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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 있나요?

by 윤현섭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범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유년기 시절의 나 역시 의식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했다. 특히 가족들이 많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친척 형들을 만나는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그들은 나보다 키가 크고 힘이 셌으며, 아는 것도 많았다. 어느 오락실이 가까운지, 떡볶이는 어디가 맛있는지 등의 유용한 정보를 줄줄 꿰고 있었다. 난 동생으로서 따라다니기만 하면 재미가 보장되는 상황이 좋았다. 그리고 그 재미는 내가 형들의 키를 넘어설 즈음까지 이어졌다. 성인이 된 이후 연락이 뜸해지고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지만, 내 기억 속에 그들은 여전히 친근한 개구쟁이로 남아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기억이 많아지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오래된 기억일수록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옅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마치 새로운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기존 파일을 지워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외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만큼 외할아버지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난 외할아버지 집을 자주 방문했다. 어린 내가 가면 항상 이모들이 반겨 주었고, 아파트에서는 쉽게 키우지 못하는 동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곳은 그린벨트 안에 있는 목장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은퇴 후 젖소를 키우며 우유를 납품하는 일을 했다. 개, 고양이, 오리, 닭 등이 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어린 나는 그것들을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갓 태어난 강아지를 품에 안을 때의 포근함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옆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짖던 어미 개 역시 기억난다.)

외할아버지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맨손체조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일과시간에는 외삼촌과 함께 열심히 목장 일을 돌봤다. 어떤 일을 오래 하게 되면 경지에 이르듯 소와 관련된 외할아버지의 지식은 방대했다. 웬만한 질병은 직접 진단하여 약을 쓰거나 주사를 놓았으며, 송아지 출산도 직접 처리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항상 외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송아지가 태어나는 장면을 종종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일곱 살쯤 되던 해의 겨울로 기억한다. 그날따라 외할아버지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산통을 시작한 어미가 새끼를 낳지 못하고 계속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집안에는 어린 나도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평소 같으면 쉴 새 없는 나의 질문에 자상하게 대답해 주던 외할아버지도 그날만큼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몇 시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송아지의 앞다리가 빠져나왔다. 외할아버지는 앞다리 양쪽에 밧줄을 묶은 후 외삼촌과 함께 당기기 시작했다. 영차영차. 구호를 맞춰가며 얼마나 당겼을까? 송아지의 코와 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미의 자궁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급해진 외할아버지는 더욱 힘껏 밧줄을 잡아당겼고, 송아지는 태반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왔다. 외할아버지는 태반을 주워 먹으러 몰려든 개들을 쫓아버린 뒤 외삼촌에게 수건을 이용하여 송아지의 몸을 문지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바로 송아지의 코에 입을 대고 이물질을 빨아내어 땅바닥에 뱉은 후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곧 외할아버지가 내뱉는 하얀 숨소리가 조용한 사육장 안에 가득 퍼졌다. 얼마 후 외할아버지의 간절함 때문인지 송아지는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깜빡거리더니 곧 목을 가누고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옆에 서 있던 외할머니는 따뜻한 우유병을 송아지에게 물렸고, 외할아버지는 그제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쓱 훔쳤다. 그리고 행여나 송아지가 죽을까 하느님, 부처님을 찾으며 기도했던 어린 날의 나도 같이 안도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난 외할아버지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송아지를 챙겼고, 무럭무럭 자라는 송아지의 모습을 보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곤충 한 마리 죽이는 것을 꺼린다. 모기는 논외로 하고) 바른 자세의 중요성, 식사예절, 천자문 교육 등 나에게 누구보다 선한 영향을 끼친 고마운 사람.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오늘따라 외할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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