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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는 시간

만남

by 온호

추석을 쇠고 오니 기술교육원 등굣길에는 주황색 코스모스가 긴 구간에 걸쳐 예쁘게 피어 있었다. 자조모임 청년들과 함께 그 길을 걷는 모습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쨍한 주황빛과 간간이 섞여 있는 노란빛 코스모스(검색해 보니 황화코스모스라고 한다)를 보며 시원하게 산책을 하면 크고 작은 근심 걱정을 잊고 삶을 느끼고 좋은 기분을 가지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보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주말이 되었을 때 단톡방에 만남 의사를 물었다.


한 분은 함께 하지 못한다는 말 대신 울상의 이모티콘을 달았다. 한 분은 "컨디션에 따라 연락을 드리겠다" 했다. 나머지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침묵을 부정으로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말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사람이 늘어 열 명이 조금 넘었던 모임 단톡방은 언젠가 유심히 보니 두 명이 나간 모양이었다. 독립과 관계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사람 한 명과 여러 사람에 대해 불만이 있던 사람 한 명이었다. 나간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내 기준에서는 그들이 떠났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들 기준으로는 맞는 길을 찾아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쉽기보다는 잘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약속한 날과 시간이 되어서 화랑대역에서 산책을 시작했다. 기술교육원 하굣길이 겹치는 수강생 분이 알려준 경춘철길을 30분 정도 걸었다. 낯에 약간의 냉기가 느껴지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럴수록 완전한 겨울이 되기 전에 시간을 내어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춘철교를 내려와서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중랑천 수변공원길을 또 걸었다. 동선이 등굣길과 달라져서 앞에 있는 코스모스 구간 하나를 생략하고 온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덜한 걸 보니 무언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행의 의견과 편의, 욕구를 더 많이 반영할 수 있게 됐으니 좋은 것이고 그건 예전부터 내가 원하던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감사했다.


두물마루 카페에 도착하는 것으로 산책을 마쳤다. 각자 바닐라 라떼와 오미자 에이드를 마시면서 스콘을 하나씩 먹었다. 그러면서 근황이라든지 마음 상태라든지를 소재로 잔잔한 대화를 나눴는데 각자 새로운 일들을 겪으면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남의 일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힌다는 건 늘 강 건너 불구경 소리인지라 도움이 될 말을 한답시고 속이나 안 긁었는지 모르겠다. 함께 있는 오후의 시간 자체가 위로가 됐길 바라본다.


일행 한 분은 결제를 하려다 체크카드가 난감한 곳에 절묘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결국 찾지 못하기도 했다. 미루는 동안은 스트레스가 되고 당장 시작하기에는 뭔가 불씨가 안 댕겨질 수 있다 생각해서 재발급을 곧바로 같이 해보자 말씀드렸다. 좋은 시간에 자책이 끼어들 틈도 없었으면 했다. 다행히 잘 처리가 되었다.

저녁밥으로는 두물마루 카페에서 소위 한강라면을 먹었다. 각자 원하는 라면을 고르고 멀쩡히 작동하는 기계를 찾아 그 앞에 한 명씩 섰다. 그리고 조리가 끝났을 때 라면을 들고 3층으로 자리를 옮겨 야경을 보면서 먹었다. 아주 예리한 초승달이 예뻤고, 한내교의 아치는 달과는 반대 방향으로 조명으로 빛을 내며 떠있었는데 그것도 예뻤다.


다 먹고는 중계역까지 걸어가 노래를 부르고 헤어졌다. 역에서 인사를 나누는 감각에서 예전에 종종 느끼곤 하던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코스모스길, 경춘철길, 두물마루 카페 이 세 곳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다는 소망을 한 번에 이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제 등굣길을 다닐 때마다 나 혼자만 예쁜 걸 봐서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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