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뿐인 삶, 나를 사랑하기 위해
먼저, 왜 '휴식'이라는 단어를 두고 '쉼'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 알려드리고 싶다.
'휴식'이란 단어는 너무 거창해 보인다. 누군가한테 말할 때 '휴식하고 오겠습니다'보다 '저 쉬고 오겠습니다.'라는 말이 부담이 적다. 애초에 쉬는 것이 불안한데 말하거나 생각할 때조차 부담스러우면 더 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쉼'이란 단어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다 이제야 쉬는 것에 맛을 들였다. 쉴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집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하루종일 보는 걸 못했다. 유튜브는 이동시간에, 병원에서 대기할 때 그럴 때만 봤다. 정말 시간을 버려야 할 때.
나는 이 글로 당신을 자기 계발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냥 쉬어도 된다. 쉬어도 문제가 안 생긴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서른 살이 되도록 쉬지 않고 살아와서 취업도 하고 글도 쓸 여유도 있는 거 아니냐, 기만 아니냐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쉬다 보니 글을 쓸 생각도 하게 됐고 나 자신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여태 나는 나를 돌볼 줄 몰랐다. 그냥 겉만 꾸미고 옷만 사면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겉만 꾸밀수록 속은 빈 것 같은 나 자신이 나를 또 괴롭혔다. 그래서 누군가가 쉬어도 괜찮다는 말, 그 말로 나를 미리 설득시켜 줬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돼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큰 일을 겪으면서 나는 바닥을 쳤다. 직장 내 괴롭힘과 스토킹, 가스라이팅. 약 6개월간 상사로부터 당한 일을 신고하기까지 너무 오랫동안 끌려다녀 나 자신이 망가지고 신고를 하고 나니 여태 싸워오던 젖 먹던 힘이 풀려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나와 가장 비슷한 친구와 제주도로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5일 동안 여행을 갔다. 아무 계획 없이. 물론 간단하게 숙소와 렌터카는 빌렸다. 제주도로 가서 틈이 나는 대로 아무 데나 누워서 책을 읽었다. 카페를 가서도 책을 읽었다. 친구랑 다음날 아침에 안마받으러 가고 말을 하고 일찍 일어나 안마를 받고 심심하다 싶은 느낌이 들어서 플라잉요가 체험을 했다. 그리고 줌바댄스 체험도 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일 생각도, 생산적인 생각도 하지 않고 쉬었다.
그 이후에 내가 바뀌었다고 나는 나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내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쉬다 보니까 내가 보였다. 그냥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잘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힘도 있는 사람이었다. 내 모습도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찍은 셀카들을 보니 웃는 게 참 예뻤다. 내 옆모습도 내가 참 싫어했는데 마음에 들었다. 그냥 내가 마음에 들었다. 항상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예뻤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한다.'라는 전제를 빼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건 햇살을 쬐며 풀밭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이었다. 아니면 바닷가에 누워 간지나는 음악을 틀어두고 등이 타들어가도록 태우는 것이었다.
생산적인 걸 하지 않는 나 자신도 마음에 들었다. 이대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피곤하면 쉬었다.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내가 진작 쉬지 못했나 싶었다. 쉬는걸 왜 죄악으로 생각했을까 싶었다. 만약 내가 조금 더 일찍 쉬었다면 회사에서 그런 일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날 나 자신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쉼'이 필요한 '우리'가 이 글을 읽는다면 정말 맘편히 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