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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un 09. 2024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대학생활

기말고사가 일주일 남았는데 공부는 안 하고 일기나 쓰면서 주말 만끽하려는

카페인에 대하여


술도 그렇고 카페인도 그렇고 많이 안 먹다 보면 내성이 줄어드나 보다. 저번에 스타벅스 말차라떼랑 학교에서 나눠준 조지아 블랙커피를 오후 중에 모두 먹었더니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다. 피가 역류하지 않게 여닫는 판막의 규칙적인 운동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리고 불안정한 자세로 누워 있을 때는 심장의 뜀으로 인해 전신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의 힘, 정말 세구나.


말차라떼도, 조지아 커피와도 상관없는 사진. 컵 슬리브가 귀여워서 찍어뒀던 기숙사 1층 카페의 아메리카노




오마카세에 대하여



사촌 동생과의 두 번째 만남. 셋째 누나가 차를 바꾸면서 우리 집으로 왔던 스파크를 사촌동생이 며칠 전 사가서는 그걸 몰고 학교 앞으로 나를 태우러 왔다. 그리고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 나를 데려가더니 오마카세를 사줬다. 나는 너 덕에 분수에도 없는 호사를 누린다며 고맙다고 했다.


1. 차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해 동생은 취할 일이 없었다.

2. 첫 번째 데이트에서 사촌동생에 대해 데이터를 쌓았다.

3. 오마카세를 먹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이 날은 사촌동생이랑 있는 게 너무 편안했다. 밥을 먹으면서 너무 편하길래 내 기분이 3번에 지배당하고 있는 건가 의심을 해봤는데(따뜻한 커피, 차가운 커피일 때의 호감도 차이처럼) 생각해 보니 차에 탈 때부터 마음을 열고 시작했었다. 동생한테 실수도 했던 첫 데이트였지만 그날을 겪으면서 동생, 그리고 나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어서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식사는 정말 맛있긴 했다. 연어알과 잿방어의 식감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해산물에 대한 선호 가중치가 없는 사람으로서 '아, 해산물 좋아하는 사람이 먹으면 그 사람은 지금 나보다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끼겠지?'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뭔가 아쉬웠다. 오마카세야 미안하다, 더 행복하게 먹어줄 사람이 아니어서.




나를 학교로 돌려보낸 장본인과의 통화에 대하여


경계를 넘어서면 왠지 어딘가로 통할 것만 같은 문 같이 보일 때가 많다. 어쩌면 나를 방에서 학교로 다시 연결해준 문일까.


어느 날 유치원 퇴근하고 기숙사 방에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쉬는데 형아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형아. 그러고 보면 난 아직도 형아라고 한다. 좀 그런가? 내가 번듯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았으면 나는 지금쯤 형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형아"는 "형"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형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고 산 형아라는 말은 그렇다. 그래서 난 형아라는 단어가 재밌고 좋다.


형은 자기가 지금 서브웨이 앱으로 주문을 해놨는데 지점을 잘못 찍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걸어가는 동안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다. 이런저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형이 원래 하려던 말을 시작했다.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바닥을 탁탁 턴 후 소매를 걷는 사람 같은 느낌. 형이 다음 말을 시작하기 전의 짧은 공백에서 그런 느낌이 났다.  


"니 이제 나온지 1년 다 돼 가네. 맞제. 힘내리"


그랬구나. 히키코모리 탈출 1주기가 다 돼 가는 나를 칭찬해주고 응원해주려고 전화한 거구나. 작년 이 맘 때쯤부터 재입학 알아봐주고 그랬었지. 벌써 그렇게 됐구나. 형이 나를 설득해줬지. 형이랑 같이 간 가구 매장에서 고른 태어나 처음 가져본 나의 크림색 침대 위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서.


포기가 하고 싶을 땐 시작한 이유를 생각해보라. 요즘 학교 안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냥 학교 다니면서 다른 거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일단 졸업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재입학한 거였는데. 형이랑 통화를 하고 나니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했던, 학교 다닐 결심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한 거였는데 지금은 무슨 욕심이 이렇게 많아졌는지. 해석 수준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긴 하네. 대학생활이라는 것에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져서 추상적, 목적적 사고보다 구체적, 수단적 사고를 하게 돼서 그런 가봐. 이렇게 또 복습을 하네. 소비자 행동 기말 범위인데.




건국대학교에 대하여 


동갑내기 청년과 1:1 데이트를 하며 우리가 동문이 될 뻔했다고 이야기했다. 상대방은 억지 연결고리라고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내 1학년 1학기 학자금 대출이 건국대학교 앞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한국장학재단에 전화를 해서 알아봤다. (심지어 내 건국대 학번까지 있다니)  그 과정에서 살아난 기억이 있다. 나는 건국대를 갈 생각을 했었다. 이유는 우유 때문인데, 어릴 때 집에서 연세우유랑 건국 우유를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연대를 목표로 공부를 했다가 수능 점수가 연대는 신학과밖에 갈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건대를 썼던 것 같다. 단순 노출 효과가 이렇게 무섭다.


이 일이 꽤 재밌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전산오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내가 기억을 못 하고 있던 거였다니. 마지막에 경희대로 바꾼 건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여전히 기억이 안 난다. 건대를 다녔다고 해서 그 청년을 알게 됐을 일도 없겠지만 인연이라는 게 조금 신기하다.


캠퍼스 투어도 해야 되는데 건대는 언제쯤 가볼까. 일감호도 구경해보고 싶다.




성공한 CSO가 먹는 와인에 대하여


리더십 개발 팀 과제 수행 우수팀 특전으로 교수님 회사에 방문해 투어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한 날이 있었다. 수잔나는 목이 아파서 쉬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일정에 갈지 말지 선택할 때 와인도 먹고 한다는 말에 비싼 와인 먹어볼까 해서 고민 없이 간다 했었다. 좀 발전한 부분이다. 성공한 남자는 어떤 와인을 마실까 궁금하기도 하고.


강남의 회사 건물에 도착해서 교수님과 만나 간단히 회사 구경하고, 회의실에서 잠깐 경희대학교 졸업생 선배 직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학번은 내가 몇 년 높긴 한데 내가 후배인 게 맥락상 더 맞겠지? 아무튼 대화를 하다가 "아, 전 나이가 많아요." 하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조금 눌리긴 했다. 아주 아무렇지 않을 정도는 아닌가 보다 아직.


회사에서 나와 카페와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는 별관까지 구경하고 교수님 개인 라운지로 이동을 했다. 와인을 위한 본인만의 공간이라니, 로망 그 자체다. 교수님이랑 조원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막상 와인 마실 때는 대화에 빠져서 정작 와인들이 어떤 와인인지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조원들이 다들 하나같이 술을 잘 마셔서 나도 편하게 많이 마실 수 있었다. 미안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술을 못 먹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아무래도 나는 술을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은 것 같다. 다 같이 마시는 게 더 좋은가보다.


술을 마시다 보니 교수님도 조원들도 강의실에서는 보여주지 않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내면적인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삶, 시름, 당연하지만 모두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스럽다. 막차 시간에 맞춰(생각보다 엄청 오래 놀았다) 인사를 하고 먼저 공간에서 나와서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적당한 술은 인류애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막차 시간의 지하철역 풍경.

회사 구경하러 가는 날 폰 보다가 역을 하나 지나친 김에 말로만 듣던 봉은사 구경도 했었다. 약속 시간도 좀 남아서 시간도 때울 겸.




아침들.




아빠와의 통화에 대하여



가족 단톡방에 사진도 잘 안 올리고 그랬더니 엄마가 걱정을 좀 했나 보다. 나한테 연락은 안 하시고 누나들한테 물어보거나, 아빠 옆구리 찌르고 그랬나 보다. 아빠가 요즘 내가 소식이 없길래 물어본다며 카톡을 보내셨다. 나는 집에 있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말더듬이가 됐을 만큼 당연히 부모님과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더욱 내 이야기 같은 건 해본 일이 없고 특히 아빠한테는 더 심한데 저 날은 갑자기 평생 가족과 대화 주제로 삼아본 적 없는 연애 키워드를 언급했다.


아빠는 답장은 저렇게 하시더니 다음 날 카톡이 아니라 전화를 했다. 뭐가 궁금하긴 하셨나 보다. "뭐가 잘 안 되나 보대?" 평생을 원수로 여기고 산 아빠한테 어쩌다 연애 상담 아닌 상담을 받은 것 같다. 재밌었다. 사람이나 세상을 바꿀 순 없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자신뿐이라던데, 그랬더니 뭔가 평범한 부자지간 체험을 일순 한 것 같다.


사람은 자기가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할 수 있다. 그 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손바닥 뒤집 듯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할 땐 그렇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증오하는 쪽보다 그래도 사랑하는 쪽에 서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트적 사고에서 아들러적 사고로의 전환이 나한테는 도움이 됐다. "프로이트적 사고, 아들러적 사고"는 그냥 내 머릿속에서 내가 단순화해서 쓰는 말이라 이것이 적절한지, 정확할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건 누가 맞고 틀리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 게 내 경우에 더 도움 되는지 중요한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과거의 이런저런 사건들과 일들로부터 내가 이런저런 영향들을 받았고,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게 큰 도움이 됐다. 그 생각들은 타당한 생각이지만 알고 보니 타당하다고 해서 거기에만 집중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타당한 생각으로 갈아탔다. 특히 가족들한테야 워낙에 관성이 크다 보니까 하던 대로 안 하기가 어렵지만 이런저런 쑥스러움들 감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노력해 왔더니 결과가 썩 만족스럽다.


요즘 화분을 보면서 오렌지레몬 열매가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런 일은 없다. 그래도 열매는 내 성에 안 차서 그렇지 자기 속도로 조금씩 커지고 있긴 하다. 차이식역 테스트 같다.


나도 이런저런 욕심이 많이 늘었는데 레몬 화분을 보면서 한 번에 조금씩만 커지자 생각해야겠다.

지금이 아닐 뿐 언젠가 커다랗게 잘 익은 오렌지 레몬 사진을 자랑할 날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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