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와 형사
지금도 고상필은 직업혁명가의 길을 가고 있을까. 어느덧 혁명은 이룰 수 없는 꿈임이 상식으로 통하는 세상이 아닌가. 고상필이라고 그것을 모르지 않을 터이다. 청년기를 살아내면서, 어떤 이는 듣도 보도 못한 ‘혁명가’를 직업으로 삼은 이가 고상필이다. 나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그의 절정기는 묘하게도 감옥생활과 겹친다. 어제도 오늘도, 과로사한 택배기사들의 파업이랄지, 조선소에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이들의 뉴스를 접하면, 아직도 고상필이 직업혁명가의 허물을 벗지 못했으리란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가 직업을 바꾸었다면 권 형사의 고뇌를 해결해 줄 이는 누구인가?
삼 년 육 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고상필을 마지막으로 면회한 게 전주교도소에서였다. 출소를 석 달 앞둔 그는, 몸도 마음도 무척 지쳐 보였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재수감된 지 열흘이 채 안 지났음을 고려해도 평소와 달리 어딘가 의기소침했다. 그의 무기력함이 어머니 죽음에서 비롯했다기보다는, 불투명한 삶의 행로에 뿌리고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갇
힌 사람답지 않게 그가 보내온 편지는 매번 열정으로 넘쳤다. 수감생활 내내 그는 바깥세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다. 밖에 나가면 이러저러한 일들을 해야겠다고 활동 계획을 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는 소식에 그는 절망은커녕 그들을 조직하고 싸워나가리라는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 “자본이 언제 노동자들을 인간답게 대우해준 적이 있나.”라고 되받아치면서 말이다. 나는 안다. 직업혁명가로서, 그가 누구보다 세상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활동했음을. 그날, 고상필은 출소 후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회장님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해 죄스럽다고, 고통스레 토해냈을 따름이었다.
직업혁명가 고상필과 권 형사. 두 사람은 서로에게 타인이었다. 단지 수배자와 형사라는 신분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직업혁명가 고상필이 권 형사와 엮인 것은 S 자동차 파업사태를 겪고 나서였다.
어느 날, 그 권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압수품을 찾아가라고. 나는 권 형사 일행이 압수수색영장을 앞세워 급습했던 C 시 초원아파트를 떠올렸다. 동료 형사 두 명과 택배기사를 가장해 들이닥쳤던 권 형사는, 고상필과 얽힌 증거물들을 찾는답시고 세 시간은 족히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주인 없는 집에서 머물던 나에겐 수사상 필요하다고 고상필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고. 책꽂이에 있는 트로츠키 평전과 체 게바라 평전 그리고 내가 쓴 분신한 노동자 평전 ⌜불꽃 영혼⌟도 증거물이랍시고 사진을 찍었다. 집안 수색을 마치자 권 형사는 내게 서명을 요구했다.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현장을 지켜본 증인이랍시고 말이다.
나는 압수품 목록 서류에 서명했고, 권 형사와 증인 신분으로 얼굴을 나란히 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실 권 형사 일행이 압수한 컴퓨터 본체, 유에스비, 한물간 MP3, 책상 서랍에서 건진 서류 뭉치 따위는 쓰레기나 진배없는 물건들이었다. 권 형사 일행이 초원아파트를 들이치기 닷새 전, 고상필이 속한 노동자해방연대 동료 조직원들이 수사상 불이익을 당할 만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조직 내부 문건들을 일찌감치 챙겨간 터였다.
권 형사 전화를 받은 나는 적잖이 불쾌했다. 나는 진작 초원아파트에서 물러나 작업실 골방으로 돌아온 터였다. 그리고 압수품들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그가 더 잘 알 거였다.
그것들은 주인인 고상필에게 돌려줘야 마땅했다. 그 무렵 고상필이 춘천교도소에 수감 중임을 권 형사가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고상필의 아내인 J 씨에게 전해주는 게 어떠냐고 했다가 아차 싶었다. J 씨가 고상필과 여전히 법적인 부부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감옥에 있는 고상필에게 한 달에 한 차례쯤 편지를 보내지만, 내밀한 가정사까지 시시콜콜 주고받지는 않았다. 수감 중인 고상필에게 압수품을 돌려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고상필의 아내 J 씨 연락처를 알아보라고 한 마디 건넨 나는, 권 형사에게 그의 여동생 소식을 물어보려다 말았다.
권 형사는 대화상대로는 손색이 없었다. 특히, 고상필에겐 각별한 존재랄까. 그가 아무리 고상필 검거에 혈안인 형사일지라도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로서는 섭섭할지 몰라도, 권 형사는 고상필을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비지는 않은 것으로 보일만 했다. 수배자인 고상필은 놔두고 내 언저리를 자주 맴돌았던 사실은 그도 인정할 거였다. 그가 직무태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만나서도 직분을 잊지 않고 고상필에 대해서 캐묻기를 잊지 않았으니까. 검거 대상인 고상필 신상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야 수사상 필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불꽃 영혼⌟을 들이미는 데야 나로서는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권 형사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해, 유월 초에 수색영장을 집행했으니까, 한 달 보름쯤 지나서였다. 권 형사가 내 주위를 얼씬거리고 있음을 알아챈 게. 열세 평짜리 초원아파트에서 한나절 원고작업을 하고 저녁에 아파트 근처를 산책하거나, 마트에서 치약이나 라면을 사 들고 나오는데 권 형사와 마주치곤 했다. 닭갈빗집을 지나가던 날에는 이 근방에 볼일이 있어서라고 했고, 마트에서 커피를 산 날에는 비번이라 쉬는 참이라 들렀노라고 둘러댔다.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S 자동차가 있는 T 시 경찰서 소속인 형사가 C 시에 하릴없이 놀러온다?), 누가 봐도 권 형사가 나를 보려고 일부러 초원아파트 단지 주변을 어슬렁거렸음을 알만했다. 나는 주인 없는(초원아파트는 고상필 소유였고,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은 터였다) 아파트를 작업실 삼아, C 시와 이웃한 O 시에 있는, 공장 노동자 육백여 명 전원이 비정규직인 명성기업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수색영장을 집행하던 날, 내가 초원아파트에 당분간 머물 것임을 안 권 형사는 나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어렵지 않게 엿보았을 터이다. 처음엔 나도 그가 날 미행하는 줄로만 알았다. 고상필을 체포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리라 여겼다. 눈에 안 띄게 내 뒤를 밟아야지 멀쩡히 내 앞에 나타나서 어쩌자는 건가. 그것도 환히 웃는 낯으로 반갑습니다, 이렇게 또 만나게 되네요, 어쩌고 해가면서 말이다. 우연을 가장한 그의 어쭙잖은 행동에 나는 고상필을 잡으러 온 형사임을 뻔히 알면서도 매몰차게 내치지 못했다.
그렇게 자주 맞닥뜨리자 나로서도 호기심이 발동했고. 잠복근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고상필을 체포해야지 어쩌자고 내 주변을 얼찐거리는 거지?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고, 직업의식이 발동한 나는 본격적으로 권 형사를 흥미진진한 인물로 점찍었다.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던 날에는 후배 형사 둘을 달고 왔던 그가 내 앞에 등장할 때는 늘 혼자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비번이건 직무수행 중이든 티셔츠와 면바지를 빼입은 말쑥한 차림이었다. 강도 살인범 같은 흉악범이면 모를까, 고상필을 검거하는 데 잠복근무를 해야 할까 싶었다.
수색영장 집행 증인과 형사로 만난 우리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신다, 저녁을 먹는다며 급기야 반주도 한잔하기에 이른 어느 저녁이었다. 그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불꽃 영혼⌟을 다 읽었습니다.”
나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버거운 과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알리는 득의만만함이랄까. 권 형사는 오랜 고민을 털어놓듯 내게 말했다. 설마 권 형사가 내가 쓴 분신한 노동자 평전을? 나로서는 언뜻 이해가 안 갔다. 아파트를 수색하면서 마치 불온서적 취급했던 책을 담당 형사가 읽는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고상필을 검거하려고 굳이 ⌜불꽃 영혼⌟을 뒤적거릴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읽은 사실을 내게 알릴 것까지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불꽃 영혼⌟ 주인공은 자동차부품 하청공장인 성진테크의 고상필 직장 동료이자 노조 지회장이었다.
기나긴 파업 투쟁 와중에 분신한 그는, 이틀을 못 넘기고 사망했다. 백번 양보해서 검거 대상인 고상필 행적 파악을 위해서라고 해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권 형사가 고상필을 체포하려는 것은 고상필이 S 자동차 파업에 불법 개입해서였다. 경찰 특공대 공격으로 파업이 막을 내리자 공장에 잠입해 있던 고상필은 S 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붙잡혔고, 워낙 체포된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이튿날 간단한 신원 파악만 하고 풀려났다.
권 형사가 고상필을 체포하려고 초원아파트를 급습했던 것도 고상필이 T 시 경찰서가 지정한 조사 날짜에 출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이번 사건과 몇 해 전에 출판한 ⌜불꽃 영혼⌟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아, 그러셨어요.” 나는 시큰둥하게 받았다. 권 형사에게 그래, 읽은 소감이 어떻습니까? 권 형사님은 범법자를 체포하는 데 자료조사를 무척 열심히 하나 봅니다. 아니죠, 검거할 인물의 과거 행적이나 인생을 샅샅이 파고드시나 보죠? 형사치고는 보기 드문 학구파십니다, 하고 공치사할 수는 없었다.
“근데 말입니다, 궁금한 게 있어요.” 권 형사가 소주잔을 털어 넣더니 말문을 이었다. “책에 나온 거 그거 사실인가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나 해서요. 모처럼 짬 내서 읽은 책인데, 다 읽고 나서도 찜찜해서 혼났걸랑요.”
이전에도 더러 들은 적이 있는 물음이었다. 초원아파트에 가기 전엔, 홍천에 있는 만락사라는 절에서 원고작업을 했다. 주지 스님에게 ⌜불꽃 영혼⌟을 선물했는데, 이튿날 아침 공양 시간에 그가 물었다. 작가님, 이 책에 쓴 게 다 사실이요? 이런 비참한 죽음이 정말로 공장에서 벌어졌다는 건가요? 스님은 밤새 꼬박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면서 속세가 전쟁터라고 우울한 낯빛을 보였다. 또 한 번은, 구십 년대 초반, 어느 문학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나서였다. 그게 아마 팔십 년대 구로 노동자들 동맹파업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으니 세월이 한참 흐른 얘기다. 어느 날,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동창이 주소를 알아내 일부러 나를 찾아왔다. 육학년 때 반장을 했고, 아톰이나 요괴 인간 따위 만화 주인공을 잘 그렸던 친구라 이름도 안 잊었고, 철학을 공부하고 있음을 귀동냥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무려 이십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만난 대학교수 동창도 스님과 다르지 않았다. 소설에 나온 노동자들이 실제로 그토록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냐고, 그는 궁금해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후설을 전공했다는 동창은 외국에서 십 년 넘게 공부를 하느라 한국 사회 물정을 모른다고, 자기로서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노라고. 나로서는 스님이나 철학 교수가 권 형사와 다를 바 없었다. 절간에 사나 저잣거리에 사나 노동자들 분신 소식에 깜깜하기는 마찬가지니까.
“권 형사님, 제가 소설가지만 ⌜불꽃 영혼⌟은 소설이 아녜요. 그러니까 논픽션이라고 실화를 취재해서 정리한 것이죠. 르뽀라고도 하고, 하여간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가감 없이 되살려내는 거랄까요. 소설처럼 상상으로 얘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음, 저번에 수색영장 집행하던 날 아파트서 뭐하냐고 물어봤잖아요. 제가 O 시에 있는 명성기업 비정규직 실태를 취재 중이라고 했고요. 이번 작업도 ⌜불꽃 영혼⌟하고 똑같은 방식이에요.”
“아니, 그럼, 거기서 지회장 말고도 또 한 친구가 구사대에 얼굴을 맞아서 입원도 하고, 나중에 그게 원인이 되어 종양이 머리로 퍼져서 죽잖아요. 그것도 사실이라 이거죠? 잔반통에 버린 음식을 쓸어 모아서 비빔밥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먹이잖아요? 그것도 공장에서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건가요? 아니, 그게 사람이 할 짓이에요?”
“취침 시간 같은 사소한 거나 인물들 대화야 좀 가공할 수 있겠지만 벌어진 사건은 다 사실이에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나는 잘라 말했다. 굳이 백 명도 넘는 증인이 있다고는 밝히지 않았다. 권 형사의 얼굴에서 그가 받았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했으니까.
“이이고 참, 이거 미치겠네.” 권 형사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작가님도 아시겠지만,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이건 휘발유 시너를 몸에 붓고 라이터로 불을 댕기잖아요.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 저 같은 사람은 엄두도 안 나걸랑요. 뭐랄까요, 죽음을 결심하기까지…피 말리는…그 극한의 정신상태랄까요, 저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다다를 수 없는 세계더라 이거죠.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죽는 방법이라는 게 자기 몸에 불을 지르잖아요. 그 순간 심정이 어떨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도무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장작도 아니고 사람 몸이 불에 활활 타다니,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그렇죠, 이해가 안 가죠, 라고 나는 권 형사에게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권 형사님이나 스님이나 나나 우리가 살아온 인생살이로는 범접하기 힘들지요. 하물며 가족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에야, 타인인 우리가 어찌 스스로 불덩이가 되는 인간의 절박함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