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율의 시선>

'비정상'이라 불리는 이들의 상처에 대하여

by 박지수

※ <율의 시선> 가제본은 서평단 신청을 통해 창비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난생처음 타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저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김민서, <율의 시선> 중에서



정식 출판 전의 가제본 상태의 <율의 시선> 사진, 작가님의 편지가 함께 들어있다.



책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시선. 생각해 보면 아주 골치 아픈 녀석이다. 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를 늘 고민한다.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거 같고, 조금만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게 되면 바로 티가 날 거 같아서. 결국 대화하는 내내 나의 시선은 한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맴돌게 된다. 시선은 언제나 부담과 불편함을 조금은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율의 시선> 속 주인공 율이에게 시선은 불편을 넘어 공포로 느껴진다. 그래서 율이는 늘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발을 보고 있다.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답게 <율의 시선>은 청소년의 아픔, 고민, 그에 따른 시선을 섬세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가진 '율'이는 타인의 시선이 무섭다. 그는 대가 없이 타인을 돕는 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인간다운 일이라 믿고 있다. 개입보다는 방관이 편하고, 변화보다는 그대로 있고 싶다. 인간관계는 전략이며 친구를 대할 때는 불편하더라도 억지로 가면을 써가며 웃는다. 이것이 중학생 율이의 상처이자 시선이다. <율의 시선>은 율이의 이런 시선이 '이도해'를 만난 후로부터 변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도해와 율이의 공통점은 타인으로부터 '비정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땅을 쳐다보는 율이가 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도해에게 기묘한 이끌림을 느낀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공통점 때문이다. 도해는 기묘하다고 느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아이처럼 묘사된다. 초반에는 전체적으로 조금 어린 왕자 느낌이었을지도. 책의 원제가 '외계인의 비밀'이었다는 후기를 봤는데 왜 그랬는지 알 거 같다. 그런 도해라서 조금은 독자와 동떨어진 인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그가 왜 하늘을 바라보게 됐는지, 왜 자신을 외계인으로 소개하는지 설명해 주는 점이 좋았다. 도해는 아무도 없는 북극성을 고향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북극성은 정말로 좋은 고향일까?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치유 또한 사람과 함께 하니까. 그래서 아무도 없는 북극성에서 살기보다는 지구를 택해야 한다. 삶의 아이러니 중 하나이다.


아무도 날 상처 입히지 않았으면 하지만, 그 누구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는 없다니⋯.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 (가제본 기준 p. 142)



아버지가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달라진 것은 나뿐이었다. 밖은 이리도 맑고 따스한데 내 안은 차갑다. 나를 도와준다던 의사는 내가 2년이면 치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미 2년은 한참 지났고, 나는 어느덧 열다섯을 넘겼다. (가제본 기준 p.167)



심연과 심연을 부딪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두 세계과 서로 충돌하는 일과 같았다. 그 충돌은 큰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것을 전해 주기도 했다. 이를테면, 변화 같은 거. (가제본 기준 p.211)





책에서 율이는 장례식을 겉치레라고 표현했지만 -물론 작가님이 그렇지 않다고 상냥히 정정해 주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장례식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의식이다. 우리는 떠나간 사람이 죽은 뒤에 완전히 존재의 의미가 사라질지, 종교에서 말하는 거처럼 천국이나 지옥에 가거나 환생을 할지, 지구의 일부분이 되어 항상 우리 곁에 있을지를 평생 제대로 알 수 없다. 그건 죽어봐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망자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가길 빌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희망하는 거뿐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 해서 그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희망 뒤에 남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평안할 것이라 믿는 것. 실컷 운 뒤에 다시 웃는 것. 그리고 남은 이들은 다시 이 땅을 밟으며 살아가는 것. 나는 그게 장례식의 의의라 생각한다. 그래서 장례식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의식이다.


그러니까 율이 또한 자신의 상처에 장례를 치러 줘야 했다.

이 땅을 밟고 살아가기 위해서.



<율의 시선>은 어찌 보면 뻔하다고도 할 수 있는 비관적인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이다. 하지만 나는 그 뻔함이 좋다. 그 선한 뻔함을 믿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 아닌가. 당연하게도 청소년에게 추천되는 책이지만, 어른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어릴 때 상처에 대한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 한 채로 무감해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더하여 가제본을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책은 정식 출판이 되면 수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표지 일러스트도 아주 따스한 색감으로 그려져서 정식 출판본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식 출판본을 사서 제대로 가제본의 다른 점을 찾아 비교해 볼까. 이건 오로지 서평단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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