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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기타 Oct 12. 2023

홈트와 목트

 ‘홈트’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뜻인가 했다. 홈트레이닝(Home Training)을 줄인 표현임을 아들과 대화가 잦은 아내가 알려줬다. 영상 제작 일을 하는 아들이 코로나 상황으로 집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바깥 활동이 줄어든 만큼 체중이 는다며 푸념했다. 예전과 같이 헬스장도 편하게 드나들 수 없는 사정이니 집에서라도 운동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아들이 '홈트'용으로 사들인 운동기구가 거실 한쪽을 차지했다. 백세시대란 말이 회자된 지 이미 오래다. OECD 국가 중 기대수명이 90.9세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라의 국민답게 건강관리를 위해 투자하고 신경 쓰는 정도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중년에 접어들며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걷기, 테니스, 등산, 헬스 등의 운동 외에도 다양한 건강보조식품을 챙겨 먹기도 한다. 그런데도 건강상의 이유로 병원 출입을 하는 친구나 지인이 적지 않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의사와 상담, 진단, 처방 등 병원 출입을 통해 체득한 건강 관련 지식이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놀랍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건강상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그런 대화가 이어지는 게 지루하기만 했다. 어디가 안 좋아 어느 병원에 다녀왔고, 무엇이 효과가 있었다는 등의 얘기를 들으며 이제 우리도 노인이 되어 가는가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그로부터 1년여 지나 그들이 얘기했던 증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어 그때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부모님 두 분 다 구순을 넘긴 삶을 영위하셨기에 태생적으로 건강한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다. 가족력도 없으니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사 아저씨가 가마솥에서 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빵을 운동부원에게만 나눠주기에 그 옥수수빵이 먹고 싶어 배구부에 들어가 지금은 없어진 9인제 극동식 배구의 마지막 세대로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덕분에 운동 신경은 있는 편이며 또 고교 시절에는 태권도와 함께 학교에선 평행봉과 철봉을 열심히 했으며 집에서 아령으로 몸을 단련한 것도 물려받은 유전인자와 함께 현재의 건강을 지탱해 온 기반으로 믿고 있다. 

  그 후 직장과 대학, 대학원 과정을 병행했던 주경야독의 생활이 이어짐에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는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갔다. 가슴, 허벅지 근육이 줄고 빠지는 시간만 흘러 퇴직 무렵 늘어진 가슴 근육과 물렁해진 허벅지 근육을 보며 삼국지 유비의 '비육지탄'의 심경이 이해되었다.


  퇴직을 앞둔 무렵 우연한 기회로 우리 고유의 정통 선법 '혈기도'에 입문했다. 혈기도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척추임에 척추를 바로 펴고, 평소에 바른 자세를 갖도록 하기 위한 수련법을 지도한다. 오랜 기간 설악산에서 수련하신 관장님은 칠순의 나이임에도 붉은 혈색의 동안에 아기와 같은 피부를 가지신 분이었다. 국내 유일의 광화문 도장에서 1년간 수련 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나의 유일한 건강관리법이다.

  ‘혈기도’는 300여 가지의 행공법으로 몸을 수련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한 호흡이 일반인보다 훨씬 길다. 호흡과 스트레칭을 병행하며 깊숙이 들이마신 공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뱉어내는 호흡법을 연마한다. 7년 이상 수련한 검은 띠 사범의 한 호흡은 일반 수련생의 두 배에 이른다. 지금까지 매주 한 차례 이상 10여 가지의 기본 동작과 호흡법을 위주로 한두 시간 동안 체내 기(氣)의 순환을 도모하고 척추를 바로 세우고 관절과 근육을 이완시키는 행공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이 운동을 하는 장소는 집도 체육관도 아닌 동네 목욕탕이다.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 목욕탕 개장 시간 직후에 간다. 예전에도 목욕을 즐기는 편이었으나 지금처럼 규칙적이지 않았다. 10여 년 전 투병 중인 동료가 체온을 1도만 올려도 몸 안의 나쁜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 효과적이라며 온욕을 권했다는 의사의 말을 전해 들은 후부터였다. 매주 토요일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웃 동네 목욕탕으로 간다. 굳이 이웃 동네로 가는 이유는 목욕탕이 3층에 있어 통풍과 환기가 잘 되고 업주의 세심한 청결 유지 때문이다.

 

  지난 3년여 코로나 시국 하에서도 두 차례 걸렀을 뿐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 목욕탕에 갔다. 어떤 날은 첫 번째이기도 하나 대부분 세 번째 이내의 손님으로 목욕탕을 이용했다. 그 시간이면 조용할뿐더러 깨끗한 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온탕에서 몸을 덥힌 후 열탕을 주로 이용하나 좁은 공간의 사우나실에는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10여 년을 다녔으니 낯익은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먼저 말을 건네 온 분들이다.

 

  코로나 유행 초에는 목욕탕을 가는 대신 샤워로 대신하라는 가족들의 권유와 걱정 어린 잔소리에 한 번 건너뛴 적이 있었으나 오랜 습관 탓인지 그 주 내내 몸이 찌뿌듯함을 떨치지 못해 다시 목욕탕을 찾았다. 가족에겐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 감염 위험도 덜하고 필요하면 마스크를 착용하니 걱정하지 말라 했다. 이후 코로나 앤데믹이 거론되던 지난 3월 매일 함께 점심 먹으러 다닌 과장과 동시에 감염되어 자가 격리했던 일주일을 제외하곤 목욕탕에 가는 일은 현재까지 나만의 ‘소확행’이자 건강관리법이다.

     

  아들이 집에서 하는 '홈트'로 몸을 관리한다면 나는 목욕탕에서 하는 '목트'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각자의 취향과 여건에 따라 '홈트'이든 '목트'이든 건강관리를 위한 자기만의 건강관리법이 있다면 바람직한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이 목요일, 내일 하루 지나면 모레 아침 뜨거운 탕 속에서 나만의 건강관리법이요 힐링 수단인 ‘목트’를 즐길 수 있다. 그 한두 시간이 지난 일주일간의 묵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나만의 목욕탕 트레이닝, '목트'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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