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EU Magill 판결과 '필수설비' 법리의 탄생
유럽 연합(EU)의 경쟁법 역사는 국가 간 장벽을 허무는 '시장 통합'에서 시작하여,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혁신을 가로막는 '구조적 고착'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 장대한 흐름 속에서 1995년 유럽 사법재판소(CJEU)가 내린 Radio Telefis Eireann (RTE) and Independent Television Publications Ltd (ITP) v Commission (Joined Cases C-241/91 P and C-242/91 P), 일명 '마길(Magill) 판결'은 지적재산권(IPR)이라는 견고한 성벽에 경쟁법이라는 균열을 낸 역사적 사건이다. 이 판결은 "법이 보장한 독점권일지라도 그것이 시장의 문을 걸어 잠그는 빗장으로 쓰일 때는 경쟁법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라는 준엄한 원칙을 세웠다.
사건의 배경은 아일랜드와 영국 방송 시장의 기묘한 정보 독점 체제였다. 1980년대 후반, 아일랜드의 국영방송 RTE와 영국의 ITN, BBC는 각자가 방영하는 TV 프로그램 편성표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편성표를 개별 잡지로만 발행했을 뿐, 소비자들이 가장 갈구하던 '모든 채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주간 종합 편성표'의 발행은 철저히 거부했다. 마길(Magill)이라는 소규모 출판사가 이 정보를 모아 종합 가이드를 출판하려 하자, 방송사들은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다. 이에 마길은 방송사들이 편성표라는 원천 정보를 독점하여 인접 시장인 '종합 가이드 시장'의 탄생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며 유럽 집행위원회(EC)에 제소했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통해 경쟁법과 지적재산권 사이의 해묵은 긴장 관계를 정리하는 '3단계 테스트'를 확립했다. CJEU는 판결문에서 지적재산권자가 라이선스를 거부하는 행위 자체는 원칙적으로 남용이 아니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예외적인 상황'(exceptional circumstances) 하에서는 이러한 거절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TFEU 제86조, 현 제102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당 정보나 자산이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indispensable) 필수 설비인가? 둘째, 거절 행위로 인해 소비자가 강력히 원하는 신제품(new product)의 출현이 차단되는가? 셋째, 이러한 거절이 해당 시장에서의 모든 경쟁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가?"였다.
이 판결의 가장 파격적인 지점은 지적재산권의 '존재'(existence)'와 '행사'(exercise)를 엄격히 구분했다는 점이다. 저작권이라는 권리 자체는 국가가 부여한 신성한 것이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이 경쟁 질서를 파괴하고 소비자의 후생을 현저히 저해한다면 사법부가 개입하여 '강제 라이선스'(compulsory license)를 명령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는 미국 반독점법이 Verizon v. Trinko (2004) 판결 등을 통해 "독점 기업은 경쟁자를 도울 의무가 없다"라고 선언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유럽식 '공동체 우선주의'의 발현이었다. CJEU는 방송사들이 편성표 저작권을 '방어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의 탄생을 막는 '공격적' 무기로 쓰고 있다고 판단했다.
마길 판결이 세운 이 '필수설비 법리'는 이후 디지털 시대를 지탱하는 거대한 사법적 인프라가 되었다. 2007년 Microsoft v Commission (T-201/04) 사건에서 법원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서버 운영체제 간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정보를 경쟁사에 공개하라고 명령했을 때, 그 논리적 기반이 된 것이 바로 마길의 3단계 테스트였다. 만약 마길 판결이 저작권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오늘날의 빅테크 기업들은 자신들의 소스코드나 API를 저작권이라는 명분 아래 꽁꽁 숨겨 후발 주자들의 진입을 영구히 차단했을 것이다. CJEU는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IP 제도가 오히려 더 큰 혁신의 발목을 잡는 '혁신의 역설'을 경쟁법으로 해결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