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집에?

by 날개

인간은 태초부터 무리를 이루어 생존해온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리를 지어 살아온 이유는 단순히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고 자손을 번성시키기 위한 진화에 있어 최적화의 전략이었다. 고독은 생존 확률을 낮추는 리스크였고, 관계와 협력은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유전자였다.


그러나, 기술과 인터넷으로 초연결된 현대 사회는 '관계'의 물리적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는데, 개인의 자율성이 최우선 가치가 된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군집생활은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가족 중심의 농경 사회가 해체된 후, 2024년말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35.5%(782만 9천 가구)를 차지하며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혼인 연령은 지속적으로 늦춰지거나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초혼 건수는 급감하는 반면, 황혼 이혼과 비혼 동거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는 등 가족과 삶의 형태는 끊임없이 파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오직 홀로 서는 '솔로이즘'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동거의 의무와 간섭을 감수하고서라도 '함께 사는 삶'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혼자 사는 삶은 고요한 자아를 탐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영역을 제공한다. 모든 생활 방식과 소비 패턴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므로, 심리학자들이 강조하는 '자율성'(autonomy)과 '유능성'(competence)의 욕구를 극대화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식사 시간, 요리의 종류, 집안의 정리 상태, 취침 시간, 삶의 패턴 등 일상적인 모든 측면에서 외부와의 충돌 없이 자신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정신적 에너지 소모의 최소화 내지 최적화를 의미한다. 루소가 강조했던 것처럼, 문명 사회로부터의 거리두기는 인간을 본래의 순수한 자아로 되돌리는 힘을 갖는다. 그러나 이 삶은 고독의 이면인 고립이라는 냉정한 대가를 요구한다. 식사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조차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적막함 속에서 혹은 '미디어'와 함께 이루어질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계성'(relatedness)에 대한 결핍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배달과 휴대폰이라는 디지털 연결망은 일시적인 해소책일 뿐, 인간이라는 사회적 유기체의 근본적인 정서적 공허를 완전히 채울 수는 없다.


이에 반해, 같이 사는 삶은 복잡성을 감수하고 유기적인 안정감을 택하는 방식이다. 결혼이나 동거는 식사 해결부터 비상 상황 대처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생존 효율성 및 상호보완성을 제공하며, 인간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고 삶의 기반을 다져준다. 신경과학은 타인과의 긍정적인 신체적·정서적 접촉이 스트레스 회로를 이완시키고 옥시토신과 같은 애착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여 생물학적 안정감을 높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안정감은 곧 자율성의 축소와 '관계의 간섭'이라는 불편함을 수반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24시간 부대끼는 일상은 필연적으로 삶의 방식, 가치관, 습관 등의 충돌을 낳는다. 특히 한국의 아파트처럼 밀집된 주거 환경에서 사적인 영역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채 장기간 공존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관심'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에 갇히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충돌이 커져 자아의 경계가 무너질 때, 같이 사는 삶은 갈등의 전쟁터가 되기 쉽다.


이러한 고독과 공존의 딜레마는 결국 개인의 심리적 성향, 경제적 자원, 그리고 삶의 단계에 따라 최적의 해법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사는 삶은 높은 경제력과 확고한 직업적 유능성을 기반으로 고독을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이롭다. 반면, 함께 사는 삶은 정서적 관계성에서 큰 만족을 얻거나, 아직 경제적·심리적 자립 기반이 취약하여 상호 의존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정적인 토대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증가하는 비혼 동거 형태는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을 절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는데, 법적 구속력은 최소화하되 일상적인 실용적 동반자 관계를 통해 고독의 위험과 동거의 편의를 교환하려는 합리적인 선택이 반영된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은 '어떤 형태가 더 좋은가'가 아니라, '선택한 형태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구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적절한 연결 지점을 확보하여 고립을 방지해야 하며, 함께 사는 이는 관계성 속에서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투명한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현대 기술과 인터넷은 관계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지만, MIT 교수 '셰리 터클'(Sherry Turkle, 1948–)의 지적과 같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함께 있지만 홀로(alone together)"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고독에 빠졌다. 즉, 물리적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고립되지 않는 기술'이 아닌 '고독을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내적 힘'을 길러야 한다.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통해 자아의 중심을 확립하고, 이 단단한 중심을 바탕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자유롭게 뛰어드는 유연한 주체성을 획득하는 것이 곧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복잡한 현대 사회를 가장 지혜롭게 살아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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