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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정말 당신이야?

by 화진


안에서 자기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번개가 번쩍였고 하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라무스는 처마 아래에 들어와 비를 모면했지만 불쌍한 말은 뒤에서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었다.


“오른쪽에 헛간이 있으니 말을 들여 놓고 오시오.”


집주인이 말했다. 말을 헛간에 맨 라무스는 짐바리에서 모포를 꺼내 빗물이 줄줄 흐르는 말을 닦아 주었다.


“먹이를 얻어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말의 등을 두드려준 다음 헛간을 나서려던 라무스는 페로가 들어 있는 자루를 들고 잠시 망설였다. 이 녀석을 여기다 두고 갈까, 데리고 갈까…….


“너, 조용하고 얌전하게 있을 거야?”


자루를 눈높이로 들어 올린 채 말하면서도 라무스는 새가 알아들을 거라는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루 속에서 새가 위아래로 까닥까닥 움직였다. 사람이 끄덕이는 것처럼.


“뭐야 너? 알아들었다는 뜻이야?”


새는 한 번 더 아까처럼 움직였다.


“좋아, 좋군. 말귀를 알아듣는 새라니.”


라무스는 새가 든 자루를 들고 오두막으로 갔다. 안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라무스는 집주인이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온화한 낯빛으로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


“봐, 아비움. 내가 말했잖아? 나쁜 사람도 무서운 사람도 아닐 거라고.”


측면에 숨어 여차하면 내리칠 기세로 장작을 단단히 거머쥐고 있던 아비움이 장작을 슬그머니 내렸다.


“아비움. 그거 계속 쥐고 있을 거야? 이 젊은 나그네가 정말 악당이라면 우리가 어떤 무기를 가졌다 해도 당해내지 못해. 그러니까 그것 좀 내던져 버리라고.”


“언제나 그랬듯 당신이 옳아, 칸나.”


아비움은 장작을 난로 옆으로 툭 던지고 손바닥을 털었다.


“두 분께 감사의 표시로 이것을 드리지요. 말이 먹을 먹이도 좀 부탁합니다.”


라무스가 은화 한 닢을 내밀었다.


“좋아요. 자, 이걸로 빗물을 닦고 저기에 앉아요. 보나마나 요기도 못 했을 테니 음식을 좀 내줄게요.”


라무스에게 수건을 준 칸나는 그가 준 은화를 받아 아비움에게 건넸다. 은화를 촛불에 비춰보던 아비움의 낯빛이 밝아졌다.


“이건 녹스 은화 같은데……. 죽음의 여신이 그려져 있어.”


맞지요? 하는 눈빛으로 아비움이 라무스를 보았다.


“맞습니다.”


녹스 용병단에서 주조하는 은화는 같은 무게의 다른 은화보다 높은 가치로 평가되었다. 파보르가 소유한 은광에서 나는 은의 품질이 좋고 무늬도 정교하고 아름다워서였다. 은화는 두 종류였다. 죽음의 여신 녹스가 새겨진 것과 용병단의 성채가 그려진 것.


특히 죽음의 여신이 새겨진 은화는 희소성이 있고 행운의 부적으로 여겨졌다. 파보르의 지시에 따라 소량만 만들었고, 이걸 지니고 있으면 한 번은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저 귀한 걸 받아도 되는지…….”


가져온 음식을 라무스 앞에 놓으면서 칸나가 말끝을 흐렸다.


“물론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은화가 그것밖에 없어서요. 두 분은 약초꾼이신가요? 버섯도 따고 석청도 채취하고?”


소박한 음식을 먹으면서 라무스가 물었다.


“맞아요. 그런데 우리가 석청 모으는 건 어떻게 아셨을까? 꿀도 안 내어드렸는데. 자, 이걸 먹으면 피로도 말끔히 풀리고 감기에도 안 걸릴 거예요.”


칸나가 민망한 듯 웃더니 찬장 앞으로 가 꿀단지에서 꿀을 약간 덜어 왔다.


“초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런 산골에서 초를 켠다는 건 밀랍으로 직접 만들어 쓰는 것일 테고, 밀랍은 벌집에서 나오니까요. 이런, 꿀을 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어쨌거나 잘 먹겠습니다.”


저쪽에 서서 녹스 은화를 소중하게 두 손으로 쥐고 입을 헤벌린 채 듣고 있던 아비움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말에게 먹이를 주고 올게.”


아비움은 칸나에게 다시 은화를 넘겨주고 오두막을 나갔다.


“마침 옆채의 방이 깨끗이 치워져 있어요. 다 드셨으면 가실까요? 그런데 거기에는 뭐가 들었나요? 혹시 닭이나 비둘기 같은 새?”


라무스가 들고 일어나는 자루를 칸나가 가리켰다.


“예, 뭐 비슷합니다. 새는 새죠.”


“거 참 희한하신 분이네요. 귀족처럼 생겨서는 떠돌이 기사처럼 비를 맞고 다니고, 녹스 은화를 척척 내주면서 허름한 자루에다 새를 넣어 안고 다니고. 이런 나그네는 생전 처음 봐요. 아마 앞으로도 못 보겠죠.”


칸나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녀는 라무스를 옆채로 안내해주고 돌아갔다.


제법 깨끗한 침구와 따뜻한 불이 타오르는 난로가 있는 방에서 라무스는 젖은 옷을 벗었다. 그는 담요로 몸을 감싸고 난로 앞에 낡은 의자와 탁자를 옮겨 와 옷을 널었다. 그가 난로 앞에 앉으려는데 침대 위에 둔 자루가 뒹굴뒹굴했다.


“왜? 꺼내 달라고?”


자루가 세로로 통통 뛰었다.


“도망가는 건 괜찮은데 나를 공격하거나 방해하면 안 된다. 알아들어?”


페로는 한 번 더 알았다는 몸짓을 했다. 라무스는 자루를 열어 주었다. 페로는 나오자마자 훨훨 날아서 방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고는 라무스의 앞에 떠서 날갯짓을 하면서 몸부림을 쳐 보였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는 불만의 토로인 듯했다. 라무스는 무시해 버렸다.


답답하다는 듯 몇 번이나 그 동작을 반복하던 페로는 깃털을 축 늘어뜨리고는 침대로 가더니 잠잠해졌다.


졸음이 라무스의 눈꺼풀을 끌어내렸다. 앉은 채로 고개를 박고 졸던 라무스가 난로의 불이 튀는 소리에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탁자 다리가 보였다. 거기에 숯으로 쓴 듯한 글자가 있었다.


구해줘. 나는 시스. 납치.


티토니아 공용 문자와 고대 문자로 쓴 것이었다.


“시스? 정말 당신이 쓴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라무스는 입 밖으로 내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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