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다시 마주하다
나에게 다시 없을 지도 모를 3주간의 몸부림은 내가 어느 정도의 한계점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일깨워 주었고,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쉽게 이루어질리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생의 버킷리스트이자 꼭 극복해보고 싶었던 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종종 나를 괴롭혀왔다. 사실 수영을 배우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몇년이 걸렸는지 모른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고 배우겠다고 결정을 하고 나서도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랬던 몇년간의 다짐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 않아 시작해보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낑낑거리며 수영복을 입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몇일전 시뮬레이션을 돌렸을때 긴장과 더불어 모든 상황을 예상했던터라 집에서 몇번을 환복하며 연습을 많이 하고 들어간거여서 그나마 수월하게 입었던 것 같다. 수모와 수경도 야무지게 쓰고 수영장에 들어섰을때 물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영장은 인테리어가 예뻤지만 물은 예뻐보이지가 않았다.
골반까지 오는 0.9미터의 낮은 수심이었지만 물트라우마가 있는 나에겐 결코 낮은 깊이는 아니었다. 천천히 사다리를 의지해서 내려가고 골반까지 물에 잠겼다. 미지근한 온도의 물에 차가워진 생각의 온도를 맞춰야만 했다. 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나 할 수 있겠지?!!
물의 카리스마만큼이나 위엄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이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겁을 한가득 집어 먹은 창백한 얼굴을 기억해 주세요. 무섭다구요!!! 불쌍하고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강사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음..파.. 호흡을 위해 입수를 해야 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오고 과호흡이 왔다. 현기증이 일었다. 집에 가고싶었다. 유일하게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지 못한 사람이었다. 만감이 교차하고 수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할 수 있을까? 그만 둘까? 근데 아직 시작도 안했어 ㅠㅠ 이럴꺼야? 일단 진정하자. 심호흡 하고 다시 한번 해보자.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다시 한번 숨이 막혀오고 현기증이 났다. 많이 무서웠다. 시간을 벌어볼 심산은 아니었지만 강사님에게 설명을 해야만 했다. 나의 물트라우마에 대해. 그리고 내가 얼마나 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강사님은 겁에 질린 나에게 선수할것도 아닌데 천천히 시도해보라는 말을 건넸다. 괜찮다..괜찮다....괜찮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리고 세번째 입수!! 귓가에 들리는 물의 위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수경밖으로 물이 보인다는 것에 안도하려 애를 썼다. 계속 해야 익숙해진다는 생각에 많은 생각들에 발목이 잡히기 보다는 "그냥 해"가 맞았다. 계속 그냥 했다. 현기증이 가시진 않았지만 입수는 꽤 성공한 듯 했다.
긴장상태가 지속되었지만 아직은 수영장 밖으로 뛰쳐나가진 않았다. 여전히 물속이다. 벽을 잡고 몸을 띄어보았다.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내 몸이 쉽게 뜰 리 없었다. 자꾸만 가라앉는 다리를 띄우며 어설픈 호흡을 이어 갈 뿐이었다. 벽을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는 손을 놓칠까봐 있는 힘껏 꽉 잡고 있던 손과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강사님은 나를 꿰뚫어 보고 계셨다. 무서워서 잔뜩 힘을 주니 팔이 저리고 몸이 가라앉는거라며.. 힘을 어떻게 빼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킥판을 잡고 물에 떠보기로 했다. 여름방학만 되면 물개 아이들과 워터파크에서 놀아주느라 의지하던 튜브를 생각하며 킥판은 날 가라앉지 않도록 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킥판 끝을 꽉 잡고 몸을 띄웠다. 물에 떠 있는 느낌이 좋았다. 킥판에 의지하고 몸이 물에 뜨다니..
첫 수업의 시작이 쉽지 않았지만 수업이 끝날때쯤 긴장이 풀려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과 익숙해지면 긴장하지 않고도 물에서 수영을 배울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귀가 후 긴장이 서서히 풀리면서 피곤함이 밀려왔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 첫 수업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번째 강습 날!!
이틀만에 시작된 두번째 강습날엔 첫 날의 잠시 풀렸던 긴장감은 정확하게 리셋되었다. 샤워할때부터 몰려드는 두려움이 엄습한 상태로 또 낑낑거리며 환복을 하고 수영장으로 들어섰다. 안녕!! 오늘은 좀 낫길 바라.
이제 킥판은 나와 한몸이 되었다. 너만 있으면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킥판과 분리되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것도 물 속이 보이지 않는 배영자세였다. 분명히 몸이 뜰거라고 했지만 머리가 가라앉을것만 같았다. 강사님이 잡아 주셨지만 물에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극한의 공포가 밀려왔다. 내려가고 싶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 진도를 나갈때 발목을 잡히곤 했다. 답답했다.
물에 적응 할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 자유수영을 가기로 하고 강습이 없는 날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유수영을 갔다. 입수전에는 늘 긴장상태였으므로 호흡연습을 하고 벽잡고 몸을 띄워보고 20분정도는 적응할 시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킥판을 잡고 배운걸 연습하고 반복하니 감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킥판을 잡고 다리가 뜨기 시작한건 자유수영 3일차였다. 강습시간에 강사님의 몸을 쭈욱 늘리고 물에 몸을 맡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과도하게 힘을 주고 있던 팔에 힘을 빼고 조금 더 뻗어 보았다. 드디어 다리가 수면 가까이 뜨면서 발차기가 가능해졌다. 발차기의 추진력으로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꽤 괜찮았다. 연습에 속도가 붙었다.
일주일을 내리 물에서 보냈다. 점점 컨디션이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잘 되던 호흡이 안되고 호흡이 안되니 다시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몸살이 난걸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뜨거워진 머리가 오늘은 쉬어주는게 좋겠다고 말하는 듯 했다.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늘 무언가를 시작할때 몸살을 겪었다. 몸살감기가 지나갔으니 더 단단해 질거라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강습이 끝나면 30분정도는 더 연습을 했고 매일 가던 자유수영은 하루만 쉬기로 하고 매일 갔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가 가능해졌고 이제는 중간 호흡을 하며 레인끝까지 가는 동작을 연습했다. 호흡을 하려고 고개를 들면 물을 먹기 일쑤였고 다리는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 강습때 이런 동작을 강사님께서 잡아주셨는데 호흡하는 시간을 짧게 갖고 발차기는 계속하고 가라앉더라도 일어나지 않고 끝까지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계속 연습하고 레인 끝까지 가는동안 네번의 호흡 중 두번은 성공했고 두번은 물을 먹었지만 가라앉은 다리를 다시 띄우고 끝까지 갔다. 그렇게 한바퀴를 돌고 나면 매우 숨이 찼다.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입수를 하고 호흡을 하며 다리가 가라앉지 않도록 열심히 발차기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완전하진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동작을 보니 뿌듯하고 성취감에 도취되어 보기도 했다.
강습이 있는 날이면 늘 극도의 긴장상태로 리셋이 되곤 했다. 자유수영날은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입수할 수 있었지만 강습날은 단체수업이기 때문에 진도를 따라가야 했다. 물공포증이 있는 것 치고는 잘 해왔고 강습날도 쉽진 않았지만 즐겁게 수업에 임했다.
3주차에 들어서고 강습의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분명히 강습진도와 상관없이 내 페이스대로 수업했고 강사님도 쫄보의 속도를 강요하지 않았다. 강습을 가기 전날부터 문득문득 두려움이 엄습해왔고 때때로 가슴이 답답해지고 무서워졌다.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니까.
3개월만 버텨보고 싶었다. 3개월쯤 버티면 버틸만해 질 것 같았고 익숙해 질 것 같았다. 영법이 문제가 아니었다. 킥판잡고 호흡하며 발차기만 제대로 해도 좋으니 물 공포증이 조금이라도 사그라 들기를 바랐다. 늘 발목잡는 물 공포증은 계속 나를 조여왔다.
3주차 두번째 강습날. 컨디션 조절에 성공해 컨디션이 나쁘진 않았지만 유독 긴장감이 가시질 않았다. 바로 수업에 임했던 다른 날과는 다르게 첫날의 공포감이 다시 한번 온몸을 감싸며 날 괴롭혔다. 강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석에서 호흡연습을 하며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혼자만의 싸움을 해야만 했다. 20분이 지나서야 수업에 투입되었다. 늦게 시작했던 터라 강습이 끝나고 30분정도 더 연습을 해야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음날 자유수영을 갔고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오늘 컨디션도 괜찮고 어제 연습한대로 오늘도 연습하면 되겠지... 호흡을 가다듬고 워밍업을 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졌다. 잘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는 거니까 안되면 안되는대로 되는 만큼만 하면 될 일이었다.
호흡은 그런대로 됐는데 중간 호흡하면서 자세는 계속 흐트러졌고 물먹는 일이 많아졌다. 괜찮았던 컨디션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호흡도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안좋아지면 두려움이 더 가중되기 때문에 오늘같은 날은 그만 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늘 연습을 한시간 넘게 하다가 40분만에 퇴수하는 나를 보고 강사님도 컨디션이 안좋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조금은 애처롭게 바라보는 강사님의 눈빛에 짧게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나온 그날이 나의 수영인생 마지막 날이 되어버릴줄은 몰랐다.
지인과의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음악도 틀고 오늘 자유수영이 조금 안되긴 했지만 그래도 빠지지않고 연습한거에 의미를 두기로 하고 기분좋게 약속장소로 갔다. 밥을 먹으면서 대화의 첫번째 주제는 수영이었고, 수영이 재미는 있는데 아직 물이 무섭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컵에 가득 담긴 물을 마시는데 문득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부정하고 싶었다. 12년전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때 처음 생겼던 공황증세가 다시 오기 시작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고 지금껏 살면서 출산 이후 공황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대로 지나가 버린줄 알았던 그 녀석이 다시 찾아 온 것이다. 컨디션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귀가를 하고 나서도 공황증세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 주기가 점점 짧아졌고 견디기 힘든 두려움과 공포감은 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울면서 남편한테 전화를 하고 집밖으로 나갔다. 바람을 쐬며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과 산책을 하며 수영을 하면서 즐거웠던 일들과 무서웠던 일들에 대해 쏟아냈다. 그리고 신경안정제를 먹고 나서야 공포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두려움을 억누르며 버텨보겠다던 다짐이 어쩌면 스트레스를 조금씩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진건 아닌지. 다시는 만날 것 같지 않았던 공황증세를 다시 만나게 한건 아닌지.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건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겨우 3주간의 결투로 단정짓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황을 마주하고 나서 더 이상은 수영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병원을 찾아야만 했고 언제 또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공황증세를 눌러줄 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의사선생님에게 그간의 일들과 내가 느꼈던 것들을 쏟아내며 눈물이 났다. 이겨내고 극복하고 싶었고 하다보면 될 줄 알았다. 정신력 하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열심히 했던 수영을 공황때문에 그만 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았다.
이 날이 나에겐 큰 허무함으로 다가왔다. 연습하며 터득해 나갔던 동작들. 물에 뜨고 발차기가 됐을때 느꼈던 뿌듯함과 성취감. 처음 입수에 성공했던 날. 물 무서워 하는 사람 치고는 잘 한다는 강사님의 칭찬과 응원. 발차기의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가는 기분좋았던 느낌들. 반에서 제일 느린 꼴지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나의 노력들.
공황증세가 사라지길 바랐다. 그리고 욕심내지 않고 되는 만큼만이라도 수영을 배워보고 싶었다. 의사선생님에게 신경안정제를 먹고 계속 배우는건 무리일까요?라고 여쭤보았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공황증세가 시작된것은 두려움때문이었고 두려움이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누적의 결과로 공황이 찾아왔다. 의사선생님은 조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시며 말했다.
답은 본인이 잘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맞아요!! 지금은 무리하지 않는게 좋아 보여요.
나중에 다시 도전해 보시더라도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 나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3주간의 노력을 포기해야만 했던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왕 올거였으면 조금만 더 있다가 찾아오면 좋았을 걸. 다시는 만날것같지 않았던. 너무 빨리 와버린 공황장애라는 병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가 않았다.
한가지 위안을 삼으려 한다면 그래도 도전을 해봤다는 것. 비록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도전을 해보고 포기한 것과 시작도 안해보고 포기하는 것은 다르니까.
다시 시작해 볼 용기와 공황이라는 녀석이 조금 늦게. 그리고 심하지 않게만 찾아와 준다면 언제가는 다시 한번 시작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