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Death, 죽음의 나무

天---日月火水木金---土 그리고 風

by 이별난

1부: 하늘과 땅 사이에 일주일이 분다


日, 月, 金


해(日)가 뜨나 달(月)이 뜨나 금(金)을 거저 얻으려 했다. 없던 시간까지 짜내 도박 사이트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접속할 수 없을 땐, 생각으로 로그인해 돈 따는 상상을 출력했다. 금 같은 하루를 도박에 죄다 접속한 채로 흘려보냈다. PC방 구석에 처박혀, 수많은 시간을 헛된 욕심에 사로잡혀 앉아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세상과 동떨어져 보인다. 고립된 한 그루의 나무(木) 같아 보인다.


검은 나무


PC방 바닥엔 검은 선들이 뻗어있다. 마치 풀지 못하는 삶처럼 이리저리 얽혀있다. 이 전기선들이 나에게서 뻗어 나간 뿌리처럼 보인다. 그곳에 다리가 처박혀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인생이, 무슨 수묵화처럼 일월 수목화 토일요일이 먹먹한 색으로 서서히 번져 짙어져 간다.


어두컴컴한 PC방 분위기, 주위에 깔린 검은 선들, 칙칙한 몰골, 쥐어뜯어 뽑힌 검은 머리카락, 썩은 생각들... 이 칠흑 같은 세상에 컴퓨터 화면만이 환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착각의 어둠 속이었다.


난 도박에 눈이 점점 멀더니, 현실과 점차 멀어져 갔다. 이윽고, 세상의 무늬와 색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3+1=4


카드의 네 가지 문양도 돈(♦️)과 사랑(❤️), 행운(♣️)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로 보였다. 심지어 내가 이런 나무라고 착각했다. 불법도박으로 다이아몬드를 가지려 하고, 주색잡기를 사랑으로 여기며, 세 잎을 네 잎으로 끼워 맞추면, 인생에 행운이라는 새 잎이 달린다고 보았다.


착각


자훈이가 언젠가 그랬다. '너는 항상 날 이기려고 만나는 것 같아. 늘 나와 반대로 말할 걸 준비해 놓고 나오는 것 같아.' 그의 말이 맞았다. 난 일단, 그의 말을 듣기도 전에 부정할 준비부터 했다. 그게 세상의 진실이든, 상식이든, 옳고 그름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를 틀리게 만들어야, 내 존재감이 생긴다고 착각했다. 사실을 인정해 버리면 내 존재가 무너진다는 착각을 했다.


인정


결과는 항상 같았다. 난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듯 느껴졌다. 결국엔, '무시당하고 있다.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만 깊어졌다. 그런 나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라며 자기 합리화로 깊이 숨어 들어갔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이런 마음으로 서있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나를 진실되게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3+1=4라는 단순한 진실조차, 나는 일단 '아니야'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의미를 억지로 덧붙이고, 궤변으로 포장했다. 난 '네가 답이야? 나한테 뭐라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풀어내야만 했다. 작은 지적조차 나를 탓하는 걸로 들렸다. 난 눈뿐만 아니라, 귀도 막혔던 것이다.


나는, 3+1을 그냥 4로 받아들이는 법을 먼저 배웠어야 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가지했다


내 시선의 가지는 화면을 뚫 꽃잎이 틔운다.

꽃무늬가 프린팅 된 차이나풍 원피스.

외국인 여자딜러는 꼭 이런 옷을 입고 있었다.


두 팔에서 뻗는 가지는, 화면 밖에서 쉴 틈 없이 자라는데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오른쪽 가지(오른팔) 끝에는, 입(마우스)이 달려있다.

쾌락과 긴장감이 강해질 때면, 침(땀)을 질질 흘린다.

왼쪽 가지(왼팔) 끝에는, 다섯 개의 가지(손가락)가 달려있다.

돈을 딸 때면, 강하게 (주먹 쥐며) 오므라들고, 잎(입)이 활짝 열리더니, 달콤한 열매(영어)가 튀어나온다. Nice!

잃을 때면, 위로 빠르게 솟구쳐, 잔가지(머리카락)를 움켜쥔다.

돈을 다 잃을 때면, 분노와 좌절을 심기라도 하듯, 뽑으려 한다. 기다렸다는 듯, 오른쪽 가지(손)도 거들러 온다. 그때는, 그 땅이(머리 피부) 그대로 찢어질 것만 같다.


도박을 하던 내 모습은 이러했던 것 같다. 100번의 일주일 내내 이럴게 사니, 미래가 없는 삶은 당연한 거였다.


난 결국, 이런 나무로 서있던 것이다. 이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 어떤 변명도, 합리화도 통하지 않는다. 생각만은 잊지 말고 내일로 이어가야 한다. 끊기는 순간, 난 또다시 무너지고, 오늘을 내일로 잇지 못한다.



내일로 이을 다리


숨이 멎는 날까지, 내가 무엇을 하든, 오늘은 내일로 가는 다리가 된다. 난 그 다리를 무조건 건너게 된다. 하루동안 오늘의 건축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난 하루, 일주일... 2년이라는 시간을 도박을 하느라 허비하며 부실공사를 계속하였다. 결국, 다리는 끊어지고 무너져 내렸다. 나도 따라 심해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무너질 다리였고, 가라앉을 인생이었다.


그럭저럭 달려온 세월이 끊어진 듯했다.


세월의 배


40년을 그런대로 어찌어찌 헤쳐 나왔다. 인생이 망망대해 같아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던 순간들이라 하더라도, 삶이라는 바다 위에 있었다. 어느 날, 불법도박으로 잘못된 인생 항로를 설정하고, 무책임하게 항해하였다.


살면서 이 말을 많이 했었다. 특히, 도박하는 내내 더했다. '딱 이번 한 번만,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야.' 행동으로 잇지 못하는 이 말들, 착각과 이어버린 내 헛된 욕심들이 계속 쌓이고 쌓였다. 다리든, 배든 무게에 가라앉는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이냐? 나중이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다시 살게 된 이 인생, 남은 세월의 배에 헛된 바람만은 무겁게 불지 않게 해야 한다.



삼풍(三風)


내 작은 움직임 하나에

무조건 바람은 인다


내가 남겨놓은 어제의 손짓에서

첫 번째 바람이 현재로 불었고


오늘 나의 발걸음에서

두 번째 바람이 내일로 뻗어간다


그 사이사이에 헛된 욕심에 뻗은 몸짓에서

세 번째 바람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주위를 보면 불법도박 다 하는데, 나 하나쯤 해도 괜찮아. 한 번 할 수 있지 뭐.'라는 생각을 온몸으로 쌓아 올렸다.


세 번째 바람(風)이 삶과 죽음 사이에 거세게 부니, 그나마 쌓아 올린 인생이라는 건물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 바람이 멈출 줄 모르고 연일 휘몰아쳤다.


결국... 친구, 결혼, 부모, 사위, 아들, 아빠로서 많은 관계의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존중, 배려, 희생, 사랑,

책임으로 키워가야 할 나무를 서서히 죽게 만들었다.


나무는 더 깊이 가라앉았다. 타락한 뿌리와 썩은 가지는 1, 2, 4, 8... 규칙적인 시스템처럼 더 빠르게 자라났다.



불이 활활


고통과 쾌락의 강도가 점점 더 세졌다. 분노와 광기의 열이 삶 전체에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갔다. 난 불을 질렀다.


내 헛된 바람은 촘촘하지 못한 인생의 빈틈 사이사이로 매 순간 불었다. 불길이 급속히 번졌다. 결국, 모든 것이 다 타버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주위사람들마저 불태우려 했다.


난 도박이라는 심해에 빠진 나무였다. 무너질 다리였다. 가라앉을 배였다. 추락할 비행기였다. 그리고 다 태워버릴 불덩어리였다. 모든 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활활 타오고 있는 것을 뒤늦게 본 날, 난 모두의 곁을 떠났다. 내 주위에 있으면 다 타버릴 것만 같았다.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는 연결을 안 시켰다.


그게 벌써 6년이 흘렀다. 지금 이 하늘과 땅을 바라본다는 것이 감사하다.


土,


'우우웅'


엄청난 굉음이 울린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내 좁디좁은 시야에 세상은 그저 삐딱하게 보인다. 한편으로,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탈출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기분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난 더 이상 그 빨랐던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또다시 이 세상이 지겹다.


이 비행기 안에서 전속력으로 뛰어간다면, 더 빠른 속도를 느낄 수 있을까?


미쳐 날뛰어 다니며 비행기(飛行機)에 탄 소중한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위험하게 만들었다.


내가 해왔던 도박은 이런 비행(非行)이었던 것 같다. 더 빠른 속도는커녕, 모두를 위험하게 할 뿐이었다. 도박에서 속도는 늘 이기적인 착각이었다.


한계


이 땅을 내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지구는 항상 나를 끌어당긴다. 부력, 양력, 건축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언젠가는 무너지고, 가라앉고, 추락한다. 제자리 점프 정도로 잠시 벗어나는 것이 내 한계였다.


현실을 내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세상은 항상 나를 잡아끌었다. 사고방식에 문제가 생겨 망가지면, 세상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도를 넘으려 할 때마다, 어김없이 한계에 부딪혀 숨이 막혀왔다. 적어도 도박하는 동안은 그랬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더 이상 아무것도 하면 안 됐다. 무엇인가를 하려면, 일단 지금 행동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다.


내가 뻗는 뿌리와 가지가 주위를 위험하게 했다. 그래서 난 죽음의 나무였던 것이다. 내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날 아껴주던 사람들과 나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늦겨울


'띠잉동, 드르륵, 덜커덩'


엘리베이터 안을 한숨으로 가득 채우며 5층까지 올라왔다. 내 숨의 무게는 세상에 전혀 영향을 못 끼치나 보다. 오히려 너무 가벼운지 평소보다 더 빨리 5층에 도착한 느낌이다. 저 밖의 눈이 나보다 훨씬 의미 있는 존재라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고인다.


이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이 없다. 이 빚더미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어머니 아파트 담보대출밖에 없다. 이제 이 땅에 발 디딜 곳이 이곳밖에 없다. 늘 난 어렸을 때부터 돈이 필요할 때만 어머니를 찾았다. 그중 오늘이 내 모습도, 돈 액수도 최악이다.


'띠띠띠, 삐리리, 철커덕'


심호흡을 하고 아파트 문을 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다. 오늘따라 집에 냉기가 흐른다. 보일러를 안 틀었나 보다. 어머니는 신발을 늘 나란히 짝을 맞춰 정리한다. 오늘은 어머니 발걸음이 뭐가 이리도 속상한 일이 있었을까? 두 짝이 다 흐트러져있다. 외출을 하고 오신 지 얼마 안 되었나 보다. 아니면 생리현상이 급했나 보다.


"저 왔어요."


다 산 사람처럼 눈을 힘없이 털어내며 인사를 했다. 오른팔을 뻗어 신발장을 짚었다. 고개를 계속 숙인 채, 세상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모성애가 내게 먼저 손 내밀게 하려고 행동을 느리게 했다. 같은 자세로 신발을 느릿느릿 벗으며 인사를 재차 했다. 한숨도 일부러 들리게끔 했다.


"후! 우~! 어머니, 저 왔어요."


아무 대답이 없다. 이제 안 계시다고 판단을 했다. 난 돈을 구하기 위해, 모성애를 최대한 자극하는, 어쩌면 과장된 연기를 그만두고 눈을 세게 털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숨이 잠시 멎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목놓아 소리를 치며 뛰어 들어갔다.


"엄마!"


베란다에 방충막까지 열려 있다. 어머니의 왼쪽 다리가 안전바에 올려져 있다. 내 소리에 그 어떤 반응도 없다. 아래만 보고 있다.


"엄마!"


오른발 뒤꿈치가 들리는 게 보인다.


"안돼!"

.

.


土 + 天


저마다 쾌락도 고통도 담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나의 한계를 어찌 정확히 알 수 있을까? 내 한계를 모르면, 그 무엇을 어디까지 담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알아야, 그 한계를 뚫어 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모르겠다. 나라는 놈은 죽는 날까지 모를 수밖에 없다. 순간마다 모든 상황들이 바뀐다. 그저 순간에 서있는 나를 알아갈 뿐이다. 그 순간 속 나를 놓치면, 난 또 뭔 짓을 할지 모른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는 것만 명심하자.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나를 포기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게 된다는 걸.


내가 가는 인생의 길에

그 누구도 태울 수 없다는 걸.


종이로 만든 배와 비행기에

절대 태우면 안 된다는 걸.


대충 쌓아 올린 내 인생이라는 건물에

그 누구도 살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오늘이라는 다리가 예전 모습이라면

그 누구도 함께 건너가면 안 된다는 걸.


土, 天 이 두 글자를 겹쳐

흙 위에 하늘을 덮으면,

사람(人)과 왕(王)이 나타난다.


삶이 끝날 때까지

어리석을 내가 깨달아 가고 있는 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지켜야 할 왕이었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그들이 있었고,

지금 내 곁에 서있는 이들이 있다.


나를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를 몰랐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도

다 놓고 싶은 그 순간에도

설 곳이 없던 그 순간에도


내겐 하늘과 땅 사이

일주일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도 불고 있었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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