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
트리거는 거기 있었다.
늘 그 자리에.
다만 나는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완전히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하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 힘듦의 바닥엔 얼마나 깊은 외로움이 깔려 있었는지.
트리거와의 대면
3회기 상담에서,
나는 처음으로 트리거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건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작았고, 훨씬 불쌍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걸 너무 오래 외면해왔다.
나는 관심이 필요했다.
그저, 누군가 나를 조금만 더 바라봐줬더라면.
하지만 부모는 늘 바빴다.
나는 둘째였고, 곧 여섯 살 어린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은 작고 예뻤다.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다. 진심으로.
그래서 더더욱, 나는 스스로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어린아이였다.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했고, 기댈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그럴 수는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말하면 부모가 슬퍼할 테니까.
나는 그런 아이였다.
상처받은 채 조용히 참는 쪽을 택하는 아이.
중학생이 되자, 서서히 무너졌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공황발작.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교우관계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외면했다.
그걸 인정하면 나는 ‘약한 아이’가 되니까.
그리고 나는 약해지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버텼다.
몸은 계속해서 신호를 보냈고,
나는 계속 못 본 척했다.
결국,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깨달음
“당신은 괜찮지 않았습니다.”
그 문장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 울었다.
공황이 아니라, 감정이.
상담 중에 나는 울었다.
공황발작이 아니라 감정 때문이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그런 눈물을 흘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상담자는 내게 숙제를 줬다.
“매일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세요.”
그 문장이 적힌 종이를 건네받았지만, 나는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다.
위로는 두려웠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두려웠다.
그걸 느끼는 순간, 공황이 다시 찾아올까 봐.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조차 꺼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트리거를 인정했고,
내가 약한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존재였음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걸렸다.
겨울이 지나, 지금은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계절이 한 바퀴 돌 만큼, 시간이 흘렀다.
나에게 주는 새로운 숙제
이제는 내가 나에게 숙제를 줄 차례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
그동안 나는 나를 감추고 살았다.
정신과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나약한 사람으로 볼까 봐.
나는 조용히, 천천히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에서 한 발짝 물러서 보려 한다.
모두에게 말을 건넬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남긴다.
이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나처럼 떨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위로가 되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은 희망이 되기를.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그러나 분명한 전환점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