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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스리는 방법

일단 목표는 10km 입니다

by 소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몸은 전에 단련이 되었던 심박수와 폐활량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발을 내딛고 뛰던 속도보다는 느린 속도로 시작을 하고 5km를 뛰었다.


항우울제를 끊어보기로 결심했다. 의사 선생님께 신중히 말씀드렸다. 공황장애는 더 겪지 않았고 불안증세도 심하지 않은데 요즘 러닝을 하고 있으며 운동으로 이겨내 보는게 더 좋을거 같다고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약 복용기간이 짧아 약효가 거의 없는 시기인데 증상이 심하지 않고 본인 의지가 강해서 약을 끊어도 상관없을 거라고 했다.

이렇게 장복과 단약을 고민했던 항우울제를 끊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달렸다. 달리고 나면 살 것 같았다.


몇년전 재활로 PT를 받으면서 웨이트를 시작하고 트레드밀에 올라 걷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면서 한시간씩 걷는게 수월해졌고 그렇게 달간은 한시간씩 빠르게 걷기를 했고 그 다음엔 인클라이드를 높이고 속도를 조금 줄여서 20~30분 걷다가 나머지 시간은 평지에서 걸었다.


몇달 후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튼튼한 폐로 폐활량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기에 천천히 뛰는게 수월했다. 그렇지만 지구력이 부족했다. 2분을 뛰고 2분 걷기를 하며 몸을 적응시켰다. 점점 뛰는 시간을 늘려갔다. 5분을 뛰고 2분 걷기. 10분을 뛰고 2분 걷기. 15분을 뛰고 2분걷기.. 30분 뛰어보기. 그 다음엔 거리를 정했다. 1키로 뛰기. 2키로..3키로...5키로.


트레드밀에서 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년을 트레드밀에서 뛰었는데 거리는 늘었지만 속도는 잘 늘지 않았다. 렇지만 급해하지 않았다. 무리하면 늘 부상으로 이어졌으므로 힘든 날은 적당히 뛰었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속도와 거리를 높여 뛰었다. 그렇게 트레드밀에서 단련시키며 몸을 적응시켜 나갔다.


그리고 왠만큼 단련된 심장과 웨이트로 다져놓은 근육의 힘에 의지해 야외로 나가서 달리기 시작했다. 트레드밀에서 달릴때보다 높은 페이스로 달릴 수 있었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아직 초가을의 아침은 태양이 뜨거웠다. 옷은 땀으로 젖었고 팔은 워치를 찬 부분만 빼고 진한색으로 그을렸다. 마치 훈장같은 이것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야외로 나가 3키로를 달렸다. 트레드밀에서 몇년간 단계적으로 단련시켰던 심장과 폐는 분명 나의 거리를 조만간 늘려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5키로를 뛰었을땐 성취감으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오래전에 나갔던 마라톤대회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제대로 뛰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5키로 대회를 접수하려던 마음을 바꿔 10키로를 덥썩 접수해 버렸다. 아직 5키로밖에 뛰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10키로를 완주했을때의 대략적인 시간을 예측해야 했다. 현재의 페이스로 추정했을때 대략 1시간 10분정도로 정했다.


서울권의 조금 큰 대회에 접수하려고 보니 컷오프가 1시간15분이라 자신이 없었다. 작은 대회로 컷오프가 두시간인 곳이 있어서 바로 접수를 했다. 두시간이면 천천히 달려서 완주를 목표로 뛰어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약 한달 반 가량의 연습시간이 주어진 셈이였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점점 거리를 늘려갔다. 6km. 7km. 8km까지 뛰다가 그 다음날은 바로 10km로 점프했다. 사실 주에 1km씩만 늘릴 계획이었는데 컨디션이 유난히 좋았던 날 10km의 기록이 궁금해서 8k에서 조금 더 뛰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달리면서 늘 숨이 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한다. 추고 싶은 순간이 시시때때로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속도를 줄이고 숨을 조금씩 고르다보면 조금씩 안정되는 몸상태를 알기 때문이다. 달리다보면 인생의 흐름을 마주한다. 포기하지 않는 지구력으로 인생을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낼 힘을 얻는다. 멈추고 싶은 순간을 이겨냈을때의 희열은 인생의 무게를 견딜 에너지를 줄 것이다.


10km를 처음으로 뛰었을때 내가 이걸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취되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단계적으로 연습하면서 페이스도 올라갔고 예상했던 1시간 10분보다는 빠른 1시간 3분에 첫 10km를 뛰어냈다. 이대로라면 대회때 60분 언더도 가능할 것 같아서 연습에 불이 붙었다. 일주일에 4~5번은 저녁에 달리러 나갔다.


우중런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비가 잠시 그쳤던 저녁 천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을때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고 많은 양의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이미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멈추고 싶지 않았다. 모자에서 물줄기가 흐르고 러닝화가 물에 젖어 무게를 더했다. 다행히 체온은 올라가있는 상태여서 춥진 않았지만 체온이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계속 달렸다. 시원했다.


다리 밑에서 휴식을 취하시는 어르신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뛰는데 크게 문제될건 없었다. 간간히 우중런을 즐기는 러너분들을 볼 수 있어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비 덕분에 산책하던 사람들이 시야에서 많이 보이지 않아 사람을 피해 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길은 트여있었고 빗소리는 경쾌했다.


나란 인간은 예민하고 세심한 사람이다. 예민하다는 것이 꼭 나쁜것은 아니지만 컨디션이나 감정조절이 어려울땐 약점으로 나를 괴롭히곤 한다. 내안에 나를 가두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종종 겪는 불안증세를 겪고 싶지 않아서.. 예민함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이겨내고 싶었다.


예민한 감정도 체력에 기인했다. 체력이 떨어지는 날엔 유독 예민함이 심하고 감정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날은 더 힘들었다. 결국 이러한 감정에서 많은 잡생각들이 파생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고 나서야 이런 감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감정에 지배되는 날은 주저없이 달렸다. 달리기로 나를 다스렸고 다행히 달리고 나서는 이 모든것들이 아무문제도 아닌게 되어 있었다. 문제점을 해결했다는 뿌듯함과 숨이 차오르는 순간들을 이겨냈다는 성취감이 오늘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달리고 나서야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나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으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첫 10km를 달성했을때의 근육통은 이제 오래가지 않는다. 잘 뛰어지는 날은 근육통없이 지나가는 날이 많아졌고 부상방지를 위한 보강운동을 틈틈히 해주로 했다.


그리고 몇일 전 드디어 목표로 했던 10k/60분 언더를 달성했다. 한번 달성한 기록에서 왠만하면 더 떨어지지는 않도록 페이스 조절을 하고 마일리지가 쌓일수록 페이스는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심박수도 더 안정되어갔고 5k가 넘어가면 아파오던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통은 견딜만한 수준의 없으면 허전할 정도의 작은 통증에 불과해졌다. 미세한 생채기로 허벅지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달 전, 해오던 일과는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특별한 거부감 없이, 되려 설레임과 호기심이 발동다. 그리고 사회생활경력을 통틀어 경험치로 보자면 자신감도 어느정도 있었다. 것들은 달리기를 시작하고 목표치에 도달할때마다 느꼈던 성취감이 가져다 준 자존감 상승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계속 발전하고 있고 기록갱신을 하고 페이스가 올라가며 심박수는 안정되고 VO2Max는 최상에 도달해 있다. 이처럼 내 인생의 기록 또한 함께 끌어올리려 한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아파오던 고통을 견뎌내고 결승선에 다다른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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