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서의 걸음마를 떼는 중이다. 수영을 배우고 있다. 이제 그만 유스풀(튜브만 믿고 둥둥 떠다니기)에서 벗어나야지 다짐하며 동네 수영장에 월수금 오전반을 등록했다. 수영은 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다. '수영을 배운다'의 전반적인 과정을 나열해보자면, 수영복과 수건, 세안도구를 챙기고 / 수영장에 가고 / 샤워를 하고 / 수업을 듣고 / 다시 씻고 / 몸을 말리고 / 집에 돌아와 / 수영복과 수건을 빨고 넌 후 / 허기진 배를 달래준다. 가 내포되어 있다. 수능영어 직독직해하듯 문장을 끊고 끊어야 한다. 쉽게 말해 가성비가 없다.
가성비라.. 나는 시간의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에 익숙하다. 이를 테면,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작업하기 위해 왕복 2시간 거리의 동네를 매일 오가거나 (작년에는 미아에서 상수를 매일 오갔다.) 펜 하나를 사기 위해 목적지 반대편으로 길을 돌린다. (필통에 MUJI가 아닌 다른 녀석이 꿰차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무튼 가성비 없는 내 일과에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니 시간의 성능은 떨어졌다고 봐야 하나. 앞으로도 나는 내가 가성비 없는 시간들에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물에서는 공기에서보다 몇 배의 '움직임' 품이 든다. 팔을 돌릴 때 물알갱이 집단들이 자꾸만 내 반대편에 선다. 내 편은 나뿐이다. 그렇게 얼기설기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모서리 끝에 도달한다. 힘들다. 안쓰던 근육들이 이제야 존재를 알리는 느낌이다. 녀석들에게 무신경했던 날들에 미안해질 때쯤 배가 고파온다. 아리게 고프다. 아무래도 만찬을 준비해야겠다.
필요와 무관하게 호기심을 이유로 소비하는 습관은 오래전에 고쳤다고 생각했건만, 통조림 패키징에 이끌려 처음으로 홀토마토를 구매했다. 홀토마토는 데친 토마토의 껍질을 벗겨 조미료 없이 보관한 유럽 식료품이다. 실제로 뜯어보니 웬 토마토가 건조대에 널린 오징어마냥 길쭉하더라. 신맛을 잡기 위해 버터 한 숟갈 떠서 넣으니 풍미가 좋았다. 다음에는 두 숟갈 넣으려 한다. 나는 파스타에 애호박을 넣어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교환학생 시절에 생긴 취향인데, 유럽은 애호박이 저렴한 채소에 속하기 때문이다.가난한 교환학생에게 총애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를 떠나 애호박의 수분감이 소스에 잘 동화되기도 하고 부드러워 맛도리이다. 약하게 추천한다.
나는 어떤 음식이든 나무그릇에 먹는 것이 좋다. 날자연의 무색이면서도 가볍다. 오로지 음식의 무게가 접시의 무게이다. 시원하게 길쭉한 모양도 마음에 든다. 자주 등장시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