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서른 살이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을 겪으면 쉼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대학교 4년.
초등학생이었던 서른 살은 엄마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좋은 성적을 내야 했고 친구들을 따라 이런저런 학원을 다녀야 했다. 초등학생 때라 그런지 주말에 어떻게 쉬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겠지. 하지만 지금과 다르게 나 때는 초등학교에서도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다 있었다. 성적이 나오고 등수도 선생님께서 대략 발표해 주셨던 것 같다.
중학생이었던 서른 살은 대학을 서서히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래도 막연하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나오는 등수들로 내 인생이 갈리는 느낌이다. 초등학교때와 다르게 과목별, 반, 전교 등수가 나오는 성적표를 받고 정확한 숫자로 평가받는다. 시험기간만 되면 심장이 두근대고 꼭 모든 게 다 걸려있는 느낌이다.
고등학생이 된 서른 살은 이제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높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 도서관, 독서실을 다니고,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정독반을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분반 수업에서 고급반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학교 안에서 그런 높은 무언가는 내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치지만 그런 하나하나가 나를 나타내는 지표인 것만 같다.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갈 수 있는 대학교가 바뀐다. 서울로 갔다가 내가 사는 지방이 되었다가. 수능이 다가올수록 불안하다.
수능일이면 이제 모든 게 다 결정 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삶이 그대로 결정될 것만 같다. 수능이 끝나고 수시로 대학에 붙은 친구들이 보이고, 졸업식까지 아직 합격발표가 나지 않은 나는 너무 속이 탄다. 나보다 내신이 낮았던 친구가 내가 떨어진 대학에 붙은 게 보인다. 엄마한테 내신은 내가 더 높았다고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다 다행히 대학에 붙었다.
대학생이 된 서른 살은 입학한 대학교가 맘에 들지 않는다. 구체적인 진로도 결정하지 않았지만 그냥 마음에 안 들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편입, 반수를 준비한다. 뒤처지지 말아야겠다 하면서도 1~2년 늦게라도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체념한 채 학교를 다닌다. 그러다 휴학을 하고 공무원 준비를 해보겠다고 1년 휴학을 했다. 실패..
대학교 3학년이 되자 마음이 불안해진다. 뭘 해야 할까. 선배들을 보면 취직이 잘된 선배들만 보인다. 나머지는 보이지도 않는다. 저 선배처럼 꼭 될 테야 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자격증을 딴다. 자격증 시험은 돈도 많이 들고 이것도 점수대로 친구들과 비교가 된다. 컴퓨터활용능력 1급과 한국사는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대외활동을 시작한다. 나보다 어린애들도 많다. 하지만 특별한 장기가 없고, 학과도 전문성이 그렇게 있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해야 한다. 일단 뭐 어떻게 써먹을지 모르지만 ‘자소설’에 조금이라도 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해야 한다.
공공기관 기자단, 봉사단.. 공공기관에서 대학생들을 너무 잘 써먹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를 뽑아준 것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한다. 너무 불안하다. 졸업학점은 3.5점 언저리. 흠..
톱밥을 때려봤을 때 학점을 본다는 사기업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공무원 아니면 공기업.
그러다 졸업을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취업준비를 한다. 운다. 사주를 보러 간다. **년도 *월에는 취업을 할 거라는 철학관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웃으며 나온다. NCS 공부를 한다. 공기업‧공무원 취업카페에 가입을 한다. 합격자들의 후기를 본다. 어우. 다들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는 뭘 했을까. 대외활동을 했다. 그렇지. 그렇지만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기 위해 내가 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모르겠다. 공기업 취업 스터디에 가입해 본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사람들을 보기가 두렵지만 공기업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들 스터디를 한다고 한다.
한 개 두 개, 신청해 본다. 사람들이 문제를 너무 잘 푼다. 설명도 정말 잘하는데 왜 저 사람은 취업이 안 됐을까. 저 사람도 취업이 안 됐는데 나는 할 수 있을까? 면접스터디는 너무 싫다. 나는 내 차례가 됐을 때 내가 뭐라고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인 지식? 없다.. 대학시절 경제동아리로 활동했지만 한 게 없다. 그냥 언니오빠들 발표하는 걸 구경했다. 상식공부도 해야 한다. 나는 상식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지.. 상식이 없던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상식이야 하는 문제들도 상식이라고 한다. 후. 할게 왜 이렇게 많지.
대학 졸업하고 시간이 좀 지나니 주변에서 취업 소식이 들린다. 제발 *** 보다는 일찍 취업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해 보지만 ***이 먼저 취업했다. 암울하다. 하지만 내가 더 좋은 데를 갈 거라는 망상 하나로 NCS 문제집을 다시 들여다본다.
26살,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 다 포기하고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간다. 차로 면접장에 데려다주던 엄마가 아무래도 여긴 안 되겠다며 면접시간 직전에 차를 돌린다. 다시 마음을 잡는다.
어쩌다 취업했다. 할만하다. 월급은 많이 적다. 하지만 이직해야지! 나는 이렇게 시작했으니까 장밋빛 미래만 남아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일하면서 퇴근하고 이직 준비를 한다. 이직준비는 ‘직장인 NCS 스터디’. 스터디에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 만족감과 우월감을 느끼면서 이직준비를 한다. 피곤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며 불안해진다.
어라? 대리가 됐다. 다른데 이직하면 사원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하면서 이직에 대한 욕구가 줄어든다. 하지만 뭔가 여태 계속해왔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래서 정확한 목표도 없이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NCS 책을 잡는다. 아니면 ‘사람인’ 사이트를 들락날락한다. 음 여기 한번 넣어볼까.
이렇게 살아왔더니 어느덧 서른 살이다. 계속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했다. 마냥 논 적도 없이 그렇다고 무언가를 정말 불태우듯이 열심히 한적도 없이 서른 살이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막연한 불안감이 든다. ‘생산적인 뭔가를 해야 해!!’ 주말이 되어 친구를 만나러 나가지 않으면 또 불안해진다. ‘생산적인걸 하자!!’. 도대체 나한테 생산적인 게 뭘까. 계속 불안하다. 쉬지를 못한다. 쉬는 게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해. 도태되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