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음
한 달이 조금 되지 않는 긴 시간동안 여행을 간 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비행기로 13시간은 족히 걸리는 유럽으로. 갈 때부터 넘치려 하던 35키로짜리 캐리어를 끌고, 단짝 친구의 손을 잡고 떠났다.
처음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게 새로웠다. 반복되는 것들은 쉽게 질려버리는 나에게 ‘처음’이라는 새로운 자극은 언제나 필요한 것, 주기적으로 찾아헤매는 것이었다. 그게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든 바뀐 방 구조로부터 오는 것이든 난 불특정한 주기를 두고 원했다. 여행은 가장 확실하고도 쉬운 방법이었다.
계속해서 처음을 갈망하는 것은 어쩌면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자주 지역을 옮겨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새로운 것들에 빠르게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고. 그 과정에서 나와 다르다고 느껴지는 하나에 진득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쉽게 질려버리는 나는 또 모순적으로 진득함을 추구하기도 해서, 이번 유럽 여행에서는 여러 도시를 가는 데 쓸 수 있는 시간들을 모아 한 도시를 여유 있고 진하게 돌아보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 덕에 휘몰아치는 일정을 소화할 필요가 없어져, 대부분의 시간들을 우리는 걸었다. 손끝을 스치는 바람이 산뜻해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어도 지치지 않던 날이 있던가 하면, 손 마디마디가 얼듯한 날씨 덕에 빠른 귀가를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유럽의 겨울은 그러했다. 베를린에서의 어느 하루에는 혼자 길을 나섰다. 독일에 있는 내내 지독한 흐린 하늘의 연속이었기에 날씨에 대한 기대 없이 떠났던 그날, 처음으로 햇볕을 쬘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지 삼은 희고 또렷한 구름들이 날 들뜨게 만든 날이었다. 햇빛이 있는 날 사용할 수 있는 필름카메라로 드디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내 들뜸에 한몫했다. 이 날의 기억이 원동력이 되어 살아갈 날들도 분명 있을것이다. 의도치 않은 처음들은 가끔 더 의미있게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 여행이었다.
돌아와야 할 곳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여행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처음을 갈망하는 내가 익숙하고도 진득한 곳으로 돌아옴으로써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새로운 자극을 의미하는 처음과 익숙하며 진득한 것들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지독한 모순을 가진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처음이 고팠던 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는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는 분명 즐거움도 있고, 눈물로 지새우는 감상적인 날도 있으리라. 여러 새로운 경험 끝에 얻을 해답들에 대한 기대감 또한 존재한다. 이에 나는 수많은 처음들을 기꺼이 환영하려 한다.
비로소 단단해질 나를 기대해보며 개인블로그에서 글을 끝맺을때 쓰곤 하는 단골 인사말로 글을 마무리 하겠다.
행복하세요. 다들, 각자의 온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