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놀이터-결혼과 이혼

만감이 교차한다.

by 이별난

가정 놀이터


만감이 교차했던 곳


1. 현실로 이루어진다.


"이번 제주도에서 성공사례 발표예요."라는 지국장님의 말을 들었다. 원고 작성을 시작하였다. 깨어있는 시간이면 원고 작성에 총력을 쏟았다. 두 달 전 본사는 *시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였다. 시책 조건을 달성한 모두가 제주도연수를 가는 것이었다. 두 달 동안 진행되었던 이 시책에서 전국 1등 교사가 되었다. 내가 잘해서 된 건 아니었다. 사실 지국에 1등은 따로 있었다. 그분은 팀장으로 승진하게 돼서 더 이상 교사직급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등인 내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그 자리에 있게 만들기 위한 지국장님의 노력이 있었다. 그분들 덕분에 전국 1등 교사로서 성공사례를 발표하게 되었다. 제주도로 가는 전 날 며칠을 준비한 원고를 통째로 외웠다.


"이제 그만하고 자. 내일 생각도 해야지."

아내가 자다 깼다.


"어. 좀만 더 외우고 잘게. 걱정 마."

*시책: 조건을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본사의 목표전략. 보상은 주로 여행이었다.


난 지난달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였다.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갔었다. 돌아오는 제주공항에서 "다음 달에 꼭 다시 온다."라고 다짐하고 돌아왔었는데 현실로 이루어졌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가 낯설지 않았다. 전국에서 모인 참여인원을 보았다. 그리고 난 제주도 멋진 풍경을 만끽할 생각을 저버렸다. 인원이 300백 명은 족히 넘었다. 저녁때 연설을 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 이런 규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원고를 다시 보고, 다시 보고, 외우고, 또 외웠다.


2. 긴장감을 즐기다.

드디어 저녁시간이다. 연회장에 들어가 배치된 장소에 앉았다. 식순에 따라 진행되었고 차례가 되었다. 부사장님의 호명을 듣고 난 나갔다. 강연대까지 올라가는 길이 결혼식 입장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강연대에 서서 인사를 하고 잠시 심호흡을 하며 전체를 둘러보았다. 벌벌 떨 줄 알았던 내 생각과 달리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느낌은 뭐랄까. '긴장은 되는데 떨리지 않는, 벅차면서 차분하다.'라는 문장이 내 느낌에 가까운 표현 같다. 연설 중 중간에 한번 끊겼는데 양해를 구하고 원고를 다시 대놓고 봤다. 그런데 다시 말할 때 또 기억이 안 났다. 더 이상 차분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어질어질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그 부분이 넘어가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휴~. 자칫하면 난 또 시스루 패션을 하고 내려올뻔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끝나고 자리로 돌아갔다. 부사장님은 항상 누군가의 연설 후 요점정리를 해주셨다. 근데 내 기억에 내 요점정리는 이러했다. "정리할 게 없죠. 자 박수!"로 끝내셨다. 아마도 정리할 게 너무 많아서 그러셨던 거 같다. 자리로 돌아갔었던 난 몇 분도 안 돼서 연회장을 나갔다. 그때부터 난 한동안 연회장에 안 들어왔다. 배안의 통증은 1년 3개월 전 신입교육 때 "에라 모르겠다." 하며 손을 들었을 때보다 오래갔다.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성취감을 만끽한 건 몇 시간 후부터였다. 그 후 시책들 보면 그 정도 모인 적이 없는데 공교롭게도 제주도 시책 때는 왜 이리도 많았는지 모른다. 덕분에 난 회사에서 수면 위에 떠올랐다. 지국장님이 그렇게 날 띄워놓아 주셨다. 제주도 때 연설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엄청난 긴장감을 즐기고 있던 나였다.


3.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출발하였다. 그리고 2년 후 지국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또다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땐 몰랐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자리였던 건지. 별 볼 일 없는 놈이 감사한 줄 모르고 나태해졌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느 자리에 있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그땐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어느덧 입사 10년 차가 되는 해였다. 난 두 마리 토끼를 다 걷어차 버렸다. 이 토끼들은 훗날 자신들이 푸대접받았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형태로 다시 찾아온다.


4. 거기까지여야만 한다.


[잘못된 선택]


아내는 한 번 크게 잘못된 선택을 했다.

난 두 번 크게 잘못된 선택을 했다.


아내는 나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깨지고 있었다.

난 아내에 대한 신뢰가 한 방에 깨져버렸다.


아내는 이미 나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난 별거를 시작하기 몇 달 전 한 순간 사라졌다.


그 시작이 내 첫 번째 잘못된 선택에서 출발했다. 이걸 깨달았을 때는 한참 후였다. 딸아이를 못 본 지 5년이 지난 지금이다. 거기까지였어야만 했다. 딱 첫 번째까지면 괜찮았다. 하지만 난 두 번째 큰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암흑 속에 제 발로 들어갔다. 아내의 큰 잘못된 선택을 안 건 암흑 속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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