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결핍에 대한 통찰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결핍의 자각을 통해 자신이 된다.”라고 말했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마다의 정도의 차이는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고, 이것에 대한 사람마다의 태도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자신은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사람, 결핍을 숨기려고 껍데기로 포장하여 은폐하는 사람, 결핍을 인정하고 직면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인간이 필연적으로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결핍은 그냥 인간의 본질 그 자체다. 이것이 없으면 욕망도, 변화도, 성찰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그 모자람은 우리를 살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성인 고양이를 관찰해 보면, 먹는 것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인간처럼 결핍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 사냥하고, 홀로 시간을 보내며, 외부의 인정이나 애정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것 같다. 고양이는 타인의 시선과 관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으며, 오히려, 어떤 경우엔 원치 않는다.
이러한 독립성은 고양이의 생태적 진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양이는 본래 단독 사냥자로서, 생존이 무리의 협력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율적 생존 방식은 곧 내적 균형감과 연결되어, 외부의 관계나 사회적 인정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 완결적 존재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인간이 보기엔 그것이 마치 ‘결핍이 없는 존재’처럼 보이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고양이에게도 결핍은 존재한다고 한다. 다만, 그 결핍은 인간처럼 외향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데, 특정한 루틴의 붕괴, 낯선 냄새에 대한 예민한 반응, 보호자의 부재에서 오는 미묘한 불안 등은 고양이식 결핍이다. 인간과 다르게 관계의 부재보다, 환경의 변형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난다.
대조적으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은 사냥, 양육, 생존의 모든 과정을 협력과 관계를 통해 유지해 왔다. 초기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체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무리 지어 협력하고 소통하며 지식을 공유한 능력 덕분이었다.
'로빈 던바'(Robin Dunbar, 1947–)가 주장한 ‘던바의 수(Dunbar’s number)’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 용량은 약 150명 정도의 사회적 관계를 인식하고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고 한다. 즉, 인간의 두뇌 구조 자체가 관계를 전제로 진화한 결과물인 것이다. 이런 존재에게 결핍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결핍, 즉 타인과의 연결이 약화되거나 단절될 때 발생하는 관계적 고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 있을 때보다, 관계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외로움을 느낀다. 이는 고양이와 같은 독립적 생존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적 진화의 그림자이다.
결국 인간의 결핍은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내적 문제이기보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불완전하다’는 외적 문제로 드러나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과 인정, 이해와 공감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타인과의 이해관계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관계를 통해 결핍을 해소하려다가, 관계 속에서 다시 결핍을 발견한다. 사랑은 완전한 충족을 약속하지 않으며, 소속은 때로는 구속이 되고, 인정은 쉽게 변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를 맺지만, 동시에 관계 때문에 결핍을 느끼는 존재다. 관계는 결핍을 치유하는 동시에, 또 다른 결핍을 낳는다. 인간의 욕망과 허무는 이런 순환의 구조 속에서 영원히 반복된다.
이 점에서 인간의 결핍은 단순한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인간이 “존재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비와 성취에 몰두할수록, 내면의 공허는 더 깊어진다.”라고 했다. 즉, 인간은 결핍을 제거하려 하지만, 그 시도 자체가 또 다른 결핍을 만든다. 반면 고양이는 결핍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핍을 ‘해소’가 아닌 ‘감내’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이 결핍을 외부에서 채우려 한다면, 고양이는 결핍을 내면에서 흡수하며 평형을 유지한다. 이 차이는 곧 인간의 불안과 고양이의 평온을 구분 짓는다. 인간은 결핍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만, 고양이는 그것을 단지 존재의 일부로 둔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 결핍은 생리적 결함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조건이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를 확인하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존재를 구성하며, 그 시선이 사라질 때 결핍을 느낀다. 고양이는 자신 안에서 완결된 세계를 유지하지만, 인간은 함께 있으면서도 결핍을 느낀다. 이 모순은 인간의 연약함이자 동시에 인간다움의 근거다.
결핍을 느낀다는 것은 타인과 세계를 향해 열린 존재라는 뜻이다. 결핍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과 세계를 재구성하게 하는 힘이다. 인간은 결핍을 채우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결핍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이자, 고양이와 구별되는 가장 인간적인 결함이자 품격이다.
아무튼, 고양이는 그 특유의 자율성과 고독, 그리고 관조적 성향 덕분에, 사유와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늘 매력적인 존재로 함께 해 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