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희추하는 날

10 엄마가 쉬는 날

by 김호진

여름 방학이 되면 소 키우는 아이들은 모두 모여서 쇠풀 먹이는 장소로 이동했다.

동네 형들이 없는 날이면 아이들은 매미 잡기 시합을 벌였다. 먼저 소 꼬리에서 긴 털을 몇 가닥 뽑고 나무 가지를 하나 다듬어 끝에 홁여 맸다. 묶을 때 매미가 잡히면 조여들게 묶어야 했다. 묶는 방법을 아는 친구에게 모두 줄을 섰다. 묶기가 끝나면 각자 흩어져 매미 소리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 매미를 발견하면 가느다란 소꼬리를 둥글게 묶은 막대기 끝을 매미 머리로 씌워 당긴다. 매미는 발버둥 치지만 여러 개 다리가 가는 실에 소꼬리에 엉키고 만다.

시합은 매미 크기로 하는경우도 있고 잘 우는 매미로 등수를 정하기도 했다. 매미 배를 살살 간지럽히면 매미는 잘 울었다. 수컷은 배에 진동막이 있는데 이 부분을 간지럽히면 소리 내어 울었다. 소리가 나는 매미를 발견하고 잡기 때문에 진동막이 없는 암컷을 잡을 확률은 낮지만 가끔 진동막이 없는 암컷을 잡아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흥미가 없어지면 아이들은 일제히 매미를 날려 보냈다. 매미는 가까운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다시 울기 시작했다.


매년 모내기가 끝나면 마을 엄마들이 하루 휴가를 얻었다. 할머니께서는 '희추 가는 날'이라고 하셨다. 어머니께서도 전날에 진희네 집으로 가셨다. 음식 준비하는 날이었다. 엄마들은 모두 또래 친구 엄마들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스무 명의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했다. 엄마들은 전을 부치고 단술, 두부, 돼지고기, 떡 등 잔칫날처럼 음식을 마련했다. 내일이면 엄마들은 한 바탕 먹고 마시며 마음껏 얘기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었다.


마을 뒷산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둥구방'이라고 부르는 펑퍼짐하게 펼쳐진 잔디밭이 바로 엄마들이 1년에 한 번 놀이를 하는 날이었다. 작년에도 친구들과 근처 언덕배기에 배를 깔고 엎드려 엄마들의 한 바탕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노랫가락에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흥이 무르익으면 장구로 장단을 맞추어나갔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얼시구절시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그러자 모두 일어나 한복 치마를 둘러 허리춤에 묶고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어머니께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에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희추' 가는 날에는 할머니께서 나에게

"오늘은 엄마를 찾지 마라. 친구들과 마을 엄마들이 모인 곳에 기웃거리는 것도 한다면 그건 몹쓸 짓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농사일하느라 고생했다고 하루 휴가 주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 친구들과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엄마들에게 다가가 음식을 먹거나 보채는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바람에 살랑이는 한복 치마가 멀리서 보일 정도의 거리를 두고 놀았다.


그날은 할머니께서 밥을 챙겨주었다. 할머니는 집에서 조용히 밀린 빨래를 했다.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양잿물을 붓고는 마루에 쌓여 있는 옷들을 넣었다. 양잿물을 넣으면 묵은 때도 잘 씻겨 나간다고 하시면서 옷을 삶을 때 양잿물을 사용했다. 양잿물을 사용할 때는 나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너무 독해서 얼굴에 닿거나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잿물을 사용했는데 서양에서 들어온 양잿물은 독성은 있지만 때가 워낙 잘 빠져서 마을 집집마다 사용하지 않는 집이 없다고 하셨다.


마을 할머니 희추날에는 어머니들이 전 날 준비를 도와주었다. 할머니 희추날은 손자들이 주변에 뛰어다녀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엄마들보다 할머니들은 더 신명 나게 춤을 추고 노랫가락도 더 흥겨웠다. 할머니들은 마을 앞 큰 팽나무 아래에서 잔치를 즐겼다. 할머니는 곡주를 즐겨 드시고 담배도 피우셨다. 대부분의 할머니 친구 들도 술이며 담배를 피우셨다. 일하고 쉴 때는 담배 한 모금하면서 농을 떨고 나면 또 일할 힘이 생긴다고 했다.


남자들은 수시로 사랑방에 모여 놀이를 하기 때문에 따로 놀이를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희추'는 동네 할머니와 어머니를 위한 날이었다. 농사일과 집안일 그리고 아이 낳고 키우는 고된 노동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쯤 희추놀이판의 웃음소리도 잦아들었다. 아이들도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어머니를 기다릴까 하다가 동네아이들과 언덕을 뛰어내려갔다. 산그림자가 앞 마을을 꺼멓게 덮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사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