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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젤리 Dec 23. 2024

25.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이 되어야할까

크리스마스가 어느덧 이틀이 남았다. 지난 한 달간 내 브런치글 표지가 크리스마스 마켓 사진으로만 도배될 정도로, 독일 사람들만큼 나 또한 크리스마스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다. 빠르면 11월 말부터 느낄 수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주는 포근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참 좋다. 그런데 오히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올수록, 이를 맞이하는 설렘보다는,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다시 돌아올 어둡고 칙칙한 회색빛 독일 겨울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허무해져가는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다니던 어학원도, 봉사활동 가게도 일제히 2~3주나 되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이하였다. 방학 전 함께 모여 글뤼바인(Gluehwein : 와인에 정향, 계피, 과일 등을 넣고 끓인 음료)도 마시고, 식사도 하고, 약소한 선물들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나누었다. 헤어질 때는 서로 찐한 포옹을 하며, 독일식의 크리스마스 인사 "Frohe Weihnachten und ein schoenes neues Jahr"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를 건넸다. 이런 기분이 마치 한국의 설날/추석 명절을 앞둔 풍경과도 같았다. 명절 전, 고마운 분들께 선물을 준비하고, 직장동료, 친구들과 덕담을 나누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기를 서로 기원하는 모습이 참 닮아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이들에게도 나름의 '명절 스트레스'가 있다는 점이었다. 봉사활동을 같이하는 엄마 뻘의 동료는 자식, 손자들을 맞이하며 대대적으로 요리를 해야한다는 나름의 압박(?)이 있다고 했다. 독일 구직 어플은 크리스마스 전에 취직에 성공해야 스트레스가 덜하지 않겠냐는 광고를 보내왔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명절음식을 마련하는데 많은 정성을 들이면서도 동시에 명절노동에 고달퍼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취업준비는 잘되가니?" 라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기 괴로워 명절을 피하는 모습과 닮은 독일인들의 군상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싶었다.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날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이 대답에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한국도 독일처럼 이러한 명절이 있냐고 물어보았다면, 당연히 설날과 추석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을텐데, 한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너무나도 모호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 날, 연인들에게는 즐거운 데이트를 하는 날, 상점들은 너무나도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프로모션 제품들을 선보이는 날... 이렇게만 생각하면 크리스마스는 자본주의 세상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뭔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만 같다. 분명 추석, 설날처럼 고유한 세시풍속은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다른 이유가 있을텐데 말이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선물 받는 날 이상이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말 그대로 내가 믿는 종교의 탄생과도 같다. 가톨릭적 가치에 기반을 둔 가정교육은 나의 가치관 형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고, 그래서 내게 크리스마스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날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늘 성당에 갔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성가대 활동으로 바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냈다. 특히, 성가대에서는 크리스마스 맞이하여 특별한 노래들을 준비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는 공연을 하는 날 같으면서도, 뿌듯하고 보람찬 날이기도 했다. 사실, 어두운 세상에 빛이 온다는, 그리고 그 빛이 가장 낮은 곳에서 온다는 메시지는, 혼란스럽고 암울한 삶 속에 작은 희망이라는 위로가 되었다. 아무리 크리스마스가 연인들의 날이 되고, 백화점의 예쁜 장식을 구경하는 날이라고 해도,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종교의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한국 사람들의 종교는 대체로 기독교(천주교+개신교)나 불교이며, 그래서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은 공휴일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이 날은 내게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날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공휴일이고, 자신이 보내고 싶은 방법대로 보낸다."


이런 나와 달리 의외로 개신교의 발산지이기도 한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까지 종교적인 날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인구의 46%가 기독교 신자이지만 이와 동시에, 인구의 46%가 무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독일은 종교를 가질 경우 세금을 추가로 납부한다.) 마치 우리가 설날, 추석 명절을 쇠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족도 있고, 제사를 지낸다 하더라도 모두 유교 신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유교 신자는 아니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오랜 전통의 세시풍속을 즐기는 것과 같이, 이들 또한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전통을 즐기는 것이었다. 내게는 크리스마스 문화도, 명절 문화도 전혀 이질적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독일에는 정말 많은 이슬람 이민자들이 살고 있고, 내 친구 중 일부도 이에 포함되었다. 워낙 종교 문제로 인한 이민자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터인지라, 나의 이슬람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다. 내 선입견으로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로 대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친구가 개방적인 편이라 그럴까, 의외로 친구도 크리스마스 마켓의 포근한 분위기를 함께 즐기고, 자녀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다고 하였다. 집에 트리도 작게 하나 만들었다고 한다. 예수님 탄생이라는 종교적인 의미는 기념하지 않지만, 연말 연시를 가족과 친구와 함께 즐기는 기분에 좀더 초점을 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연말에 "Merry Christmas"라는 인사 대신 "Happy Holidays"라는 인사를 써야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Christ 라는 단어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들어나니, 비/타종교인들이 소외받지 않도록(?), 종교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해야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개인적으론 두 개가 별개의 인사라고 생각하여, 이러한 의견에 그리 동의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종교적, 문화적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면 인사법까지도 조심해야하는지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에 비하면 한국 사람들은 훨씬 열려있는 것 같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질감 없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사용하며, 크리스마스를 누구보다도 즐겁게 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내의 뜨거운 감자인 이민자 문제는 사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러한 종교 갈등은 지금만의 문제가 아닌, 유럽 역사 속에서 아주 오랜 기간 함께해온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처럼 보인다. 이를 생각할 때면, 난 십여년 전 독문과 수업 때 감상했던, '파티 아킨'의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터키계 독일인 감독인 파티 아킨은 독일 내의 터키인의 군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쓴 스타 감독이다. 한국에서는 '미치고 싶을 때'가 유명한데, 영화의 내용보다는 선정성 때문에 유명해진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아주 강렬한데 말이다. 사실 나는 '미치고 싶을 때' 보다 '천국의 가장자리'를 더 좋아한다. 영화 내에서는 아빠-아들, 엄마-딸, 남자-여자, 독일문화-터키문화가 끊임없이 대립하는데 종국에는 용서와 화해라는 키워드로 마무리가 된다. 결국에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나 이슬람교에서 가르치는 교리가 크게 다름 없다는 것을 인물들이 깨닫기 때문이다. 서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비단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모든 종교가 선(善)을 지향하고, 내 주위의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용서하는 마음가짐을 가르친다. 믿는 방식을 떠나서, 근원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다가간다면, 내 주위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들 알텐데, 어느 순간 사람들은 믿는 방식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아무리 상술이 점철된 크리스마스라고 하더라도, 이웃 사랑의 의미가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구세군 모금, 사랑의 열매, 크리스마스 씰 등 이 시기가 되면 추운 겨울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금이라도 나누는 모습을 (예전보다는 덜하다고 하더라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 기부금액이 젊은 이들을 주축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조금은 상업적으로 변색되어갈지라도 여전히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남아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이번 주 한국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웃단체에게 작게나마 후원을 하였다. 서로 종교가 다를지라도 '이웃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면, 여러모로 갈등이 만연한 이 세상이 조금은 포근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부족한 글이지만,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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