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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Apr 06. 2024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50

닭강정 이야기

<불교와 정신분석학> 교수님은 굉장히 좋으신 분 같다.

템플스테이를 그냥 시키면 학생들이 절대로 안 가니까 과제로 내버리셨다. 그만큼 절박하게 템플스테이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알게 해주고 싶으신 거라고 생각한다. 월정사, 망경산사, 조계사와 연계해서 수강생들은 1만 원~1만 5천 원 정도로 체험할 수 있게 하시느라 아마 애도 많이 쓰셨을 것이다. 덕분에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템플스테이 하기 위해 영월을 가게 되었고, 영월에서 닭강정을 2회 먹은 걸 계기로 닭강정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졌다.


닭강정을 왜 좋아하냐 묻는다면 그냥이다. 내 몸에서 그냥 그게 맛있다고 받는다. 튀김을 원하는데 영향을 주는 유전인자가 있다는데 나한테 그게 있나 보다.


그렇다고 또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 못할 것도 없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학교 내리막에서 눈썰매를 타다가 감질이 나서 시원하게 타고 내려올 수 있는 경사를 찾으러 같이 동네 산을 슬슬 올라간 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정상(406.8m 높이를.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까지 가게 돼버렸는데 내려오는 길을 못 찾아 조난-순한 맛을 경험했다. 배가 너무 고프고 무섭기 시작할 때쯤  다행히 등산객 아저씨 두 분을 만나 길도 찾고 맛동산 한봉지도 받았다. 내려오면서 넷이서 맛동산을 거덜내고 아쉬워하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맛동산을 꺼내 먹던 친구를 보았다. 화가 나지는 않았는데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처음 만나 굉장히 어이없고 신기했던 생각이 난다.


닭강정은 이 다음에 나온다. 산을 무사히 내려와서 친구들한테 다음에 다시 산에 가자고 했다. 무계획으로 잘 모르고 산을 올랐다가 낭패를 봤으니 다음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시 가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내 도시락으로 닭강정을 선택했었고 몇 번을 더 다녔던 것 같다. 이런 추억들이 닭강정을 좋아하는 이유가 된 것도 있다.


히키코모리 생활 중에도 아주 가끔 집에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실 때(마음이 편할 때)는 닭강정 시켜 먹는 것을 좋아했다. 기린 이찌방 시보리 맥주를 좀 좋아해서 그거랑 먹거나 콜라랑 먹거나 했다. (콜라도 많이 마셨었는데 요즘은 콜라도 잘 안 마신 지 2년은 넘은 것 같네. 할머니가 "골라 좀 도고." 하던 것도 생각난다.)


 



영월에는 3대 닭강정이 있다고 한다. 이가, 가나, 일미


영월역에서 나와서 바로 정면에는 이가닭강정이 있다. 굉장히 강정스럽고(물엿 비율) 바삭하고 단단한 느낌의 튀김옷이 특징이다. 소스에 자체 제조 맛이 있고 순한맛 시켰는데 가나 닭강정 약간 매운맛보다 매웠다.

기차로 영월에 오게 돼서, 첫째 날 절에 들어가기 전 점심으로 먹었다.


   

영월 버스터미널

영월버스터미널 바로 앞 시장 안에는 가나닭강정이 있다. 부드러운 닭강정, 양념치킨스러운 닭강정이다. 소스는 무난하지만 전형적인 맛. 템플스테이가 끝나고 내려와서 둘째 날 간식으로 먹었다.


일미닭강정 집도 가나 닭강정 대각선 맞은편에 있기 때문에 중간 지점에서 일미와 가나 중 도대체 어딜 선택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현지인 부부가 내 앞으로 지나가며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됐다. 남편 분이 부인에게 "전에는 사람들이 일미를 많이 갔는데 요즘은 가나가 더 낫다고 사람들이 가나를 많이 간대."라고 했다. 템플스테이를 막 끝내고 감화되어 영성이 각성된 나에게 이것은 계시나 다름없었다. 바로 가나닭강정으로 들어갔다.  


미안해요 담에 기회 되면 먹어볼게요




영월에서 이틀 동안 닭강정을 두 번을 먹으면서 해갈되지 않는 무언가를 느꼈었다. 이가도, 가나도 맛있었다. 문제는 없을 터였다. 아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게 있었다. "가성비"였다. 이미 치킨의 준거가격은 오를 대로 올라버려서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소짜에 14,000원과 13,000원이라는 가격은 역(터미널)세권, 관광지 프리미엄 그 무엇이든 반영이 된 듯하여 서운하게 느껴졌다. 난 이때부터 이미 무의식적으로 어떤 닭강정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난 학기 재입학을 하면서 외롭고 지친 내가 가끔 힐링을 위해 닭강정을 사 먹었던 곳이다. 기숙사에서 걸어서 3분 걸리는 위치라 접근성 때문에 처음 가게 됐다. 맛있었다. 네이버에 후기도 달았었다. 항상 라디오에서 올드팝이 나오고 사람도 적어서(거의 없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닭강정 자체도 맛이 괜찮다. 나이가 좀 있으신 사장님은 소란스럽지 않고 늘 왠지 모르게 무기력한 느낌으로 묵묵히 요리를 하신다. 그것도 좋다. 소스 첫 맛에서 시큼한 맛(케찹인지, 고추장 소스에 섞인 식초인지)이 나는 부분이 그나마 좀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영월에서의 두 닭강정을 먹고 온 이후 오랜만에 여기 닭강정을 먹고 명확한 비교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면 너무 양심 없이 자주 먹는 것 같아서 며칠 참다가 오늘 오랜만에 다시 가서 먹어봤다. 맛있었다. 튀김 고유의 좀 먹다 보면 느끼해지는 맛이 덜 든다.


단순히 싸기만 한 것은 의미가 없다. 회기역 1번 출구에 네 마리 천원인 붕어빵이 그렇다. 호산나분식 닭강정은 가격 대비 맛과 품질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호산나분식 닭강정을 먹고 나서 대조군이 필요해서 회기역 1번 출구 앞에 있는 안다미로, 옛날 통닭 스타일의 닭강정집(분식집)을 모두 가봤는데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먹을수록 기름 때문에 니글거리는 느낌은 영월닭강정 두 집을 비롯해서 안다미로, 분식집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꼈었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비교우위가 있다.


오늘 유치원에서 퇴근하고, 1분 거리의 호산나 분식으로 갔다. 기적의 접근성, 기적의 엥겔지수.

가게에 다다르니 문이 열려있고 안에서 중국인 유학생이 김치전을 먹고 있었다. 메뉴에는 김치전이 없다.


"사장님~, 김치전은 메뉴에 없는데 혹시 아는 학생들만 와서 먹는 메뉴인가요?"

그러고 보니 리뷰에서 김치전이 맛있다던 글도 봤던 것 같다.


"원래 했었는데 하기 싫어서 요즘에 안 하는데, 달라면 해주는 거지 뭐."

사장님이 끄덕이시면서 말씀하셨다.


중국인 유학생은 "김치전"이라는 단어에 반응해서 나를 향해 겸연쩍게 웃고 있었다. 몰래 먹는 메뉴를 들켜서 그런가? 귀여운 모습이었다.


사장님한테 여기저기 가서 먹어봤지만 여기가 제일 나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맛있다고. 사장님은 여기서 닭강정만 13년을 튀기셨다고 하셨다. 코로나 때 힘드셨다고, 학생들이 학교를 안 오니까 힘들었다고 하셨다. 코로나 전에는 닭강정이 학생들한테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해서 손님도 많았다고 하셨다.


"이제부터 다시 소문나도 좋죠. 저도 저번에 처음 왔을 때 맛있어서 리뷰도 쓰고 친구들한테도 얘기했어요"


상담 선생님들이나, 청년들을 보면서  배운 '좋은 말 해주는 방식'으로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거짓말도 아니고 전부 참말이었다. 리뷰도 썼었고, 유치원 근로 같이 하는 A에게도 얘기했었고, 청년 공간 갔을 때도 이 집 이야기를 했었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계좌이체를 했다. 그러고 보니 영월에서는 이가도, 가나도 미리 튀겨진 걸 쌓아놨다가 그대로 내줬었다. 가나는 그나마 약간 따뜻했다. 닭'강정' 이기 때문에 차게 먹는 게 근본일까? 그래도 고기는 따뜻했으면 좋겠다. 호산나 분식은 주문이 오면 다시 튀겨서 낸다. 닭강정을 받아서 자리에 앉아 사진도 찍어보고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김치전을 먹어보라고 갖다 주셨다. 입이 똥그랗게 오므려지고 눈썹이 팔자가 되면서 고개가 한쪽 어깨로 붙는 마음이 나왔다. 히잉.. 사장님.. 감사합니다..




                                현역 시절 좋아했던 닭꼬치 집. 14년 만에 돌아와서 먹었다.

둘째, 셋째 누나 집에 갈 때도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닭강정을 사 먹는다. 두 집은 회기역 기준으로 1호선의 반대편에 있다. 셋째 누나 집 근처에서는 프랜차이즈 세 군데 정도 먹어봤고, 둘째 누나 집 쪽에서는 시장에서 나름 유명한 닭강정을 몇 번 먹었다.


유치원 종일반 선생님은 나더러 일하고 학교 갔다가 다시 또 유치원 오는 거냐고 하시면서 안 힘드냐고 물으시는데 유치원에 있으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복잡한 생각 안 들고 청소하고 아이들 보고. 그래도 6시 땡 하고 나와서 오늘 닭강정이랑 김치전으로 일주일 마무리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이 이야기를 꼭 남기고 싶었다. 유치원과 기숙사 다니는 길에 핀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서 사진 찍는 사람들 보니까 기분도 좋고(유치원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교직원들, 주민들 모두가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저녁 먹고 과제도 하나 했고, 오늘은 글 쓰면서 좀 늦게까지 놀고 푹 자고 쉬면 되니까.



+

유치원에 있는 레몬 나무

내가 얼마 전 산 레몬나무랑 똑같은 나무를 유치원에서 발견했다. 훨씬 많이 자란 버전인데, 내 방 창가에 있는 오렌지 레몬나무(한목대)2개 7,500원군도 무사히 자라면 저런 모습이 되겠구나 알게 돼서 갑자기 희망이 보였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게 진짜 중요하구나 싶기도 했다. 전에도 이 나무는 있었을 건데 내가 사고 나니까 뚜렷이 보였다. 템플스테이하러 출발하던 아침에도 맨날 지나다니던 길인데 stay tempo 라는 카페 간판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었는데.


내일 남은 닭강정 먹을 생각하니 또 기분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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