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기타 Jan 14. 2024

태화강 백리길을 거닐다  1

태화강

 ■ 고향의 문턱에서 

  소낙비 멎은 하늘,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접이식 간이탁자 위 전화기가 몸을 떨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온갖 추억을 함께 쌓은 죽마고우 S다. '서울에 비가 많이 왔다는데 별일 없나 해서 전화했다. 괜찮나?' 이번 울산행을 계획하며 S에게 알릴까 망설이다 계획된 여정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다독거렸었다. 6년 전이었다. 영남 알프스 자락 문복산 500고지에 있는 S의 집을 찾았다. 밤늦도록 밀렸던 회포를 풀며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하였다. 귀경길에 오르며 오랜 세월 친구를 그렇게 잘 건사해 준 S의 아내에게 작별 인사 대신 가벼운 포옹으로 고마움을 전했었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전할 때면 옆에서 큰소리로 ‘한번 내려오세요’라며 반겨 준다. ‘예, 한 번 내려가지요.’ 했던 나는 지금 울산(통도사)역에 내렸다.

 

  서울에서 울산역까지 두 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았다. 괴나리봇짐 둘러메고 하루 백 리를 열흘 넘게 걸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동안 울산은 집안의 선산과 친척이 있고 유년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과 같은 공간적 개념의 고향이었다. 울산의 중심부인 중구 옥교동(현재의 중앙동)에 살다 중학교 졸업 전 1년 남짓 남구 신정동 백부님 댁에서 지내다 졸업식 후 서울로 떠났기에 고향의 구석구석 다녀볼 기회가 없었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한 시간적 간극 間隙을 어찌 한두 번의 발걸음으로 메울 수 있을까만 눈길과 발길 닿은 곳마다 애정 어린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남겨두고 가리라. 고향이라서일까, 눈에 보이는 산천이며 코끝을 스치는 공기마저 익숙한 느낌이다. 비가 갠 하늘을 바라보며 어릴 적 수건에 배어있는 엄마의 향기를 맡듯 고향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후 시내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살기 좋은 고장, 울산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가 15개국, 유럽과 비유럽 국가가 반반이다. 독일의 경우, 회사 재직 시 뮌헨 본사 회의 참석과 파독 간호사 생활 후 뒤셀돌프에 정착한 누님을 뵈러 열 번 넘게 다녀왔다. 이런 여행을 통해 느꼈던 점은 우리나라처럼 좋은 자연환경을 가진 살기 좋은 나라가 드물다는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땅이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하다’라고 기술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태양의 온기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간절곶이 울산에 있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쪽으로 태백산맥 남쪽 자락의 수려한 산세와 풍광을 자랑하는 1천m 이상의 영남알프스 산군이 울산의 뒤를 막아주고 동쪽으로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기후가 온난하고 강이 있어 농경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풍족한 생산물 외에 울산 앞바다는 난류와 한류가 마주치는 지점으로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여 바다로부터 얻는 수확도 풍성하였다. 울산 동구 '방어진'(지금의 방어동)의 지명이 본디 군사적 의미의 방어진 防禦陣에서 ‘방어가 많이 잡히는 나루’라는 방어진 方魚津으로 바뀐 것도 바다에서 얻는 수확이 그만큼 다양하고 많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 태화강, 십리대밭(숲), 태화강 국가 정원

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태화강 太和江과 십리대밭이다. '태화강'이라는 이름은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에 있는 태화지 太和池의 이름을 딴 태화사 太和寺를 건립한 후 이 절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태화강은 울산 서쪽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다른 견해도 있다)하여 동쪽으로 백 리에 걸쳐 흐르다 울산만에서 동해와 합류하는 울산의 혈관이자 젖줄 같은 강이다. 이 태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역문화와 산업이 발전하였고, 조선업과 자동차산업, 석유화학 등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전진기지로서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산업 수도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독일의 부흥을 라인강의 기적, 대한민국의 급속한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 하듯 울산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태화강의 기적이라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차창 너머 태화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십리대밭이 까까머리 중학생이 반세기를 지나 반백의 머리가 되어 고향을 찾아왔음을 말없이 반겨준다. 십리대밭은 국내 최대 규모의 대나무 숲으로 강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자생하고 있던 곳에 인공적으로 대나무를 심어 조성되었다. 태화강을 따라 십 리(4Km)에 걸쳐 있으며 태화강, 태화강 국가 정원과 함께 울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이다. 태화강 정원은 국내 최초의 수변 생태 정원인 점, 공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는 5급 수질의 ‘죽음의 강’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한 점 등을 높이 평가받아 2019년 국가 정원으로 지정되었다. 어릴 적 학생들의 소풍 장소였고 어른들의 여름철 휴식처였던 십리대밭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이곳으로 봄 소풍을 왔었다. 학급별 노래자랑 시간에 그 시절 인기 있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유행가를 부른 친구에게 눈물에 무슨 씨앗이 있냐고 면박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태화강에 어려있는 추억의 몇 조각이다.

 

■ 정월 대보름과 어머니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울산교 아래 태화강 둔치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울려 액을 쫓고 풍년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를 했다. 달집이 활활 잘 타오르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잘 타지 않거나 꺼져버리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어느 정월 대보름날, 어머니를 따라 강기슭에 왔다. 절에 다니는 이웃들과 물고기며 자라를 방생하던 곳이었다. 어머니는 촛불이 켜진 유등 流燈을 종이배에 실어 강물에 띄웠다. 찰랑거리는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는 종이배를 향해 어머니는 두 손 합장으로 집안의 평안과 안녕을 빌었다. 종이배가 멀리 떠내려가면 갈수록 집안이 더 평안하리라 믿으시는 듯 정성으로 기원하셨다. 그런 모습 뒤로 보름달에 비친 어머니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때 울산교 다리 위 난간에 걸려 있는 듯한 보름달은 아직도 내 기억 속의 가장 크고 밝은 보름달로 남아있다. 그 달빛 아래 가라앉을 듯 말 듯 하늘거리는 촛불과 함께 떠내려간 종이배는 어머니의 바람에 답이라도 하듯 한참을 더 떠내려간 후에야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어 달님에게도 빌고 계신 어머님의 모습과 찰랑이는 물결 위로 달빛에 반짝이던 그 밤의 태화강 정경은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 다 버리고 돌아가고픈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또 친구들과 멱을 감다 큰일 날뻔했던 태화강 하류에는 지금은 사라진 재첩이 많이 잡혀 재치(재첩)국이 유명했다. 이른 아침 정구지를 듬뿍 넣어 끓인 재치국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재치국 사이소’ 하며 골목길을 누비던 재치국 아지매가 들고 간 양은 냄비에 국자로 항아리 속을 휘휘 저어 퍼주던 재치국 그 향과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 강을 품은 태화루, 달을 품은 함월루

십리대밭 뒤쪽 태화교 인근에 태화루(太和樓 중구 태화동)가 있다. 고려 성종이 울산에 행차하여 연회를 베풀었고, 조선 시대에 울주 팔경으로 불리며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수많은 시를 남긴 곳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400여 년이 지난 2014년에 복원되어 울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울산의 관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태화루에 오르면 태화강과 십리대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달의 기운을 받았다는 함월산 含月山의 함월루(含月樓 중구 성안동)와 함께 태화강과 울산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명소이다.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태화지를 지날 때 홀연히 용이 나타나, "나를 위해 절을 짓고 나의 복을 빌면 나도 덕을 갚으리라"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귀국 후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 眞身舍利를 경주 황룡사 9층 탑, 통도사 금강계단, 태화사 탑에 나누어 봉안하여 용의 청을 들어주었고, 이때 지어진 절이 태화사이다. 태화루는 태화사의 부속건물로 지어진 것으로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 중 하나로 영남 3루 중 가장 아름다운 누각으로 알려졌으며, 박맹우 전 울산시장을 만나기로 한 장소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태화루에 도착했다. 태화강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화루가 소실되기 전 조선조 문신 서거정이 이곳에서 태화강과 남산 은월봉, 삼산, 학성 등을 바라보며 지었다는 ‘울산 태화강’이란 칠언절구의 시가 전해 온다. 태화루 아래 보이는 태화강에 패들보드를 즐기는 사람들과 강 위를 오가는 백로의 모습이 한가롭다. 공장과 축산농가의 오·폐수 유입으로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기형의 물고기가 발견되는 등 공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었던 5급수 태화강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약속 시간에 도착한 민선 3기에서 5기까지 울산시장을 역임한 박 시장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재임 12여 년 동안 태화강 수질개선, 태화루 중창 사업 외 공업도시 울산을 환경 생태도시로 변화시키는 등의 많은 업적을 남겨 시민들의 칭송을 받는 박 시장이다. 태화루 복원사업과 태화강 수질 개선사업과 관련한 남다른 소회 所懷와 많은 일화 逸話를 들은 후 태화강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고향 방문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뒤셀도르프 연가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