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교정본을 출판사로 넘겼다. 열 차례 이상 퇴고 과정을 거쳤음에도 볼 때마다 수정할 게 눈에 띄는 글이다. 필력의 부족함을 알기에 더 이상 안간힘을 쓰지 않기로 했다. 다음 주 표지가 결정되면 이 달 말에 수필집이 나온다. 처음으로 내 책 한 권을 갖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수필가, 작가라는 호칭에 다소 어색함과 무언가 결여된 느낌이 있었다. 내 책 한 권을 갖게 되면 그 어색함이나 결여감도 책 한 권의 분량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내 책 한 권을 갖고 싶었다. 십여 년 전, 관리소장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을 때였다. 퇴직 후 안정된 노후생활 기반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자영업을 운영하였으나,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신중함의 결여와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막연한 자신감, 온실 밖 세상에 대한 무지함의 결과였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취득한 자격증이 주택관리사였다.
결혼 후 40년을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파트가 어떻게 운영되며 관리되는 것인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관리비 총액이나 전기료가 얼마인지 한 번 훑어보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아파트관리소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지 어언 13년이다.
아파트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바깥 생활에서 만나는 온갖 유형의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이다. 갓난아기와 노인, 남과 여, 빈자와 부자, 관심과 무관심, 따뜻함과 배려가 있는가 하면 갑질과 괴로움도 있다. 따스한 시선과 신뢰의 눈길도 있고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도 있다. 그곳이 일터인 사람들이 있다. 관리소장, 경리, 시설관리직원 외 경비(관리)원, 청소(미화)원 적으면 십 명 미만에서 수십 명에 이르는 외부인이 그들이다. 그들 또한 아파트의 주민으로 아침 일찍 그들이 사는 아파트를 나와 다른 아파트로 출근한다. 보통 사람들의 일터가 사무실, 공장, 가게 또는 공공기관이나 산업현장인 것에 비해 그들에겐 타인의 쉼터가 그들의 일터인 셈이다.
십 년 넘게 관리소장 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유형의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일을 경험했다. 가슴 따뜻한 일도 있고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나둘 블로그에 저장하고 카페에 올린 지 십 년이다. 글쓰기 공부 2년의 배움을 토대로 그 글을 수필 형식으로 다듬어 한 권의 수필집에 담았다. 책을 발간하기까지 지도와 격려, 더러 채찍질을 해주신 S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입주민과 소장의 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이 스승과 제자가 되어 등단을 하고 수필집을 발간하는 이 모든 과정에 선생님의 가르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마음을 먹은 지 십 년, 등단 2년 여만에, 필생의 과제 하나를 해결한 것이다. 등단은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이 책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는 두 번째 책에 담으리라 다짐해 본다.
관리소장으로 부족한 부분을 내 일처럼 챙겨준 동료 소장,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눈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관리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글쓰기의 터전을 제공해 준 브런치와 수필 문학의 길을 서로 밀고 끌어주는 소중한 문우들께도 감사함을 전한다. 끝으로 미소 띤 얼굴로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부모님과 묵묵히 지켜보며 마음으로 성원해 준 아내와 사랑하는 우리 가족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 아들 역할 다해 준 두 분 누님께 이 책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