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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나를 위해

글쓰기

by 온호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 좋아하는 사람이 -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으로 오랜만의 글쓰기를 시작해본다. 그 동안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일요일 오전 9시마다 알게 되는 나의 핸드폰 사용 시간이 증명하듯 바빠서라는 이유때문은 아닐 것이다. 난, 2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아진 것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시작한 마음이 정반대로 변하는데 충분하고 아주 뻔하기도 한 시간인 것 같다. 난 이번 한 달동안 '일기보다 우선해야 할 것들이 많아', '힘들어', '의미가 있을까?',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같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겪는 그런 흔한 감정들을 느꼈고 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브런치 10주년 팝업을 갔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했다는 말을 보고 내가 읽은 것들, 쓴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그래도 써야겠다.'라는 의욕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행사장에서 글로써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니 반감과 동질감이 동시에 들기도 했다. 별 특별할 것도 없지만 서툰 솜씨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많은 사람들과 내가 겹쳐보인 것이다. 하는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도 모두가 한결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게 어쩐지 용기 비슷한 것을 주었다.

읽는 사람이 적을 때 가장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그 용기로 곧장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일상에 활력이 다시 돌아왔다. 산책을 좀 더 했다. 오랜만에 오른 미대 앞에는 학생이 작업하고 있는 듯한 구조물이 생겨 있었다. 그 자리는 한 번씩 이런저런 작품들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지난 일요일에는 별 볼 일 없는 졸업시험도 봤다. 시험을 치고 나와 보게된 액자 같은 주차장 풍경을 감상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제는 도서관 앞에서 음악회를 했다. 오늘 내일 중으로는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이때 했다. 지난 학기에 클래식과 관련된 교양 강의를 수강했던 것도,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얼굴에 인사를 했던 것도 이 순간에 영향을 주었다. 읽은 책, 쓴 글 뿐만 아니라 다른 작은 선택들도 나라는 인간 존재를 결정 짓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구절초, 고양이, 스콘과 함께 먹는 단 커피 같은 것들도 정신없이 흘러가는 내 생활에 여유를 주는 감사한 요소이다. 주저함은 내려놓고 글을 좀 더 자주 쓰게 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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