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十死花 Death, 죽음의 꽃

44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꺾을 때다

by 이별난
나의 한계점은 어디인가?
인생의 전환점은 어디인가?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생이 빛나는 날은 언제인가?


四十死花 한계 편(限界篇)


공자 왈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 하던데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四十)에 죽음의 꽃(死花)이 개화(開花)하고 난 사십에 개(犬)화하였다.


도중 왈왈 사십이견화(四十而犬化)라 도박에 혹해 밤낮으로 불지옥에 숨어 들어가 지 몸뚱이 타는 줄도 모르고 미쳐 날뛰며 킁킁 불똥 싸지르며 사방팔방 악취 풍긴다.


인생의 양지에 서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고작 얼마나 서 있었다고, 삶이 초록으로 빨리 변하지 않는다며 세상 탓만 해왔다. 빛이 감사한지도 모르고 음지로 회피하며 보내기 바빴다. 돌아보면 난 이 쪽 방향으로 걸어갈 때가 많았다. 태양을 피해 어둠에 숨어 지냈다.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소리치고 합리화하며 날 속여왔다. 낮은 자존감과 높은 열등감에 늘 숨어 지내며 소리치는 말.


'날 좀 내버려 둬. 내가 뭘 그리도 잘못했는데...'


인생의 양지로 가는 길도 잘 몰랐고, 삶의 엽록소 같은 희망, 끈기, 열정,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되려 소리치는 말.


'나는 뭐 쉬운 줄 알아? 네가 내 마음을 알아?'


좋아지고 싶었다. 내 인생은 언제 꽃이 필까?라고 되뇌지만 행동하지 않는 헛된 욕심만 부리며 숨을 곳만 찾았다. 그러나 숨어봐야 이 땅 위였고 무궁화 꽃은 계속 피고 있었다. '꽃이 피느냐? 안 피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 세상의 눈에 들킬까 봐 두려워 앞으로 나아갈 능력이 없었다. 가지 않고 잘 살기를 바랐다.


안 피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계절이 돌면 꽃은 음지에서도 핀다. 어떤 마음과 행동을 심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인생은 어떤 형태로든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운다. 중요한 것은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내 땅을 살피고 핀 꽃이 어떤 모습인지를 살폈어야 한다.


도박이라는 삶의 음지에서도 피고 있었다. 꽃의 열매는 마치 돈 나게 생겼다. 이 덫 같은 것에 걸려, 못 같은 가시에 찔리게 되면, 모든 감각에 이상이 생기고 피 흘리면서도 끌어안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 피고 지는 이 꽃의 이름과 성장은 이랬다.


DEATH, 죽음의 꽃


마음의 씨앗-타락한 뿌리-검은 줄기-피의 자국-하얀 줄기-환각의 가시-피의 흔적


그 당시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씨앗 하나를 심었다. 무책임한 회피였다. 도박의 꽃은 그렇게 자라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태양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특히 난 밤마다 PC방 구석자리에서 한 송이, 두 송이... 남몰래 따기 시작하며 새벽을 맞았다. 태양이 뜨면 난 또 숨어버렸다.


꽃을... 돈을 따지 못할 때면, 타락한 생각의 뿌리를 뽑기 위해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뽑아 쥐어뜯는다. 때론 뽑히고 때론 끊어진 검은 줄기는 후드득 떨어진다. 그러나 머리에 붉게 맺힌 피의 자국에서 죽음의 꽃은 다시 새하얗게 피어난다. 내 생각을 송두리째 뽑지 않는 한 죽음은 그렇게 다시 살아나 머릿속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돈을... 꽃을 따면 딸수록, 환각의 가시가 온몸에 박힌다. 코를 찌르면 악취는 어느새 향기로 느껴진다. 눈을 찌르면 뜬구름이 떠오르고 벚꽃 잎이 휘날린다. 입을 찌르면 늘 씹고 있던 세상과 물어뜯는 나 자신이 흘린 피맛마저 달콤하다. 모든 감각은 배고픔마저 잊고 죽어간다. 그렇게 쾌락에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모든 시간 동안 이 꽃만을 탐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주위의 예쁘고 소중한 꽃마저 짓밟게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손에 박힌 피 묻은 가시로 그들과 세상을 찌르고 다녔다. 많은 이들이 찔렸고 큰 고통을 받았다.


나 혼자 피 흘리며 될 것을... 이제야 내가 다닌 길 위에 뿌려진 피의 흔적이 보인다. 도박은 따든 잃든 피를 흘릴 뿐이다. 모든 걸 잃고 나면 그제야 이 핏자국을 바라봐야 한다.


밤낮으로 이 꽃을 따러 개처럼 따라다니며 이런 걸 Life(삶)라 불렀다. 특히 돈을 딸 때면 삶의 자유를 얻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건 삶의 구속이었다. 도박은 따든 잃든 수많은 줄에 묶여 조종당하는 지배를 당할 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어쩔 수 없이 한 것도 아니다. 도박을 한 건 그 무엇 때문도 아니다. 무조건 나의 자발적 행동이었다. 결국, 내가 안 했으면 된다. 그 무엇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그 행동의 한 끗 차이를 가볍게 여겼다.


이게 내 한계였다. 이것이 내가 바카라의 끝수 싸움에서 인생을 실패한 이유이다. 내 패를 읽었어야 한다. 마음을 알아채고 주제를 파악하고 분수를 아는 능력의 한계를 봤어야 한다. 무엇보다 날 지지하는 소중한 존재들을 느꼈어야 한다.


난 도박도 인생도 낮은 패를 들고, 셀 수 없는 올인을 해왔던 것이다. 삶의 오늘이 어제보다 높은 패를 잡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타이(무승부)는 돼야 또다시 올인할 기회로 전환된다.


44火 전환 편(転換篇)


4(죽음의 나무) 4(죽음의 꽃). 불혹에 만난 두 개의 44가 모든 것을 불태웠다.


아직도 수많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질 때면, 먹먹해진다. 특히, 지안이의 푸른 눈빛에 이런 아빠의 모습을 남긴 것이 후회스럽다. 지워버리고 싶었던 기억과 감정이다. 지난 5년을 숨어 살면서 깨달은 건, 그것 또한 나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그 미친놈도 나였다. 모두가 날 외면할지라도, 나는 나를 만나러 가야 한다. 나만이 내게 손을 내밀 수 있다.


가시(棘)


도중 이 미친 개XX 이 화상을 직접 대면하면 당장 때려눕혀 정신과 치료부터 받게 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어쩌겠나. 그나마 의식은 연결되어 있으니 다행이다.


도중아 죽으려 하지 마라. 어떻게든 와보니 이 세상 그래도 살만하다. 그리고 너 없었으면 난 이 세상 볼 수 없었다. 좀만 더 버티고 있어라. 지난날을 잊고만 싶었지만 이제 널 찾아가 손 내밀려한다.


씨앗이 어디부터 심어졌는지 그 뿌리 끝까지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공포 속에 하루하루 두렵게 보냈던 도중을

지금 내 곁에 오게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내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지금 내 안에 오게 할 수 있다.


추위에 벌벌 떨며 외로웠던 그 시절 도중에

깊게 박힌 가시를 빼내러 간다.


4(나)+4(?)=話 가시 편(可視編)


숫자 4가 한글 나로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모양으로 볼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놈인지 그 모양을 봐야만 내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모양을 바꾸려면 만질 모양이 보여야 한다. 가시가 보여야 빼내든, 부러뜨리든 할 수 있다.


거울을 볼 때면 빨갛게 충혈된 눈, 누렇게 뜬 얼굴색, 말라가는 몸은 늘 보였다. 그러나 몸의 그 어떤 곳에서도 가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 가시는 마음속 깊이 박혀있었다. 그러나 도통 그곳이 어디인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감기고 지안이의 푸른 눈빛을 바라보며 의식이 돌아왔다. 그때 노래가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나미의 빙글빙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 사람


언제나 나를 응원하며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나. 항상 내 주위를 돌며 자기를 바라볼 때만을 한없이 기다리고 있던 나.


자기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고 짜증 내며 삶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 겉으로 괜찮은 척 웃으며, 속으로 힘들어하고 이끌리며 살고 있던 나.


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듯 볼 수 없던 나라는 존재.


그리고 의식을 잃었을 때 간절히 목놓아 외치던 나라는 존재.


흐려지는 노래가사 사이에 무언가 보였다. 결코 멈출 것 같지 않던 도박 인생을 뱅뱅이처럼 돌리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그 안에 타 있는 건 또 다른 나였다. 두렵고 무서워 기둥을 두 손으로 꽉 잡고 있는데, 손에 힘이 풀리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속도를 늦추고, 내 눈물로 또 다른 나를 띄우려 하며, 안에 탄 나를 깨우려 소리치고 소리쳤다.


"미안해! 미안해! 도중아... 미안해!


그리워지는 길목에 서서~♬ 어떻게 하나~♬ (도중아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안 돼. 나 두고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해!) 여울져 가는 저 세월 속에 좋아하는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 (도중아! 안돼!)


눈을 뜨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생애 가장 많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세상은 날 잠시 홀로 두려는 듯 자동차 유리창을 습기로 덮어주었다. 시린 늦겨울 하얀 눈이 내리며 세상은 그렇게 날 가려주었고, 난 더 미친 듯이 오열하며 마음에 박힌 가시를 보았다.


그건 나였다. 내가 죽음의 나무였고 내가 죽음의 꽃을 피웠었다. 내게 돋아난 가시가 삶을 찌르고 인생은 마비되었던 것이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날 덮어주었던 세상의 눈이 그치고 습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렸다. 태양이 떠있었다. 이런 햇살을 본 적이 언제인가 싶었다. 태양 아래 서며,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뱅뱅이를 내렸다. 얼마나 돌았던 건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대로 앉아 몇 년 만에 느끼는 숨 같은 숨을 쉬었다.


늘 듣던 가사가 다르게 들린 것처럼, 위기가 기회로 전환될 때가 있는 것처럼, 어쩌면 삶은 바라보는 관점을 꺾을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의 4는 또 다른 나였다. 4(나)와 4(또 다른 나). 그날은 나와 나의 첫 만남이었고, 처음으로 대화한 날이었다.


4(生)는 날 동안, 4(死)하는 그날까지 빛날(華) 당신에게 응원 편(應援篇)


4(죽음의 나무) 4(죽음의 꽃). 불혹에 만난 두 개의 44가 모든 것을 불태웠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생각을 놓고 있지 않다. 내가 했던 행동이기에 갑자기 툭 튀어나올 가능성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나를 한 번 봐서는 부족하다. 두 번, 세 번 계속 바라봐야 한다. 내가 했던 행동을 적어도 나는 용서하면 안 된다. 4(生)는 날 동안, 4(死)하는 그날까지 명심하고 살아가야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말장난 치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봄날, 산수유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 순간이 올 수 있게 해 준 그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순간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관점, 방향, 행동, 해석을 꺾을 때다. 지난 삶의 많은 것들을 꺾고 나아간다.


이제는 내 능력이 닿는 최고점에 우뚝 일어서 시야를 확장하고 선택한 길에서 삶의 나무가 되어 삶의 꽃을 피우러 간다. 삶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면 바로 그 순간 방향을 꺾는다.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아직도 빼내지 못한 가시가 있는지 봐야 하고, 무지한 내가 새로 박고 있는 가시가 있는지도 봐야 한다. 나의 뿌리를 찾아 썩은 게 있다면 꺾어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망설이지 말고 손을 뻗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잡는다. 기억 저 끝까지 뻗어서 모래알처럼 흩어진 나를 끌어 모은다. 그리고 태양 아래 서서 빛나는 모래알을 바라보며 남은 삶의 꽃을 심는다.


바카라 최고의 패는 '9'지만 인생은 그 끝이 없다. 지금 내 인생 패는 '0'이다. 그러나 이제 안다. 인생의 0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패는 쌓아가는 것이지, 단번에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2, 3… 을 지나야 9를 넘고, 비로소 내 인생의 ‘10'을 만날 수 있다. 허비한 시간이 너무 길다. 남은 인생 어제보다 높은 패를 쥘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 오늘은 내일보다 낮은 패가 될 것이다. 10은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이고, '11, 12…'가 계속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너무 진지해지는 순간, 어이없더라도 웃을 수 있는 유머 한 방울은 챙겨 다니자.


4(나)의 4(四) 가지 이야기 끝


45화에 계속


잠시 광고방송

건너뛰기 불가


평생 재생 ▶▶


누구보다 빛날 당신의 인생에 응원을 보냅니다


45화 [DEATH, 죽음의 나무] 예고편


모래알처럼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


그래도 44세를 넘어가면서 보게 된 이 세상은 후회로 가득하다. 대체 난 무슨 짓을 했던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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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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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얀 눈이 그칠 생각 없이 2년 내내 내렸다. 모든 시간이 이 눈 속에 파묻혔다. 난 그 무엇도 하면 안 되었다. 손 닿는 모든 것에 피를 묻혔다. 나란 존재는 이 눈 속에 파묻히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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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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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얀 눈이 1년 내내 오락가락 내리고 있다.


"지안이 통장에 모아둔 돈 있지? 그거라도 좀 줘봐."


"지안 아빠, 이제 제발 그만하자."


"이제 와서? 그만두면 뭔 수가 있어? 됐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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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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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업을 잘 마치고 나왔다. 떨어진 산수유 열매가 보인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


수년만에 알게 된 지안 엄마의 빚에 이 정도로 신뢰가 깨질 수 있는 건가? 나도 잘한 거 하나 없는 것 같은데, 모르고 살았던 세월이 뭐가 그렇게도 억울한 걸까? 돈에 주눅 드는 삶이 지긋지긋하다. 지안 엄마에 대한 감정이 메말랐다. 이런 상황 자체가 싫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산수유열매는 차가운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다. 다시 열매가 맺으려면 또다시 1년이나 있어야 한다. 그날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안 온다. 결국, 지금 내 꼬락서니가 이런데 미래가 뭐가 중요하냐. 그래 종신이나 신우처럼 내게도 운이 올지 모른다.


이 날이다. [DEATH, 죽음의 나무] 죽음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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