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을 존중하는 스위스
스위스는 옆집과 똑같이 농사를 지어도 정부에서 받는 직불금은 농장마다 모두 달라요.
우리나라에는 공익직불제라는 제도가 있어요. 이 제도는 농업활동을 통해 식품의 안전, 환경 보전, 농촌 유지 등 공익을 창출하도록 노력하는 농업인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예요. 시골에서는 이 보조금을 편하게 '직불금'이라고 불러요. 스위스에서도 이와 유사한 직불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농지의 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기본형'과 친환경, 경관보전, 전략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신청할 수 있는 '선택형'으로 크게 2가지로 나뉘어요. 직불금액은 농지 면적에 따라서만 산정되고요.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직불금액을 산정해요.
스위스에서 와인으로 유명한 Schaffhausen(샤프하우젠) 지역에 있는 포도 농장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이 농장의 포도나무들은 경사면에 심어져 있어서 일하기 굉장히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농장주에게 어떻게 여기서 농사를 지을 생각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힘든 만큼 농업 직불금을 더 받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스위스에서는 농지의 경사도에 따라서도 직불금액이 달라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소 10마리를 평지에서 키우는 농업인보다 산 중턱에서 키우는 농업인이 더 많은 직불금을 받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Bio인증을 받아 동물을 기르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직불금을 받고요. 이렇게 스위스에서는 농업인의 노동력까지 고려해서 직불급액을 산정하는 거죠.
스위스 농업인들은 직불금을 받기 위해서 작성해야 될 Check List가 많다고 해요. 농장마다 운영하는 방식에 따라서 같은 작물을 키우더라도 직불금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해요. 실제로 제가 홈스테이를 했던 농장에서는 직불금을 약 1억 5천만 원 정도 받는다고 해요. 이 농장은 소 20마리, 토끼 16마리, 농지 37.5ha 정도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를 우리나라 평균 연봉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스위스의 근로소득이 약 3.25배 정도 높으니까 우리나라 기준으로 이 농장은 약 4천6백만 원 정도의 농업직불금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와요. 똑같은 방법으로 스위스 농장이 받는 평균적인 농업직불금을 계산했을 때는 약 2천만 원 정도고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2020년 기준 평균 농업 직불금은 375.9만 원이에요.
스위스는 직불금액이 영국보다도 약 2.7배 높아요. 그 이유는 스위스 정부가 식량 자립성을 강조하기 때문이에요.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규모 농장이 많은 스위스 특성을 고려하여 농업 부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바로 농업 직불금이고요. 그 덕분에 스위스는 현재 국내에서 소비하는 식료품의 절반 이상을 자국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또한 Bio를 지향하는 농업직불금 체계를 통해 환경도 보전하고 식량 안보도 확보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스위스는 농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농업이 사회 경제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스위스의 높은 농업 직불금 체계는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익직불제도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현재 국정과제로 '농업직불금 관련 예산을 5조 원 수준으로 단계적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예산은 기존의 관행농업보다 공익 기능을 실현할 수 있는 농업에 활용될 것으로 보여요. 예를 들어, 스위스처럼 Bio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직불금을 더 많이 주겠다는 거죠. 저는 우리나라도 스위스처럼 노동력을 고려하여 직불금액에 차등을 두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앞으로 공익직불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될지 지켜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