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5. 거위가 있는 오두막

by 화진


“뭐야, 이건?”


급하게 몸을 돌려 피하느라 라무스는 균형을 잃었다. 그는 가까스로 한 팔로 가지를 잡고 버텨낸 다음 다시 안전하게 나무로 올라섰다. 라무스는 새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정면으로 폭주해 오는 새의 기세가 실로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녀석이 그 기세 그대로 얼굴이나 가슴팍에 충돌했다면…….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라무스는 헛숨을 내쉬었다.


희고 동그란 새는 라무스를 공격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듯 그의 눈앞에 동동 뜬 채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낑, 끅, 꺙, 뺙…….”


라무스의 귀에는 이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듣기 좋게 지저귄다고 할 수는 없는 소리였다. 녀석의 몸짓 또한 라무스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 몸은 둥글둥글하고 날개도 작아서 그저 깃털로 뭉쳐진 공 하나가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너, 그때 그 녀석이구나.”


페로를 알아본 라무스는 경계를 늦추고 나무를 내려갔다. 웬일인지 페로는 라무스를 졸졸 따라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라무스는 자신의 길을 갔다.


시스가 아직도 타키툼에 있을지 아니면 이미 떠났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녀를 찾는 일의 시작점은 프레케스 저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말을 달렸을까, 페로가 라무스의 눈앞으로 쓱 날아왔다. 라무스가 급히 말고삐를 당겨 정지했다.


“성가신 녀석이군.”


옆으로 피해 가려는 라무스의 앞을 페로가 다시 가로막았다.


“너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없단다. 이제 그만 네 갈 길 가라. 작은 새야.”


라무스는 재빨리 페로를 따돌리고 말을 달렸다. 그러나 페로에게는 볼품없으나마 날개가 있었고 그 날개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페로는 순식간에 다시 라무스의 얼굴로 돌진해 와서 그를 멈춰 세웠다.


너무 급하게 멈추느라 라무스는 하마터면 말 등에서 나동그라질 뻔했다. 짜증 섞인 탄식을 뱉는 그를 향해 페로는 또 작은 몸을 흔들어대면서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질러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새를 해코지라도 하는 줄 알겠네.”


기가 막힌 라무스가 자신이 탄 말을 쓰다듬으며 불평했다. 거친 콧김을 내뿜던 말은 진정이 좀 되는지 라무스의 손길에 얌전히 목을 기댔다.


라무스는 천천히 말을 다시 출발시키고는 페로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폈다. 페로는 라무스의 얼굴에 달라붙다시피 해서는 그의 시야를 막아 버렸다. 라무스는 고개를 이리저리 틀면서 겨우겨우 느리게 전진했다. 계속 이대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말에서 내린 라무스가 짐바리를 뒤적거리더니 한 걸음쯤 앞의 허공에 딱 버티고 있는 새를 불렀다.


“작은 새야.”


네가 계속 이렇게 나오니 나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구나.


순식간에 라무스는 페로를 낚아챘다. 페로는 그의 손에 있던 자루 속에 갇혀 버렸다. 라무스는 자루를 짐바리에 묶고 말을 달렸다. 페로는 자루 속에서 몸부림치며 기묘한 소리를 냈지만 더 이상 라무스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한참을 발악하던 페로가 마침내 체념했는지 자루가 움직임도 소리도 없이 조용해졌다. 라무스는 손을 뻗어 자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널 해칠 생각은 없어.”


자루가 조금 부풀었다가 잔잔하게 내려앉았다. 마치 한숨을 쉬는 것처럼.


라무스는 가파른 언덕을 지나 경사가 완만한 숲으로 들어섰다. 곧 해가 지겠지만 하늘이 이대로 맑아서 달이 떠 준다면 이 밤 안으로 고래 산맥을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라무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언제 어디서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먹장구름이 저 위에서 석양빛을 가렸다. 라무스는 구름 아래를 지나 말간 하늘 아래로 나가려고 말을 더욱 빠르게 몰았다.


이내 굵은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주위가 어둑해지고 빗발은 삽시간에 숲속을 가득 메웠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 숲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라무스도 말도 방향 감각을 잃었다. 라무스는 한참을 헤맨 끝에 가까스로 비스듬한 바위벽 아래를 찾아 들어갔다.


잠시 피하면 될 소나기인 줄 알았던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해까지 완전히 지고 나면 장대비와 어둠 속에 꼼짝없이 고립되는 것이다. 머리 위로 들이치는 비는 피할 수 있지만 바닥에 빗물이 흥건한 이곳은 길게 머물 곳이 못 되었다.


하늘이 완전히 구름으로 뒤덮였다. 라무스는 나무 꼭대기에서 봐 두었던 지세를 떠올렸다. 몇 채의 오두막이 있는 집터를 본 기억이 났다. 여기서 북쪽으로 얼마간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라무스가 가던 방향에서는 후진인 셈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나서야 했다. 라무스는 후드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페로가 든 자루를 망토 속으로 안았다. 그는 말고삐를 잡은 채 걸어서 빗속으로 나갔다. 옅은 어둠과 빗줄기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한참 만에 라무스는 오두막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라무스는 페로가 든 자루를 부드럽게 도닥였다. 비에 옷이 흠뻑 젖었는데도 춥지 않은 건 그 새 덕분이었다. 새는 따뜻하고 말랑했다.


해가 졌는지 숲이 캄캄해졌다고 느끼던 그 순간 멀리서 깜빡이는 빛이 보였다. 라무스는 안도했고 불빛에 닿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마침내 오두막이 있는 곳에 이른 라무스를 시끄러운 소리가 맞았다. 거위 우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라무스에게 안겨 있는 자루 속 페로가 길고 가는 소리를 내자 거위들은 꽥꽥거리던 부리를 딱 닫더니 우리 구석으로 몰려가 숨을 죽였다.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라무스가 문을 쿵쿵 두드렸다.


“계십니까?”


“누구요?”


문은 열리지 않고 질문만 날아왔다.


“산맥을 넘어가던 사람입니다. 말과 함께 비만 피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거 이상하다. 거위들이 왜 조용해졌지? 우리 거위들한테 무슨 짓을 했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위들은 무사합니다.”


라무스가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라무스의 눈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틈새가 쓱 열리더니 두 개의 눈이 라무스를 올려다보았다. 라무스는 자신이 위험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후드를 벗고 얼굴을 숙였다.


keyword
이전 04화64. 꿈과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