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르텔: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설계한 담합(1)

Hub-and-Spoke의 디지털 변용과 RealPage 사건의 함의

by 날개

현대 경쟁법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파괴적인 질문은 "인간의 언어가 개입되지 않은 알고리즘의 조정 행위를 셔먼법(Sherman Act) 제1조상의 '합의'로 볼 수 있는가"이다. 2024년 11월 1일, 노스캐롤라이나 중부 연방법원의 토마스 슈뢰더(Thomas D. Schroeder) 판사가 내린 리얼페이지(Realpage) 소각하 청구 기각 결정은 이 질문에 대한 사법부의 역사적인 응답이다. 본 결정문은 단순히 재판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담합이 '명시적 의사교환'이라는 전통적 굴레를 벗어나 '알고리즘을 통한 의사결정의 외부화'만으로도 충분히 성립할 수 있음을 법리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기술적 중립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있던 디지털 카르텔을 법의 심판대 위로 끌어올린 기념비적 사건이다.


미국 민사소송법(FRCP) 체계에서 피고가 제기하는 '소각하 청구(Motion to Dismiss, Rule 12(b)(6))'는 소송의 조기 종결을 목표로 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이다. 피고인 리얼페이지는 원고인 미 법무부(DOJ)의 소장이 법률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재판 자체를 무효화하려 시도했다. 그들의 핵심 논거는 "경쟁사들 사이에 직접적인 의사 연락이나 명시적 합의가 없었으므로, 셔먼법 제1조가 요구하는 '합의'(agreement)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슈뢰더 판사는 이를 단호히 기각했다. 즉, 법무부가 제시한 증거와 논리가 단순히 추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식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를 다툴 만큼 충분한 법적 근거를 갖추었다고 사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이다. 이 결정으로 인해 소송은 '디스커버리'(discovery)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이제 법무부는 리얼페이지의 알고리즘 소스 코드, 내부 이메일, 데이터 수집 로그 등 그동안 '영업 비밀'이라는 명목하에 가려져 있던 담합의 핵심 증거들을 강제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게 되었다.


슈뢰더 판사는 결정문에서 리얼페이지 사건을 전형적인 '허브 앤 스포크' 담합의 디지털 변용으로 정의했다. 리얼페이지라는 '허브'는 다수의 임대인(스포크)들로부터 실시간 임대료, 공실률 등 민감한 비공개 데이터(non-public data)를 수집했다. 리얼페이지는 자사가 단순한 정보 제공자라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임대인들이 동일한 중앙 집중식 알고리즘에 가격 결정권을 사실상 위임하고, 타인의 비공개 데이터에 기반한 가격 권고를 수용한 행위 자체가 '공통의 인식'(common understanding) 하에 이루어진 담합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결정문은 리얼페이지가 임대인들에게 보낸 마케팅 메시지—"우리의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경쟁자와 함께 가격을 올릴 수 있다"—를 '가중 요소(plus factors)로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는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행동했다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가격 인상 행위가, 알고리즘이라는 '공통 대리인'(common agent)을 매개로 조율되었음을 방증하는 결정적 정황이다. 법원은 알고리즘이 경쟁사들 간의 가격을 동조화(synchronization)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물리적인 회합이 없더라도 셔먼법상의 '합의'로 간주될 수 있다는 혁신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슈뢰더 판사의 논리는 경제학적 담합 이론(game theory)과 궤를 같이한다. 담합의 가장 큰 적은 참여자의 '배신'과 이를 감시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리얼페이지의 알고리즘은 이 두 가지 난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했다. 알고리즘은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모든 참여자의 행동을 초 단위로 감시하며, 배신자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가격을 조정하여 대응하는 자동화된 집행 기제를 제공했다.


결정문에서는 리어페이지의 설계가 "알고리즘이 담합의 고질적 취약점인 감시 및 보복 기능을 자동화함으로써,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쟁 압력을 인위적으로 제거했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알고리즘이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카르텔의 운영체제(OS)로 기능했음을 의미한다. 법원은 설령 개별 임대인이 알고리즘의 권고를 100% 따르지 않았더라도, 알고리즘을 통해 경쟁사의 비공개 데이터에 기반한 '조정된 가격 정보'를 수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쟁 제한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리얼페이지는 최종 가격 결정권이 임대인에게 있다는 '자율성 항변'을 펼쳤으나, 슈뢰더 판사는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법무부가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리얼페이지는 알고리즘의 권고 수용률을 추적하여 관리하고, 권고를 거부하는 임대인들에게 전담 직원을 통해 압박을 가했다. 이는 알고리즘이 제시한 가격이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카르텔의 규율(discipline)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법리는 여기서 '대리인 책임'(agent liability) 원칙을 심화시키는데, 기업이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담합적 결과에 도달했다면, 그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슈뢰더 판사는 "알고리즘을 통한 가격 책정은 경쟁사 간의 직접적인 대화만큼이나 시장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강력한 문구로 글을 맺으며, 기술적 불투명성이 담합의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천명했다.


리얼페이지 사건의 소각하 기각 결정은 향후 글로벌 알고리즘 담합 소송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로써 경쟁 당국과 사법부는 기업의 회의록뿐만 아니라 알고리즘의 소스 코드와 데이터의 흐름을 심사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본 결정은 기술이 시장의 역동성을 질식시키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법적 방어선이며, 디지털 경제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노력이 된 셈이다. 이 사건은 이제 정식 재판을 통해 알고리즘 카르텔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는 단계로 진입했으며, 그 결과가 매우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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