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찬 백수생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데 귀찮아서 혹은 시도하지 않아서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다. 가령 여느 부모님이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안 좋아요.’ 하는 말의 뉘앙스와 비슷할 것 같다. 그중에 한 가지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이다. 이것 말고도 많은데 당장 생각나는 것이 집안일 뿐인지 모르겠다. ‘엄마’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집안일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혼자 살면서 내가 도맡아 해 보니 쉽지 않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집은 식구가 많지 않아서 가족들과 같이 살 때에도 집안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눈에 띄지 않았던 집안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 살다 보니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엄마가 많은 일하면서 살았구나.’하는 것을 가장 먼저 느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주말이 아니면 퇴근 후 시간만을 이용해 집안일을 해야 했다. 집안일은 할 일이 없는 날은 없는데 어떤 날은 한꺼번에 할 일이 몰려 정신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날이 있다.
빨래를 주말에 하면 좋겠지만 주말까지 기다릴만한 옷도 수건도 없다. 건조대에 걸려 있는 것이 없어지면 빨래를 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그나마 다 마른빨래를 접어서 정리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필요할 때 건조대에서 바로 걷어서 쓰고 건조대에 더 이상 쓸 게 없어지면 빨래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차피 넌 정리 안 하니까 옷장서랍도 다 필요 없겠다.”라는 말이나 건조대를 보고 걸려있는 게 거의 없는 것을 보면 “빨래할 때 됐구나.”라는 말로 내 귀차니즘을 꼬집기도 한다.
퇴근 후 집안일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는 것이 시작이다. 퇴근하고 빨래를 하게 되면 늦은 시간이 되기 전에 마쳐야 하므로 그런 이유로도 서둘러야 한다.
30살쯤 되었을 때인가 햇빛이 좋은 것을 보면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다가도 ‘아, 오늘 같은 날 빨래를 널면 참 잘 마르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날 동갑이었던 동료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 자신도 마침 출근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둘이서 이 나이쯤 되면 ‘빨래’ 생각부터 하나 보다고 말하며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퇴근 후 미션을 완료하듯 빨래를 해치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햇빛에 빨래를 말리고 싶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 판이다. 오늘 안에 하기만 해도 다행이다. 빨래를 해야 하는 날이면 하필 갖가지 다른 집안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나마도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끝날 때까지 분주히 움직여야 겨우 빨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출 수 있다. 설거지, 청소,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기 등은 이미 처리해야 할 날이 한참 지난 지 오래다. 이것들을 마치고 나도 씻는 것까지 마쳐야 한다. 그래야 빨래를 널고 쉴 수 있다. 일주일 정도 모아서 한 빨래를 건조대 한가득 널어놓고 돌아서면 ‘이제 쉴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럴 때 꼭 빠뜨리고 하지 못한 일이 생각난다. 이런 날은 오늘 내가 무엇 때문에 퇴근을 했는데도 이렇게 바빴나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한바탕 집안일을 마치고 자기 전 오늘 한 집안일 목록을 순서대로 적어보는 것이 마지막 일과였다. 집안일은 해도 티도 안 난다는데 뭘 해두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증거가 필요했다.
백수가 된 후에는 집안일을 미루면 얼마든지 미룰 수 있다. 직장을 다닐 때는 그나마 계획을 세워놓고 주말마다 아니면 적어도 10일에 한 번은 대청소를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백수일 때는 반대로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것보다도 훨씬 안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하면 될 것이다. 일이 있는 사람만 집안일을 몰아서 하는 게 아니라 백수도 몰아서 한다. 바빠도 미루고 안 바빠도 미루고 싶게 되는 일이 집안일인 것 같다.
미뤄서 하다 보면 퇴근 후 정신 못 차리게 집안일을 하듯 하루 동안은 무한으로 집안일을 하게 되는 날이 있다. 정말 하루 종일이다. 빨래를 세탁기에 2, 3번 돌리는 것은 물론 미뤄둔 손빨래도 하고 구석진 곳 청소까지 하는 날이면 낮 시간 동안에는 책 한 줄 읽기는커녕 엉덩이 붙이고 앉을 틈도 없다. ‘쉬고 있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없는데 일할 땐 도대체 어떻게 산건가?’ 하는 의문에 어떻게 살았을지 뻔한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혹은 시간 활용을 못하는 건가 자책하기도 한다.
비단 설거지나 청소, 빨래만이 아닌 진짜 부담되는 집안일은 따로 있다. 혼자 살지 않을 때도 그런 것은 가끔 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재활용품처리나 쓰레기봉투 버리기, 음식물쓰레기 처리, 화장실 청소 등은 혼자 살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렇게 많은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사실 몰랐다. 이런 낯선 집안일을 하는 것도 요령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니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시간도 많이 걸렸다. 늘 치워야 할 때를 놓쳐 쌓여 있을 때가 많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꼭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지런히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하다 보면 처음과 다르게 확실히 무뎌지는 것이 있다. 사람에게는 적응하는 능력이 있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이 어느 환경에 놓이든 살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단출하게 사는 것이 좋다. 요즘 사용하는 말로는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는 것 같다. 생각 같아서는 아무것도 놓지 않고 방만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서 청소하기도 편하고 먼지 앉을 곳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매일 쓸고 닦고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장식품은 없다. 그런데 사람이 꼭 필요한 것만 놓고 살아도 방의 네 귀퉁이를 다 차지할 정도로 짐이나 가구가 필요하다.
늘 이사 오기 전 빈 집에 들어왔을 때의 울림이 그립다. 그 채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줄여도 그 느낌은 나지가 않는다. 그래서 청소로라도 그 깔끔함을 유지하고 싶어서 신경을 쓰긴 하지만 마음 같지 않다. 혼자 살아도 할 일이 많고 필요한 것이 많은 걸 보면 사람이 한 명이라도 먹고사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TV를 보면 가끔 가족 구성원 중 일부가 집안일을 하는데 ‘돕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집안일은 다 같이 적용되는 것 일 텐데 왜 돕는다고 할까? 머리로는 돕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라면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돕는다’는 말을 쓰는 것조차 모순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쓰였다.
처음에는 엄마가 거들어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알아서 하고 있다. 막상 닥쳐서 해보니까 어느 순간 주인의식이 생긴 것 같았다. 더불어 ‘진짜 어른이 되었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빨리 쉬는 것을 목적으로 집안일을 마치고 한숨 돌리는 순간도 뿌듯함을 안겨준다. 주변을 깨끗이 해두어야 내 할 일을 하는데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이 정신없어서 어딘가에 집중할 수 없다는 핑계를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백수로 집안일을 단속하는 것까지 내가 할 일임을 감안한다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백수라면 게으를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진짜 게을러서는 백수로서 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