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진 Sep 28. 2023

입소

치유의 숲

입소



2021년 4월 13일 오후 1시.


재수술한 부위의 실밥을 아직 뽑지 않은 상태였다. 운전을 걱정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출발하였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몸을 꼿꼿하게 세워서 수술부위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했다. 


세 시간을 달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자동차는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섰다. 

길섶에 핀 야생화들이 햇살과 바람에게 길을 내주듯이 숲은 조용히 물러나 길을 열어 주었다. 자동차는 잣나무 숲이 우거진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잠시 후 옹기종기 모여있는 황토집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코로나로 '외부인 출입제한'이라는 빨간 표지판이 걸려있는 입구 차단기를 통과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인 숲 속 마을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곳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입소하기로 예약을 해둔 곳이었다. 퇴원하고 집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나를 위해 아내가 병원과 가까운 장소를 찾아냈다. 오늘은 예약한 날보다 한 달 정도 지났다. 

퇴원이 늦어진 것은 내 몸의 장기들이 제 가능 하지 못하자 혈액 검사와 CT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퇴원하고 며칠 만에 수술 부위가 터져버린 일이다. 재봉합 수술을 하기까지 14일을 또 다른 고통 속에서 내 몸은 신음했다. 


집을 떠나고자 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아내를 너무 힘들게 하여 잠시나마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숲의 치유력과 자연식으로 면역력을 높이고자 했다. 이곳은 암 환자들이 수술을 했거나 수술 후 항암치료 중인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음식은 자연식으로 제공한다고 했다. 


관리소장은 방을 배정하고 직접 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온돌 침대와 세탁기 사용 방법 알려주고 주변 산책로와 생활관 일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짐을 풀고 방을 나왔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산책로를 살펴보았다. 관리소와 식당이 딸린 본관 앞에 나 있는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식당은 깨끗했다. 벽에는 자연식의 효능과 자연치유 이야기를 담은 인쇄물들이 붙어 있었다. 잔잔한 7080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연식 밥상'으로 이름이 알려진 분이 식단을 계획하고 요리까지 하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출간하고 인터뷰한 사진도 보였다. 채소는 가능한 직접 재배하는 밭에서 무농약으로 생산한 재료를 사용하여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저녁은 죽 한 그릇과 과일 하나가 전부였다. 평소에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었던 저녁 식사가 오늘부터 가장 적게 먹게 된 것이다. 


"이게 다 인가요" 


나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면서 물었다. 

마침 같은 식탁 맞은편에 있는 그 여자분이 바로 항암식단전문요리사였다. 요리사는 반갑게 인사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지는 않나 하고 살펴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항암식단은 저녁을 가장 소식하는 것으로 짜여있습니다. 저녁을 소식하는 이유는 적게 먹으면 소화 시간이 짧아져 소화기관에 부담을 줄일 수 있답니다. 이렇게 소화가 빨리 끝나면 소화기관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겠죠. 그러면 몸이 가진 에너지를 전적으로 자가 치유에 사용하게 됩니다. 수술이나 항암치료로 지친 몸을 회복하거나 면역력을 높이는데 좋은 방법입니다. 일종의 짧은 간헐적 단식을 통해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특히 몸의 장기들이 쉬고 있을 때 깊은 잠을 잘 수 있답니다. 숙면은 치유력을 훨씬 높이게 됩니다. 깊은 숙면은 몸의 재생과 회복에 결정적이라고 봅니다. 좋은 음식도 중요하지만 잘 자는 것도 자연치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대신에 아침과 점심은 날마다 필요한 양양소를 제공하는 풍성한 식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살아왔잖아요. 각종 스트레스는 몸을 긴장하게 만들어 독성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을 나오게 만들어 몸을 힘들게 했지요. 또 삶이 풍족해지면서 너무 많이 먹었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물 넘치게 섭취하여 몸을 괴롭힌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식은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지요. 그리고 몸이 편안하면 결국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항암식단 전문가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는 표정과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음식만 바꾸었는데 몸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험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음식은 인간의 행동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유와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과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을 비교 조사한 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어느 시골 마을에서 염소에게 줄 사료 값을 아끼려고 인근 두부 공장의 비지를 퍼다가 먹였는데 나중에 새끼를 낳는데 자꾸 기형이 나오고 질병으로 죽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그 원인은 바로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로 생산한 수입콩이 문제였던 것이다. 정말 이제는 편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 역시 암을 경험하고 암을 가진 사람으로 철저한 편식이 필요했다. 가능하면 유기농 농산물을 사용하고 계란 하나를 구입하더래도 난각번호를 꼭 확인하고 구입하고 있다.


결국 그녀의 말은 일찍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모든 내장과 장기들을 푹 쉬게 해 준다는 의미였다. 그동안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거꾸로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까지 해 주었다. 


단맛과 간이 전혀 없는 죽과 아보카도 한 개를 먹었다. 짧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 잔디가 깔린 마당 둘레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처음 보는 얼굴이라 가까이 다가와 위로의 말을 하거나 궁금한 것을 물었다. 

황토방으로 돌아와 맥반석 돌침대에서 몸을 뉘었다. 뜨끈뜨끈한 온돌 위에 몸을 뉘니 몸이 이완되어 뭉쳤던 근육들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잠시 내 삶을 뒤돌아 보았다. 40대에는 독한 술을 마시고 몸에 좋다고 하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었다. 간염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인스턴트식품과 가공식품도 마다하지 않고 먹었다. 그리고 몸이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마음은 늘 불안과 두려움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가면을 쓴 또 '다른 나'인 에고는 불만과 불평, 비교하기를 좋아하고 시기로 무장한 채 고통을 가져와 마음까지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간에 암세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암세포는 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잠들기 전에 기도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삶을 사랑하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 몸이 움직이고 심장이 뛰고, 숨 쉬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설령, 내일이 찾아오지 않을지라도 나는 이 순간 미소 지으며 잠들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