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해.
이따금 육지에서 친구들이 찾아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제주에서의 삶에 대해 물어보지만, 매번 그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머쓱한 세 글자로 퉁치고 만다. 하루를 사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요즘이다.
'충분하다'가 나의 감정에서 주류가 된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인데, 그것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어디 한 곳에 치우쳐지지 않고 동등하게 만족스러운 상황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등하게'도 만만치 않은데, '유지'는 더더욱 성가신 조건이니 말이다. 성가신 두 단어가 성립해야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이 나의 현재라는 것에 감사하다.
생활비가 절반으로 줄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검소한 사람인 지 몰랐다. 식비가 절반으로 줄었고, 필수품을 제외한 어느 소비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반비례하게 반응하는 나의 지출 그래프는 꽤나 흥미진진한 이슈이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우체국 택배 5호(114*125cm) 안에 다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가라앉는 나의 정신과 물질을 띄우기 위해서는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환경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중량이었나보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의 구분이 어렵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맛타리 버섯은 이름부터 맛도리 느낌이다. 중화풍 양념을 넣어 센 불에 달달 볶은 맛타리 버섯만큼 양념이 자박하게 베어든 반찬이 있을까. 이런 류의 반찬은 더운 밥보다 찬 밥에 올려먹어야 제 맛이 산다. 식감을 위해 아몬드를 으깨 올렸는데, 물렁하게 퍼지는 버섯과 밥알 사이로 오독오독 씹히는 알갱이들이 유독 반가웠다.
우리집에는 반찬통이 없다. 여기서 우리집은 자취방을 의미한다. 나는 번거롭더라도 그날 그때의 식사를 위해 만든 음식이 좋다. (물론 엄마 김치찌개는 하루 이틀 뒤에 먹어야 찐이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위와 같은 이유로 반찬그릇도 딱히 꺼내본 적 없고, 변수가 없는 한 설거지도 그릇 하나 뿐이다. 무엇보다 방금 갓 만든 따땃한 반찬이 밥 위에 얹어져 있는 모양새가 보기 좋다. btw, 밥과 반찬의 비율에는 주의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