게 아이들은 어디선가 들은 얘기를 주워섬겼다. 사탄이 출몰하거나, 외계인이 침공하는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들떠서 떠들고 있는 사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여름 소나기 같은 굵은 빗방울이 교실 창문을 때리며 흘러내렸다. 마침 미술 수업이 있던 날이었고,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담임 선생님(심지어 성별도 가물가물하다.)은 아이들에게 비 내리는 풍경을 그려 보라고 말했다.
종례 시간이 다가와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우산을 가져온 아이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머지 아이들은 부모님이 올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게 했다. 창밖으로 교문을 나서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열에 아홉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교문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몰려나오는 아이들 틈에서 자신의 아이를 금방 찾아냈다. 마치 먼바다로 사냥을 갔다 온 남극의 펭귄들이 거대한 무리 속에서 자기 새끼를 찾아내듯이 간단해 보였다.
교문이 보이는 창문에 빼곡하게 붙어 기다리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을 빨리 데리러 온 것에 우쭐대며 나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그 불안의 크기는 한 손으로 만든 눈덩이만큼 작았지만, 나를 포함해 세 명이 남아 있는 무렵에는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영민아, 영길아! 엄마 오셨다.”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돌아보니 한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바지 밑동이 무릎까지 젖어 있는 걸 보니, 멀리서 걸어온 모양이었다. 나랑 같이 창문에 붙어 기다리던 마지막 두 명이 아주머니 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쌍둥이들이 떠나가고 교실에는 나와 선생님만 남게 되었다. “현섭아. 아무래도 엄마가 바쁜 일이 있으신 모양이네. 선생님이 우산 빌려줄게. 이거 쓰고 가렴.” 난 곧 엄마가 올 거 같으니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빌려준 우산은 너무 크고 무거웠다. 손잡이 쪽을 잡으면 무게 때문에 자꾸 흔들렸고, 위쪽 우산대를 잡으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보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람이 심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교문 밖으로 나온 나는 평소에는 가지 않던 대로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왕복 8차선으로 차들이 속도를 내서 달리는 구간이었다. 처음 등교하는 날, 그 길은 위험하니 다니지 말라고 한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엄마를 기다리느라 이미 많이 늦었고, 불안했던 나는 집까지 가는 최단 거리인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빨리 엄마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던 나의 눈에 초록빛으로 깜빡이는 신호등이 보였다. 우리 아파트 단지로 가기 위해서는 그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난 아무 생각 없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은 친절하게 남은 시간을 숫자로 표시해 주지만, 그때는 초록빛 신호등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곧 빨간불로 변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에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급하게 뛰어와 횡단보도와 맞닿은 연석 위에서 점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다음 순간 난 누워있었다. 뒤통수가 너무 아팠고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승용차가 미끄러져 오고 있었고, 누워있는 내 다리 쪽으로 빠르게 굴러오는 바퀴가 보였다. 난 반사적으로 상체를 지지해서 다리를 들어 올렸고, 내 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승용차가 멈춰 섰다. 난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몰랐다. 그저 비에 젖은 엉덩이가 축축하다는 생각을 했다.
“얘! 괜찮니? 아픈데 없어?” 놀란 표정의 아주머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주위로 몇 명이 빙 둘러 서 있었는데, 그중 자동차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도 있었다. 아저씨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차를 타고 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뺑소니로 처벌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아까 넘어질 때 가방에서 떨어지는 걸 봤는데, 이거 받으렴.” 아주머니가 내민 손 위에는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이 돌돌 말려 있었고, 도화지 여기저기에는 비에 젖은 분홍색 벚꽃 잎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집에 도착해 보니 엄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섭아. 올 시간이 지났는데 안 와서 걱정했잖아.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 들어와?” 황당한 나는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도 데리러 오지 않은 엄마를 탓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엄마는 내가 우산을 가지고 간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걱정하는 게 싫어서 방금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뭐 하느라 옷이 이렇게 다 젖었어? 어서 씻고 나와. 돼지고기 찌개 끓여 놨으니까. 엄마랑 같이 먹자.” 어린이의 회복력은 놀라웠다. 집에 오는 길은 험난했지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게 되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