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은 저의 고향입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고향에는 명절을 포함해 일 년에 네다섯 번 정도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고향은 갈 때마다 왠지 더 새롭게 느껴집니다.
다름없이 우릴 맞이하는 부모님을 보면, 아마 삼척은 그대로이고 변한 건 제가 아닐까요.
여름이 저무는 8월 말, 삼척에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오후, 오전 근무를 끝내고 동생과 함께 고속버스에 탔습니다. 고향에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명절 아닌 때에 고향에 가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서울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불안하지만 언제나 기대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버스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별로 특별하지 않습니다. 회색 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자동차, 지나가는 작은 산, 멀리 보이는 마을, 따라오는 태양, 할 말만 하고 멀어지는 표지판 등.. 언제나 보던 것들입니다.
언제나 보던 것들이지만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하면 속이 울렁거려서 그냥 계속 바라봅니다.
그래서 저는 앞이 뻥 뚫려 새로운 풍경이 있는 맨 앞자리, 높아서 모든 창문이 다 보이는 맨 뒷자리를 좋아합니다.
가는 동안에는 길어서 평소 들을 엄두를 내지 못 했던 말러의 교향곡을 들었습니다.
서울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바다가 생각납니다. 집에서 동산 하나를 넘으면 바로 바다가 있어서, 가족끼리 자주 놀러 가곤 했습니다. 동생도 그때가 그리웠는지 이번에는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바다에 가기로 했습니다.
차를 타고 돌바다에 도착했습니다. 어촌에서 자란 아빠와 고모들은 이곳을 "고지낙"이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적에 자주 놀았던 곳이라는데, 왜 이름이 고지낙인지는 아빠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이름이겠지요.
이곳은 위성사진으로 보면 새천년 도로 옆에 붙어있는 절벽과 다를 게 없는 곳이지만, 구불거리는 도로 옆에는 간간히 샛길이 있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돌을 밟고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돌바다는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 해수욕장과는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모래 대신 뾰족한 바위들. 예측하기 어려운 파도. 바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와 다양한 해양 생물들.
돌바다는 더 위험한 만큼 더 재미있습니다. 위험과 재미는 왜 항상 비례하는 걸까요?
적당한 바위틈에 파라솔 대를 끼워 고정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서울에서 사느라 바다 향을 잊은 저와 동생을 위해 아빠는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삼촌은 배는 좀 나왔어도 바다를 잘 알고 물속을 제 집처럼 다닙니다. 우리는 파도가 적은 돌 사이 얕은 곳에서 놀고, 아빠와 물개 삼촌은 부표와 칼 한 자루를 손에 들고 먼 바다로 나갔습니다.
아빠는 어부의 아들입니다. 친구들도 어부의 아들이라서 바다를 놀이터나 간식 창고처럼 여기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물고기를 한 바구니 잡아다 어묵 공장에 가서 어묵과 바꿔먹기도 했다는데, 저에겐 그저 먼 나라 얘기 같아서 흥미로웠습니다.
8월 말에는 물이 차서 잠깐만 놀다 나와 몸을 말렸습니다. 바다에 오고 싶어 했던 동생은 여전히 잘 놀고 있습니다. 몸을 다 말리고 심심해진 저는 엄마가 게 잡는 것을 도왔습니다.
제가 잡는 게는 돌 사이를 기어 다니는 돌게입니다. 돌게는 돌과 돌 사이 틈에 많습니다. 돌 위에서 돌게는 빠르기 때문에 재빨리 잡아야 합니다. 왼 손에 든 쇠꼬챙이로 돌게를 건드려서 장갑을 낀 오른 손이 있는 쪽으로 몰아 넣습니다. 그리고 가까워졌을 때 손으로 잡아서 통에 집어넣습니다.
엄마는 많이 잡았지만, 저는 집에 갈 때까지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대신 따개비를 두 마리 잡아서 통에 넣었습니다.
파도가 많은 날은 물 속에서 몸을 가누기 힘들다고 투덜거리시며 아빠와 물개 삼촌은 파라솔로 들어왔습니다. 멍게, 성게, 전복, 놀래미, 고추골뱅이, 그리고 문어 한 마리. 두 분은 많이 잡지 못해 아쉬워했지만, 저에겐 너무나 대단해 보였습니다.
뒤 편에 굴러다니던 나무 판자를 줏어와 도마로 사용했습니다.
성게를 반으로 갈라 알을 꺼내 먹고, 멍게, 전복, 놀래미는 회를 떠 먹었습니다.
놀래미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한 면을 통째로 회 떠 주셨는데, 살이 단단하면서도 쫄깃하고 고소했습니다. 바닷물이 묻어있어서 초장을 찍지 않아도 간이 딱 맞았습니다.
놀래미는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생선입니다. 아빠는 자주 낚시하러 나갔고, 매번 놀래미를 잡아왔습니다. 엄마는 시장에 가시면 두 번에 한 번 꼴로 놀래미를 사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은 놀래미를 참 좋아했습니다.
연해서 뼈까지 먹을 수 있는 놀래미는 뼈 째로 회를 떠서 양배추, 양파, 초장에 무쳐먹거나, 알이 차는 시기에는 고춧가루, 파, 감자 등을 넣어 찜을 해 먹곤 했습니다. 놀래미는 저에게 맛있는 생선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문어를 구경했습니다. 동생이 문어는 지능이 높다며 불쌍해 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말랑말랑해서 별 생각없이 만지다가 옷에 먹물을 맞고 말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다시 빨아봤지만 자국은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문어는 골뱅이와 함께 라면에 들어갔습니다. 조금 싱거웠지만, 그런대로 시원한 맛이 있었습니다. 아주 맛있게 요리하지 못 한 것에 대해 왠지 문어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챙겨 온 수박을 마지막으로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멀리서 갈매기들이 냄새를 맡고 날아왔습니다. 갈매기들에게 다 발라 먹은 놀래미를 던져 주었습니다. 몇 개는 조준을 잘못 해서 못 준 것이 아쉬웠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돌게는 튀기고, 고추골뱅이와 전복은 죽을 끓였습니다. 전복 내장이 풀어져서 녹색이 된 죽을 막걸리와 함께 먹었습니다.
여태 먹어 본 전복죽 중에서 전복이 가장 많이 씹혔지만, 조금밖에 없던 고추 골뱅이가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배불리 먹고 나서 아빠와 티비를 봤습니다. 서울 집에는 티비와 소파가 없어서, 소파에 누워서 티비를 보는 시간을 맘껏 즐겼습니다.
티비를 보며, 나중에 집이 생기면 거실에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넓고 단단하고 따듯한 원목 책상을 한가운데 놓고, 그 위에서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책도 읽고, 시도 쓰고, 가끔은 사람을 초대해서 둘러 앉아 이야기도 하는 상상을 합니다.
바다에 다녀온 하루는 왠지 더 길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은 여유를 부리다가 동해에 있는 식자재 마트에서 고기를 사 왔습니다. 저녁으로 고기와 놀래미를 구워서, '화요'라는 술을 함께 마셨습니다.
화요는 유난히 싫어하는 녹색 소주 특유의 향을 빼고 나머지를 진하게 살린 맛이었습니다. 나중에 서울 마트에서 화요가 꽤 비싸다는 것을 보고, 아껴 마시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했습니다.
서울로 돌아갈 때, 우리를 배웅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자주 연락해야지. 맛있는 것 사드려야지. 잘 사는 모습 보여드려야지.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효도해야지.
서울 공기는 같은 양이라도 더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사람과 자동차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탑니다.
동생과 함께 사는 집에 도착합니다. 커튼을 젖혀 적막을 걷어냅니다.
서울에서 살던 제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면, 삼척에서 있었던 일들이 꿈 같이 느껴집니다.
떠날 때 느꼈던 불안함만큼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변화에 도통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매일 놀고 싶고 매일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지만,
일상이 없다면 휴가도 없을 겁니다.
휴가가 없다면 일상도 없을 테고요.
꿈 같은 삼척의 휴가와 반듯한 서울의 일상을 빠짐없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