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도금시대를 경계한다

미국 산업성장기 역사의 준엄한 교훈

by 날개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 정부 주도형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성장을 이루었다. 그 결과 1960년 약 79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24년 잠정치 기준 약 36,624달러(원화 약 5,012만원)를 기록하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단기간에 달성했다. 이는 인구가 5천만 명이 넘는 국가들 중 6위를 기록하는 수준으로, 대한민국은 선진 7개국(G7) 중의 일부 국가를 넘어선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 대표적인 배경 중 하나는,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와 대기업(재벌) 중심의 성장이 강력한 견인력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와 기업 간의 긴밀한 연계와 법제도적 특혜가 동반된 성장 모델이 마치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인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찍이 미국도 이러한 산업 자본주의의 제도적 기반 구축 모델을 통하여 성장했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1860년에서 1900년 사이의 기간 동안 가장 폭발적인 산업 발전을 이뤘는데, 이 기간을 보통 '산업 성장기(industrial growth period)' 또는 '제2차 산업혁명기(second industrial revolution)'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과 찰스 더들리 워너(Charles Dudley Warner, 1829-1900)가 1873년 출판한 풍자 소설 '도금 시대: 오늘날의 이야기(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에서 유래한 "도금 시대(Gilded Age : 겉은 금처럼 눈부신 산업 성장과 번영을 이룩했지만 그 속에는 값싼 금속처럼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을 상징하는 시대)"라고도 불린다.


이 '도금 시대'는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1794-1877), 석유 산업을 장악한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철강 산업의 거물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의 카네기 스틸(Carnegie Steel) 등과 같은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과 독점적 대기업이 출현하여 미국의 산업 지형을 재편한 시기이다.


미국의 초기 중공업의 성장은 한국의 성장 모델과 유사하게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자원과 법적 특혜를 집중함으로써 독점적 성장을 유도했고, 이는 현대적 의미의 '정경유착'으로 불릴 수 있는 정부와 기업 간의 깊은 상호 의존 관계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Edward White 교수가 쓴 'American Legal History' 중 그 시대의 법제사를 정리한 챕터를 보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남북전쟁 직후인 1860년에서 1900년 사이, 미국은 국가 통합과 산업 발전을 명분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대기업 중심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는데, 초기에는 연방 정부가 대륙 횡단 철도 회사들(유니언 퍼시픽, 센트럴 퍼시픽 등)에 막대한 토지 보조금과 대출을 제공하여 철도 네트워크를 3만 마일에서 20만 마일까지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철도망이 완성된 후, 철도 회사들은 경쟁을 피하고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로펌(변호사)들을 동원하여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노선을 통합했으며, 1900년에는 전체 노선의 3분의 2가 소수 7개 지주회사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철도 인프라를 등에 배경으로 석유, 철강 등 중공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은 기업 성장의 핵심 도구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이 지적된다. 예컨대, '계약법'은 기업이 생산자, 운송업자, 노동자 간의 복잡한 비즈니스 거래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법적 틀을 제공했으며, 특히 상업 신용 거래의 자유로운 흐름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또한, '특허법'은 발명가에게 부여된 독점적 권리를 이용하여 기업들이 제강기술, 백열전구, 전화기 같은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자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고 시장지배력을 확고히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기 미국법의 초점은 과거의 공정한 가격 규제에서 벗어나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을 확립하고 보호하며 효율적인 운영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정부 지원, 계약법의 유연성, 특허권의 독점적 활용이라는 법적 환경은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나 카네기의 '카네기 스틸' 같은 거대 트러스트의 탄생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으며, 미국 자본주의는 순수한 시장 경쟁의 결과라기보다는 법과 제도의 산물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후 이러한 기업들이 법적 제도와 특혜를 등에 업고, 시장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리자, 이에 대한 대중의 강력한 반발이 정치권으로 표출되어 결국 1890년에 '셔먼법(Sherman Antitrust Act of 1890)'이 제정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셔먼법은 최초의 현대적인 경쟁법으로서, 시장을 독점하려는 모든 계약이나 결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독점화 자체를 중죄로 간주하는 내용으로서, 미국 반독점 규제의 법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셔먼법 제정 초기에는 법의 모호성과 법원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노동조합 탄압에 역이용되거나 독점 해체에 실패하는 등 실질적인 불평등 해소 효과는 미미했다고 하고, 20세기 초에 가서야 독점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가 그나마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미국의 '도금 시대'에 법률이 보여준 것은 '법(law)'이 '정의(justice)'의 도구가 아닌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 있다는 현실이다. 당시 미국법은 이론상 모든 시민에게 평등해야 할 '계약의 자유'나 '재산권 보호'와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 이 원칙들은 거대 트러스트의 자본 축적과 시장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이로 인해 법은 소수 자본가들의 이익을 '효율적인 산업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합법적 독점(legalized monopoly)'의 틀 안에서 보호해 주었고, 대다수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불평등과 불공정은 법의 얇은 '금도금' 아래로 묻혀버렸다. 이는 법이 사회의 근본적인 도덕적, 분배적 가치를 외면하고 기득권의 도구가 될 때, 형식적 합법성이 가장 잔혹한 불평등을 낳는다는 준엄한 교훈을 남긴다. 현재 미국의 불평등은 지니 계수(소득이나 자산이 사회 내에서 얼마나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지표, 0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1일에 가까울수록 평등)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약 0.396에 달하며, 이는 세금 및 복지 제도의 재분배 효과가 미미한 가운데 자본이 극도로 집중되어 사회 계층의 이동성이 사실상 멈춰버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회구조가 되었다.


미국 19세기의 석유와 철도 트러스트가 그러했듯이, 우리는 지금 데이터를 채굴(mining)하고 연결을 통제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거대 권력을 목격한다. 이들 역시 '혁신'과 '편의'라는 가장 매혹적인 금빛으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알고리즘을 통한 이익의 극대화, 소비자 개인정보 데이터의 착취, 약탈적 가격의 책정, 그리고 시장독점이라는 값싼 금속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 역시 OECD 최하위권 수준의 소득 재분배 효과와 심각한 노인 빈곤율에서 보듯 불평등 문제가 결코 만만치 않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의 규제 설계자와 집행자들은 공정한 사회라는 법철학적 숙고를 바탕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권력 집중이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디지털 '공정성'을 핵심 가치 중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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