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을 지나 고요한 새벽에 혼자 깨어 있는 느낌이 좋다.
집안에서 보이는 뻥 뚫린 시티뷰의 큰 사거리를 바라보면
단 한순간도 차들이 없었던 적이 없다.
새벽 1시고 2시고 5시 이건 간에 단 한순간도
빈 사거리를 마주 한 적이 없었다.
계속해서 24시간 내내 쳐다보고 있지는 않지만
자다 깨서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나왔을 때도 습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퇴근이 좀 늦어졌거나 출근이 좀 빠르거나 하는
시간 이외에도 늘 그렇다.
도대체 새벽 3시에 어디 가는 거지?
새벽 1~2시야 자정까지 야근하고 퇴근하는 차겠거니 싶고
새벽 5~6시야 직장이 먼 사람들이 일찍 출근하는 거라 생각되는데
정말 애매한 시간 새벽 3~4시는 뭐 하는 사람들인 거지?
너무 궁금하다.
넘겨짚어보면
갑자기 새벽에 아이가 아파 병원으로 가는 무거운 차 일수도 있고
새벽 비행기 타고 여행 가는 사람들의 가벼운 차 일수도 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일정을 가지고 저 사거리를 통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면식 없는 한 번도 만나지도 않은 차들일 지라도 이왕이면 병원으로 향하는 무거운 차들 보다는 여행으로 가는 가벼운 차들로 경쾌하게 사거리를 통과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여행을 가면 분명 기분전환이 되고 색다른 경험을 하지만 나는 여행 가기까지의 준비과정부터 여행지에서의 일정 교통편등의 상황을 컨트롤하는 것이 신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대신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매번 그렇게 따라만 다닐 수는 없다.
누군가가 일정계획 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에게 온전히 맡겼다고 해도 여행 끝에는 항상 수고에 버금가는 모바일 케이크를 선물하거나 커피를 선물했다.
진심으로 고마웠기 때문에 별다른 망설임 없이 선물했고 받는 사람도 별다른 의심 없이 기분 좋게 받았다.
여기까진 좋았다.
시간을 분단위 초단위로 나눠 쓰며 일정을 계획하는 누군가는
눈을 감고도 펼쳐질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여행 후에도 남는 기억이 많을 것이다.
가기 전의 설렘과 다녀온 후의 경험이 합쳐져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며 뇌 속에 정확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기 전의 설렘으로, 경험하면서 신선한 느낌만으로 여행을 마감한다.
물론 다녀온 후의 기억이나 느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 순간 기억만 강렬할 뿐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게 나인 것 같다.
시간이 될 때마다 유튜브 브이로그라는 걸 보게 되었다.
저마다 각자 콘셉트를 가지고 일상생활을 찍어 영상과 자막 노래를 덧입혀 올렸다.
희한한 것은 나와 공통점이 없는데도 관심이 끌렸고 공통점이 있어도 안 보고 싶은 감정이 든다는 것이다.
열명 남짓하는 구독자가 생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는 새로운 영상이 신선한 재미를 준다.
그들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만도 아닌 듯하다.
그냥 내 삶을 공유하며 응원받고 삶을 놓지 않으려고 불특정 다수에게 약속 같은 것을 하는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공유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방적으로 영상을 올리는 유투버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캐치하거나 공감하는 구독자 형태이고 댓글을 다는 정도가 피드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냥 위로가 된다.
너무나 뻔한 알고리즘에 한번 접했던 단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비슷한 영상을 업로드시킨다.
그 순간만 재밌으면 그만이다.
내용이 재밌고 알기 쉽고 또 보고 싶고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면 됐다.
굳이 유익할 필요도 기억에 남을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순간 다른 생각 없이 편하게 보게 되는 정도면 된다.
그런데 즐겨보던 유튜브 브이로그에서도 어쩌다 한두 번 찍게 되는 여행이야기가 제목에 붙어 있으면 나는 그 영상은 클릭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여행은 나랑 안 맞나 보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는 여행 전 날의 설렘마저도 무시당하는 날이 올까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