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일침
쇼펜하우어처럼 글쓰기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고 완벽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인 글을 쓰는 일은 그런 천재만 하는 일이 아니고, 평범한 우리도 언제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어야만 한다.
실존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일생 동안 자신의 철학적 사유 과정과 집필 방식을 상세히 기록했는데, 매우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사적인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의 견해를 아무렇게나 써서 그것을 출판하여 가필하고, 교정하고 있는 동안이면 점차 여러 가지 일에 생각이 미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까 아직 자기의 글이 한 번도 활자화될 만큼 대담하게 되지 못했던 제군은 용기를 낼지어다.
게다가 오식(誤植)은 경멸할 것은 아니다. 오식으로 인하여 현명하게 되는 것은 현명하게 될 정도(程度, grad)라고 생각하라.
첫 문장은 사적 사유(private reflection)가 '출판'이라는 공중에 노출되는 공적 행위(public action)를 통해 비로소 심화된다는 그의 철학적 입장을 명확히 보여준다. 여기서 '아무렇게나 써서 출판하는 것'은 완벽함에 대한 강박 없이 일단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던지는 용기 있는 결단을 의미하며, 이는 사유의 실존적 시작점이다.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되 출판되는 순간, 저자는 그 글의 잠재적 영향력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후 '가필하고 교정하는 동안'은 단순한 수정 작업이 아니라, 외부의 비판과 반론을 예상하며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심화시키는 성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결국, 외적인 출판 행위가 내적인 사유를 촉진하고 여러 가지 일에 생각이 미치게 함으로써, 개인은 무책임한 사색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주체로 성숙해 나아간다는 변증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두 번째 문장은, 독자, 특히 글쓰기를 망설이는 이들을 향한 그의 실존적 촉구를 담고 있다. 여기서 '활자화(printing)'는 단순한 인쇄 행위를 넘어, 자신의 사적인 사유를 공적인 영역에 내놓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결단'(decision)을 상징한다. '대담하지 못한 제군'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비판과 오류의 가능성을 두려워하여 무책임한 사색에만 머무르는 이들을 가리키는데, 그는 그들에게 그러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을 취하라는 '용기'를 내라고 촉구한다. 즉, 진정한 사유는 '불안'(anxiety)을 무릅쓰고 세상에 참여하여 결과를 감당할 때 비로소 시작되며, 이 '용기'는 사유를 생산적인 실천으로 이끄는 첫걸음임을 말하고 있다.
세 번째 문장에서 그는 '오식' 즉, 오류나 실수는 경멸할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오식으로 인하여 현명하게 되는 것은 현명하게 될 정도라고 생각하라."라고 말한 것은, 지혜는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마주하며 그것을 통해 배우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식'은 단순히 인쇄상의 실수가 아닌, 인간 사유와 판단의 필연적인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실수 자체를 피하려는 소극적인 태도나, 오류를 저지른 개인을 멸시하는 비난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려는 윤리적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지혜가 도달하는 정도(程度), 나아가 '바른 길'(正道)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은, 오늘날 법학계의 사유가 활자화되기까지 지나치게 형식과 완벽주의라는 굴레에 갇혀, 정작 핵심인 사유의 용기와 실존적 책임을 상실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날카로운 일침을 준다. 엄격한 법학논문의 틀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사유를 공중에 내던져 가필과 교정의 고통을 겪기 전에 이미 스스로를 현학의 담론에 가두고 소진시켜 버리는 것이 아닐까? 키에르케고르의 깨달음대로, 진정한 지혜는 오류를 경멸하는 데 있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한 견해를 세상에 드러내고 그 오류를 통해 현명함의 정도(grade)에 이르는 용기 있는 '결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협소한 '리그'에서 학문적 유희와 현학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공중'에 던지고 그 책임에 의해 성숙하는 실존의 길을 찾을 때, 비로소 법학은 '정도'(正道)를 걸으며 사회에 진정으로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