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운 사랑의 그림자

by 날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자와의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인식하는 '관계적 존재'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들 위험을 늘 내포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나르시시즘'과 타인을 향하는 '이타심'은 인간의 본성 안에 공존하는 양극단이며, 삶은 이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하나의 역동적인 생태계를 이룬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격언은 단순한 자아도취의 구호가 아니라,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최초의 윤리적 전제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자기애'에 대하여 '대상을 향한 사랑의 기반'으로 본 것과 같이, 나를 위한 삶과 남을 위한 삶은 서로를 배제하는 이분법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끈으로 엮여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는 이 끈의 균형이 무너지는 데서 발생한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은 오늘날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하게 포장된다. 이는 순수한 자아실현을 넘어,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주체로 자신을 끊임없이 가공하는 '자기 착취'의 형태로 변질된다. 푸코가 말한 '자기 배려'가 본래 윤리적 실천이었음에도, 현대의 자기 발전 담론은 인간을 또 다른 무한 경쟁의 장에 밀어 넣는다. 오직 나만을 위한 목적 없는 향상은 끝없는 공허를 낳으며, 자아가 강해질수록 관계 속에서의 고립은 깊어진다. '나'라는 주체는 강화되었지만, 그 강화가 타인과의 단절을 대가로 할 때, 삶은 역설적으로 메마르게 된다.


반대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삶 역시 숭고함이라는 미명 아래 위험한 폭력성을 내포할 수 있다. 헌신적 사랑이 자기부정의 형태로 흐를 때,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은 결국 상대방의 자율성까지 억압하는 소유욕으로 변질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타인을 향한 과도한 희생은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를 구속하는 사슬이 된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이 진정한 사랑을 '타인의 성장을 허용하는 능동적 관심'이라 정의한 것과 같이, 나를 지운 헌신은 타인의 성장 역시 가로막는 역설을 낳게 된다. 사랑과 헌신은 오직 '자유로운 자아의 산물'일 때만 윤리적이며, 자신을 부정하는 희생은 결국 서로를 옥죄는 집착이 될 뿐이다.


이러한 모순은 인간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에서도 관찰된다. 뇌과학은 인간의 보상 회로가 자기 보상과 타인 보상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자기희생을 통한 쾌감'이 습관적으로 강화될 경우, 뇌는 그 패턴을 마치 중독처럼 반복하며 강요된 선행을 추구하게 된다. 이타심이 '도파민 중독'으로 이어질 때, 인간은 자신이 아닌 '도덕적 환상'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결국 이타적 행동조차 자기 결정감(self-determination)을 상실한 상태가 되면, 남을 위한 삶은 더 이상 이로운 행위가 아니라 병리적인 '행동 중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뇌 스스로가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삶은 '나만을 위한 삶'과 '남만을 위한 삶' 중 어느 하나를 이상화하는 데 있지 않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L. Deci, 1942– )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M. Ryan, 1953– )의 자기 결정이론이 강조하듯, 인간은 '자율성'(autonomy), '유능성'(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라는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될 때 진정한 만족을 느낀다. 자율성 없는 헌신은 고결한 노예를 낳고, 관계성 없는 자아는 공허한 왕좌에 앉게 한다.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만족(이타심의 영역) 역시 궁극적으로는 '자기 결정감'에 의해 자발적으로 선택될 때, 비로소 나를 채우면서 남을 돕는 통합적인 힘이 된다.


결국 삶의 본질은 나와 남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투명하게 연결하는 데 있다. 나를 위한 삶이 충분히 단단하게 서 있을 때, 그 힘은 타인을 위한 진정한 연대로 확장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가 말한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의 정신은, 바로 자기 중심성과 이타심을 초월하여 자신의 삶 전체를 온전히 긍정하는 수용의 철학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단단한 뿌리 위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다. 나를 위한 삶과 남을 위한 삶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며, 한쪽이 어두워지면 다른 쪽도 사라진다. 삶의 모든 결정은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자라나지만, 그 힘의 근원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고요 속에서 발견한 자아만이 진정한 이타심을 꽃피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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