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따라 해 봐요~이렇게~♬

프레임을 바라보다

by 이별난

지난 이야기


나는 최 선생님이 몇 년간 출강했던 유치원에 후임이 될 위기(?)를 탈출하고자 소위 잘리려는 마음을 품는다. 그녀의 수업을 참관하기 위하여 유치원에 방문한 첫날 반갑게 맞아주는 유치원 관계자(원장님 이하 아리따운 선생님)의 웃음에 이내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난 (이 웃음을 더 봐야겠다는 의 ㅈ... 아;; 이건 지난이야기에 없던 거구나. 워~워~) 오히려 수업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불태우며 최 선생님의 수업을 지켜본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

2010. 겨울


봄이 온다


참관수업은 몇 차례 계속 됐고 그때마다 넥타이핀의 각 1도까지 신경 썼다. 마지막 동행을 마치고 후임으로 확정되었다. 봄 신학기에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유치원 문을 나섰다. '난 당당히(?) 최 선생님의 후임이 되었다. 따스한 봄이 오면 그녀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다.'


벽을 넘다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지만 최 선생님의 벽을 어찌 넘어야 할지 몰랐다. 일단 그녀의 인상 깊었던 수업을 따라 하기로 했다. 내가 출강하고 있던 기관수업(어린이집 수업, 유치원 수업, 센터 수업 등)에서 최 선생님의 방법을 따라 해 보았다. 따라 해 보고 내게 맞지 않는 옷들은 벗어서 잘 개어 놓았다. 맞지 않는 건 지금 소화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고 훗날 어떻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안 입던 옷이 짝을 만나면 살아날 때가 있다.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옷들은 잘 챙겨서 여러 가지 연출도 시도해 봤다. 최 선생님이라는 벽을 넘기 위해 겨울을 보냈다.


2011. 봄


봄의 설렘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첫 수업 아침이 밝았다. 거울 속 나를 봤다. '오호. 나름 괜찮네. 아자. 할 수 있다.' 설레고 긴장되었다. 흡사(?) 이건 맘에 드는 이성을 처음 만나러 나가는 기분이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 인사를 하고 3층 수업교실에 먼저 올라갔다. 책상을 배치하고 교구 상태를 점검한 후 아이들을 인솔하러 2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한 줄 기차의 기관사는 나였다. 40분 수업동안 아이들과 즐겁게 웃으며 머무르게 될 교실역에 도착했고 최 선생님이 수년간 앉았던 자리에 내가 앉았다. 벅차올랐다. 항상 첫 수업 이 순간만은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이외엔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다!!


봄에 보다


원장님은 아직 내 실수업을 본 적도 없고 내 됨됨이를 모른다. 더군다나 분이 누구더냐. 남자선생님을 원에 들이지 않던 분이다. 또 난 누구더냐. 사욕에 마음을 일순간 바꾸는 인물로 원장님에게 검증이 안 된 상태이다.


수업 첫째 날 탈의실이나 화장실에 설치된 cctv에 찍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장님은 그야말로 cctv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동식이다.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원장님의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말수가 없던 원장님은 음성기능을 탑재한 체 전혀 예상치 못한 세 가지 기능을 하나 둘 켜기 시작했다.


1. 첫 번째 기능-과거를 돌아보다


이미 수백수천 편 이상 찍혀있는 최 선생님이 나오는 영상 중 한 편을 재생하여 나에게 보여주었다. "최 선생님은 자리배치를 이렇게 안 하시던데. 최 선생님은 책상배치를 이렇게 안 하셨는데...." cctv의 첫 번째 기능은 과거 재생이었다. 그 순간 아차! 했다. 맞다. 전임교사가 최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최 선생님의 영상은 무한반복처럼 3개월을 돌고 돌며 질리도록 재생되었다. [주연:최 선생님 더빙:원장님 제목:그녀의 그늘]이라는 복고풍 영상 한 편이 대사까지 다 외워질 지경이었다. 이 정도인 거 보면 작년 첫인사 때 그녀(유치원 선생님)의 웃음에 침을 질질 흘릴뻔한 영상이 이동식 cctv(원장님)에 흐릿하게 찍혀있는 게 틀림없다. 애매한 사각지대에서 찍혔던 것이다. '차라리 선명했다면 이 질리는 영상을 안 봐도 됐을 텐데. 하필 서있던 위치라고는... 후~우'


2. 두 번째 기능-현재를 바로 보다


아~그녀의 웃음이 뭐였길래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무려 3개월이다. 최 선생님의 그늘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차라리 처음 생각한 데로 침을 흘렸어야 한다.' 중간에 잘릴 것 같지는 않지만 내년 학기엔 못 들어올 것 같은 애매한 위치에 서있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더 이상 수업 시간에 안 올라오셨다. 남자선생님을 안 받는 이유에 확신을 더 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맞다. 부족하다. 인정하자. 끝없이 담기는 영상에 마음은 뒤집히고 작년 겨울부터 잔뜩 마셨던 김칫국은 쏟아져 내렸다. cctv의 두 번째 기능은 현재를 바로 보게 하는 거였다.


2011. 여름


월동준비를 하다


뜨거운 여름날 때아닌 월동준비를 시작했다.

인생의 매서운 겨울바람은 때를 안 가리기 때문이다.


화려한 봄을 상상했었고 그 봄날과 연결하기 위해 나태하지 않은 겨울을 보냈었다. 상상을 현실화시키려고 나름 해야 할 것들을 찾아 행동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괜찮아. 다시 돌아가도 그만큼 못하잖아. 실망할 것 없어. 그 과정 속에서 성장했으니 얻은 것이 많아. 미래의 나를 또 상상하면 돼. 이럴 때가 아니야.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어.'


사적 감정과 수업은 별개이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나를 상상했다. 행여나 중간에 잘려 지국과 최 선생님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월동준비를 해 나갔다.


더 훌륭한 선생님에게 수업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내 능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도 영상 속 주인공(최 선생님) 보다 낮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연결하다

블록 형태 교구의 대명사가 된 레고는 덴마크 제품이다. 레고 이외에도 유럽 선진국엔 많은 종류의 창의력 교구들이 있다. 그중 프랑스 제품이 유치원에서 했던 교구이다. 블록 형태가 아닌 긴 막대모양에 구멍이 뚫린 형태이다. 막대들을 연결하려면 볼트와 너트, 드라이버와 스패너를 사용해야 한다. 본사 교육개발팀에서는 이 구멍 뚫린 막대모양을 워크북에 프레임이라 기재했다. 교구의 연결은 크게 보면 이 두 형태로 나뉜다.

블록: 너+나의 연결 프레임: 너 + 무엇 + 나의 연결

과거 나라는 프레임은 어떤 모양이었나?

현재 나라는 프레임은 어떤 모양인가?

미래 나라는 프레임은 어떤 모양일까?

프레임의 연결은 무엇으로 어떻게 할까?

지난 겨울날 찍고 있던 영상들

지금 이날에 찍고 있는 영상들

다가올 봄날 찍고 있을 영상들


그 모든 곳에 내가 서있다

그 모든 영상들을 재생시켜 나를 바라본다

그 모든 날들을 따라가서 만난

모든 날 향해 따라오라며 노래 부른다


♬날 따라 해 봐요~이렇게~♬


"우리 이제 프레임 연결해 볼까요? 준비됐나요~♬"

"네~네~선생님~♬"


3초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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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거 안돼."


레고 조립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 아빠들 본인이 더 신나서 조립한다. 체험수업 때 가끔 아빠들이 오시곤 하는데 본인이 조립에 더 심취하신다. 남자의 본능인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땐 문제해결을 하려는 최대의 호기심이 생긴 상황이다. 창의력을 키워줄 최고의 기회이다. 이때 신의 한 수는 알아도 몰라도


"우리 함께 해결해 볼까."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는 느낌이 드니 얼마나 좋은가. 모르던 아이가 갑자기 주도적으로 "아빤 이것도 몰라?" 할 수 있다. 여전히 모르지만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시도하며 해결해 가려는 모습을 보게 될 수 있다. 이로서 장난감이 창의력 교구로 바뀐다. 돈 들여 시간 들여 사교육 수업도 좋지만 일상에서 부모와 함께 하는 창의력 수업만큼 값진 것은 없다. 그 순간 아빠는 최고의 선생님이 된다. 최고의 교육효과를 내니 아내에게 소주 한 잔 마시게 수업료 내라 하자......(?? 갑자기) 정정한다. 이건 아닌 거 같다.


날 따라 해 봐가 아니라 ♬널 따라 해 볼게~요렇게~♬라고 생각할 수 있는 3초의 여유


2011. 가을


"OOO유치원 원장님께서 칭찬을 하셨어요. 특히 계획안 부분이었는데 오늘 회의 때 계획안에 대하여 발표 준비해 봐요." 지국장님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을 전했다. 띵~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어리둥절했다. 내년부터는 못 들어갈 거란 생각이 굳어진 시점이었다. 계획안 출력을 하고 회의장 문을 열고 발표를 시작했다.


3. 세 번째 기능-미래를 미리 보다


cctv의 세 번째 기능은 미래를 미리 보는 것이였다. 나라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을 그렇게나 꼼꼼히 촬영한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원장님이 찍던 건 아이들의 미래였다. 부족한 나를 그래도 봐줄 만한 사람으로 생각해 준 것에 감사하다. 질리도록 들었던 원장님 말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들린다.


"때라는 것은 언제 올지 모릅니다. 미래의 프레임을 포기하지 않고 연결시키려 하면 언젠가는 연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들고 지치고 안 풀린다 할지라도 지금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세요. 그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주세요. 당신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2012년 봄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이 그렇게 다시 왔다. 신학기 첫 수업날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인사했다.


"주임선생님 안녕하세요~^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