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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기타 Sep 15. 2023

노익장 영감님의 쾌차를 기원합니다

     

  딸이 올해 마흔이니 노익장 영감님과 연을 맺은 지 41년이다. 1931신미생 양띠로 임인 호랑이해를 맞이했으니 만 91세가 되셨다. 20대 후반에 사위로 연을 맺고 같은 서울에 살다 지금은 서울 외곽의 같은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산다. 90세를 졸수(卒壽), 91세는 망백(望百), 99세는 백수(白壽)라 했다. 졸수를 지나 망백이시니 천수를 누리셨다 해도 지나치지 않으나, 지난 40년 세월 지켜봤고 현재의 건강상태로 판단하건대 능히 백수를 하실 것으로 믿었다. 또 이를 뒷받침할 실증적 근거도 차고 넘친다.


  매년 봄, 가을 청명한 날을 골라 골프장으로 모신다. 91세의 나이에 골프를 하신다면 모두가 놀라워한다. 골프를 좋아하나 골퍼 친구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동반자가 없어 골프를 못 한다는 사정을 들은 몇몇 동료가 흔쾌히 우리가 모셔가자 해서 시작한 지가 벌써 5, 지금까지 봄가을 연례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거사일(?)과 부킹 소식을 알려드리면 반색하면서도 내가 18홀을 다 돌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엄살부터 부리신다. 하지만 필드에 나가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18홀을 거뜬히 소화해 내신다. 몸이 가볍고 걸음마저 빨라 함께 라운딩 하는 동반자들에게 민폐도 전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OB난 공을 찾겠다며 급경사 비탈지 아래로 슬그머니 사라지곤 해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도 한다. 작년 가을에도 그랬으나 그동안 몇 차례 경험하여 이젠 익숙해진 동반자들이라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저기 저쪽이야, 그래, 거기로 내려가셨어하며 내려간 방향만 일러준다. 이러니 누가 구순(九旬)'을 넘긴 노인이라 믿을까. 노익장이라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정작 내가 노익장이라 칭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 하에서 두 번의 겨울을 나시는 동안 일주일에 일요일을 제외한 엿새를 종로의 기원(棋院)과 인사동 화랑(畫廊)으로 출근하셨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따위는 감기나 독감 정도로 치부하는지 난 끄떡없다하며 바이러스 따위에 굴하지 않음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국산이라 해도 바이러스는 짝퉁이 없는데도 말이다. 얇은 마스크 한 장을 백신으로, 전철 역사를 보건소 PCR 검사장으로, 교통카드를 음성 확인서 삼아 매일 출퇴근의 기쁨을 즐기고 계신다. 그 지칠 줄 모르는 초인적 의지에 코로나 이 녀석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매일 오후 3시 반이면 어김없는 산책으로 마을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있었다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장인어른을 보면 의형제, 아니 깐부맺자고 하지 않을까. 아내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버지, 제발 집에 좀 계시라'며 사정과 설득을 아무리 해도 그야말로 우이독경이요, 마이동풍이라며 어찌하면 좋겠냐고 하소연한다. 도대체 매일 출근한다고 해서 개근상이나 월급을 받아오는 것도 아닌데 가족의 간곡한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사코 출근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영감님 주변에 같은 연배의 노인끼리 소소한 노년의 일상에 관해 대화를 나눌 만한 말벗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 외에 달리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었다.

  오륙 년 전만 해도 전화로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점심 한 끼라도 함께 했던 이들은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기에 주위에 말벗할 누구도 없다. 골프 외 4, 5급 수준의 바둑이 유일한 취미라 기원에라도 가야 동년배 또는 연하의 말벗을 만날 수 있기에 그리하셨으리라는 짐작 외에는 달리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얼마 전부터 어떤 경로인지 화랑(畫廊)을 하시는 연하의 영감님을 안 뒤로 출근은 인사동 화랑으로 해서 퇴근은 기원에서 하신다고 듣고 있다. 그러던 두어 달 전쯤 작은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속이 불편하다며 집 앞 상가에 있는 내과의원으로 가시던 중 어지럼증과 숨이 가빠 50m 거리를 두 번이나 쉬었다 가셨다. 큰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해보라는 의사의 권고에 가까운 동네병원에서 MRI, CT 등의 검사를 한 결과 담당 의사는 장기에 출혈 흔적이 보이니 정밀 검사를 위해 종합병원에서 대장과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보길 권했다. 다니시는 병원의 정기 검진일은 아직 멀었고 예약해도 검진까지 많이 기다려야 하며 또 멀리 있기에 선뜻 모셔가지 못하고 차일피일하던 중 좀 회복되셨다며 출근을 재개하셨다. 제발 큰일 없기를 바라며 불안한 마음으로 지낸 지 두 달여 만에 기어이 사단이 벌어졌다.  

    

  연말 독일에 있는 누님댁에 다녀왔기에 자가격리 중이었다. 격리 해제를 하루 남겨놓은 토요일 오후, 119 구급대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화랑으로 출근해서 주인장과 한담을 하던 중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화들짝 놀란 주인 영감님이 119에 연락을 했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어느 병원으로 후송할지 지금 알아보는 중이며 병원이 결정되면 다시 연락하겠다는 전화였다. 얼마 전 비슷한 증상으로 동네병원에 다녀온 적 있고 위중한 상태는 아니라는 구급대원의 말에 다소 안심하였다. 잠시 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결정되었다는 연락에 아내는 아들과 병원으로 가고, 나는 장모님을 안심시키려 이웃의 처가로 향했다. 처가에 가며 '영감님이 참 복도 많으시다'라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 그런 일을 겪었으면 응급의료 체계상 당연히 동네병원으로 가셔야 하나 서울 한복판 종로에 있는 기원과 인사동 화랑으로 출근하신 덕분으로 S대학병원으로 후송되셨으니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다음 날 ‘'아버지 위암이래' 하는 아내의 연락을 받았다. 내심 우려했던 터라 '그래, 몇 기래' 하고 물었으나 검사를 더 해봐야 알 수 있다며 수술은 다음 달 초에 예정되었다고 했다. 위암 수술은 큰 수술도 아니며 심지어 전부를 절제하고도 오래 사신 분도 많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하고 위로하였다. 

    

   3일간의 난리와도 같았던 응급실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오신 지 며칠 후 조금 몸 상태가 회복된 듯하니 또 일을 벌이셨다. 퇴근 후 집에 가니 아내가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도대체 아버지를 어떡하면 좋아. 아침 잘 드셨나 해서 집에 가봤더니 나가시고 안 계셨어.' 했다. 119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 가 3일 동안 온갖 검사를 다 받고 퇴원 후 며칠 죽 드신 게 전부인 그 몸으로 또 출근하셨다고 하니 나도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 영감님께서 어쩌자고 이러시나?' 퇴원 3일 만에 그렇게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출근하셨다고? 그날 오후 귀가 시간이 다가오자 아내가 화랑 영감님께 전화해서 '아직 그곳에 계시냐했더니 조금 전에 가셨다.'라고 했단다. '오셔서 뭐 하셨냐물었더니 위궤양 때문에 속이 좀 불편하시다며 소파에 누워계셨다.’고 하니 속에 천불이 난 아내는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위궤양이 아니라 위암이며 곧 수술받으셔야 하니 당분간 못 오시게 해 달라’고 당부했으나 영감님은 재택근무 이틀 후 또 출근을 감행하셨다.


  위암을 위궤양이라 둘러대며 출근하는 이유가 말벗이 있다는 그 이유 외 또 무엇이 있을까? ‘아모르파티(amor fati), 카르페 디엠(Carpe Diem), 욜로(YOLO)’ 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한 번뿐인 인생이니 사는 동안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현재의 삶과 상황을 즐기라고 했다. 혹 영감님께서는 이 말에 충실해서인가? 위암 초기라 하더라도 연세를 고려하면 몸 상태를 잘 관리해야 함을 모르진 않을 텐데 가족이 그리 걱정함에도 매일 같이 양복에 베레모를 쓴 정장 차림으로 나가시는 그 이유가 뭘까? 위암을 위궤양쯤으로 믿고 싶은 바람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최고의 S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니 나을 게 뻔하다는 지나친 신뢰감 때문인가? 그 깊은 속마음을 헤아릴 길 없으나 종로, 인사동에서 느끼는 심적 안정감을 대체할 만한 그 무엇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부모님을 여읜 지 오래고 주위의 대부분이 양친 중 한 분이라도 생존해 계시는 경우가 드물다. 두 분에겐 백년손님이나, 내겐 부모님의 반열이다. 망백(望百)에 이르신 두 분에 비해 팔순에도 이르지 못한 부모님을 여읜 분들의 심정을 모르진 않으나 그저 망백(望百)에 이르셨으니 백수(白壽)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찌해서라도 몸조리 잘하시게 하여 수술도 잘 받고 쾌차하길 바라건만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은 나 몰라라 하는 저 돈키호테 같은 용맹함을 어찌해야 할지. 좋은 이웃들과 함께 OB난 공 찾으러 슬그머니 비탈지로 내려가는 그 모습을 앞으로 한두 번 아니 두세 번 정도 더 지켜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말썽꾸러기, 왕고집 영감님의 쾌차를 기원하는 것이다. 장수(長壽)는 축복받아야 함이 마땅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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