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기타 Oct 20. 2024

정겨운 이웃들

  ‘축하합니다. 좋으시겠어요.’ 주말 아침 목욕탕 앞에서 마주친 주인 강 사장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큰소리로 축하 인사를 건넨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내가 되물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 탔잖아요? 글 쓰시는 분들에게 경사라 생각되어 축하드리는 것입니다.’ ‘네. 고맙습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하는 작가가 나왔으니 그것도 아직 젊은 작가가 말입니다. 글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경사이지요.’ 첫 출간 수필집 속 ‘단골 이야기’에 소개된 목욕탕 주인 강 사장이다. 수필집 출간 후, 책 속에 언급된 글 속 주인공과 글감을 제공해 준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책을 선물했었다. 목욕탕 강 사장은 카센터 김 사장, 꽃집 강 여사와 함께 글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흐뭇했다. 한강 작가가 일궈낸 노벨 문학상 수상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에 새삼 위대해 보였다. 그동안 노벨 문학상 후보로 몇몇 문인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은 있었으나 지금까지 불발에 그쳤다. 한강 작가는 그동안 유력후보로 거명되지 않았다. 수년 전 ‘맨 부커’상 수상 후 잠재적 후보로 거명되었으나, 올해 유력후보로 거론되진 않았다. 그러다 불쑥 수상 소식이 전해졌으니 기쁨이 더 했다. 생애 첫 수필집을 낸 지 한 달여 만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탄생하였으니 작가라는 같은 신분에서 뿌듯함과 내가 책을 낸 시기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흐뭇함도 있었다. 글 쓰는 일과 무관한 목욕탕 강 사장이 기뻐하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얼마 전 그가 보여준 행동이 떠올라 웃음을 짓는다.    

  

  수필집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후 책이 발간되면 보낼 분들의 목록을 작성하였다. 제일 먼저 가족과 집안 친인척, 함께 공부하고 있는 수필반, 문학회 동인, 소속 문인협회 회원과 초, 중, 고, 대학 동기, 그동안 안부가 궁금했던 지인과 업무상 교류가 있는 분들의 이름과 주소를 정리하였다. 목욕탕 강 사장은 카센터 김 사장, 꽃집 주인 강 여사와 함께 책 출판에 대해 알고 있었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 내용을 미리 출력하여 보여준 적도 있었기에 책이 언제 나오는지 또 출판기념회는 언제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책을 받은 그 주말, 목욕탕 가는 길에 강 사장과 카센터 김 사장에게 건넬 책을 가지고 갔다. 먼저 목욕탕 강 사장에게 글감을 준 덕분에 책이 나왔다 하며 건넸다. 책을 받은 강 사장은 마치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양 즐거운 표정으로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책은 그냥 받는 게 아니라 하던데요’ 하며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강 사장의 손에는 목욕탕 쿠폰 다섯 장이 있었다. 귀한 책을 받았으니 저는 쿠폰으로 답례하겠다며 건네는 것이었다. 괜찮다는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별것도 아니라며 한사코 건네주려 했다. 그런 강 사장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어 그럼 고맙게 잘 쓰겠노라 하며 쿠폰을 받았다. 강 사장의 호의가 고맙고  흐뭇했다.


  책을 선물한 것은 글 소재를 제공해 주었거나, 글감의 소재가 된 인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덕분에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었고 그런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나올 수 있었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어떤 대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어이 축하금을 건네거나 송금한 지인도 있었다. 대부분 문자나 전화로 책을 받았다며 칭찬과 격려의 말을 전해왔다. 또 그것이 일반적이다. 문인들 간의 답례 형태는 좀 다르다. 책 한 권을 내기까지의 과정과 고충을 알고 또 직접 경험했기에 몇 줄의 문자에도 공감이 느껴졌다. 저서가 있는 경우, 답례로 보내온다. 반가운 선물이다.     

 

  카센터 김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주차하는 모습에 사업장 2층에 간이 사무실 밖으로 쳐다보는 김 사장에게 책을 보여주며 ‘책 나왔어’ 하며 소리쳤다. 토끼 눈을 하며 놀라는 기색으로 계단을 급히 내려와 책을 건네받으며 ‘이게 그거예요’ 하며 좋아했다. 주말 아침 목욕을 마친 후 들리곤 했기에 책 출판 얘기를 알고 있는 그였다. 출판기념회를 하면 꼭 알려달라고도 했던 김 사장이었다. ‘김 사장 덕분이다’ 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 부분을 찾아낸 김 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다 ’ 잠시만요‘ 하며 이 층으로 뛰어가듯 다녀온 김 사장의 손에 오만 원권 지폐 한 장이 있었다. 하필 돈이 이것밖에 없고, 봉투도 없다며 미안한 표정으로 돈을 건네려 했다. ‘무슨 돈을! 김 사장에게 돈 받으려 가져온 게 아니니 마음만 받겠다. 그동안 무상으로 차 봐준 일도 많은 데 무슨 돈을 받냐’ 하며 됐다고 했다. 받을 기색이 없자 미안한 표정으로 돈을 거둬들이며 그럼 출판기념회는 언제 하느냐며 물었다. 동인들과 가족이 모여했다고 하니 왜 알려주지 않았냐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런 모습에 마음이 훈훈했다.


  각박한 세상 속에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일 외에 김 사장, 강 사장, 꽃집 강 여사처럼 자영업을 영위하는 이웃들이다. 비록 반듯한 차림에 품격 있는 대화를 주고받진 않더라도 작업복, 평상복 차림인 그들의 순수한 정을 느낀다. 단골이 쓴 책을 선물로 받았으니 뭐라도 답례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이 계산적이거나 이해관계를 고려한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말과 행동에 가식이라곤 조금도 느낄 수 없다. 출판기념회에 사용할 화환을 주문받아 출판 소식을 알고 있던 꽃집 강 여사는 아무 말 없이 큼직하고 화려한 난 화분과 함께 축하의 글을 리본에 적어 보냈었다.

     

  세상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이웃들이다. 비록 내 필요에 따라 이용하다 보니 단골이 되었고, 그런 관계가 십 년이 넘었다. 한자 사람 ‘인’人자는 사람끼리 서로 기댄 모습이라고 했다. 사람은 본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임을 표현한 것이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일이다. 책 한 권 출판의 기쁨을 내 일처럼 기뻐해 주고 정을 나누려는 그들이 내 이웃임에 흐뭇한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자(著者)가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