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를 부탁해

by 화진


현미경으로 식물에게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문비는 즐거웠다. 꽃과 줄기 같은 것들을 제물대 위에 놓고 확대하여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신비라는 게 실감났다. 모두가 제각각 우주를 품고 있었다.


지금 문비가 현미경을 통해 보고 있는 건 꽃마리다.


꽃잎은 미세한 물방울들의 집합체처럼도 보이고 눈雪으로 빚은 것처럼도 보인다. 줄기는 가시가 빼곡하지만, 유연해 보이는 반투명의 가시라서 오히려 애잔하다. 기공은 동글면서 도톰한 것이 투명하게 오므린 입술 같다. 입술도 천진하고 다정한 말만 할 줄 아는 입술이겠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문비는 은성의 안부가 궁금했다. 산책 다녀오던 길에 마주친 꽃마리가 오늘따라 마음을 붙잡은 것도 어쩌면 은성이 연상되어서인지도 몰랐다.


꽃마리의 꽃은 하늘색이고 작다. 아주 작아서 지름이 2밀리미터 정도다. 작아서 눈에 띄기 어렵지만 일단 유심히 바라보게 되면 그 귀염성과 청초함에 놀라거나 반하고 마는 꽃이다. 그러니까 은성을 닮은 꽃이라고, 문비의 얼굴에 온기가 어른거렸다.


꽃마리는 남교수가 뽑은 목록에는 없는 식물이니 문비의 개인 작업에 속했다. 문비는 지금 당장 쓰일 곳이 없는 작업도 가끔 했다. 괜스레 끌리는 식물이나 쉬이 만나기 힘든 식물이 포착되면 관찰하고, 표본을 만들고, 도해도와 생태화를 그려 놓는 것이다. 좋아서 하는 거였다.


한참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뜻밖에도 한실댁 할머니였다. 얼떨결에 번호를 저장한 건 오래 되었지만 막상 통화는 처음이었다.


“문비학생?”


대학을 졸업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이 마을 사람들에게 문비는 여전히 ‘문비학생’으로 통한다. 변화라는 것이 극히 더디거나 잘 없는 산골 마을이다. 호칭이든 다른 무엇이든.


“네,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끼리는 전화로 용건을 전하는 법이 없다. 할 말이 있으면 주로 직접 찾아갔고, 간 김에 막걸리 한 잔씩 나누거나 밥을 얻어먹거나 TV 드라마를 함께 보거나 하는 것이 거의 관례였다.


그러니까 전화를 걸었다는 건, 그것도 문비에게 걸었다는 건 뭔가 급한 일이 있어서일 가능성이 컸다.


“오늘 우리 설기를 그 별장 저 위의 옛날 절터에다 매어 놓았거든. 거기 우리 설기가 좋아하는 인진쑥이 많아서. 몇 시간 더 뜯어먹게 뒀다가 네가 설기 챙겨서 우리 집에다 좀 데려다 놓아 달라고 전화 했다.”


“아, 네. 그럴게요.”


설기는 한실댁이 애지중지 기르는 흰 염소의 이름이다.


“내앞댁이가 콩밭 가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안 접질렸나. 내가 읍내 한의원 데려가서 침 좀 맞힐라고. 흰돌댁이는 아랫마을에 품일 하러 가고 없고. 우리 설기 낯가림이 심하니 살구나뭇집 총각한테는 부탁 못 하고. 이럴 때 네가 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설기가 한실댁의 식구가 된 것은 오 년 전의 여름이었다. 방학을 맞아 엄마와 채선이모네와 함께 이곳에 와 있던 문비는 희고 연약한 새끼 염소에게 홀딱 반해서 매일 한실댁의 집을 들락거렸다. 안고, 보듬고, 우윳병 들고 우유도 먹여 주고.


그 뒤로도 매년 한두 차례씩 보아 온 덕분인지 낯가림깨나 하는 설기도 문비는 용케 알아보았다.


“네, 설기는 걱정 마시고 내앞댁 할머니랑 조심히 다녀오세요.”


“오냐, 부탁한다.”


통화를 끝낸 문비는 다시 연필을 잡았다. 스케치를 다 끝내고 고개를 드니 창 밖 하늘이 희뿌연 구름에 덮여 있었다.


이제 그만 설기를 집에 데려다 주는 게 좋을 듯싶다. 설기는 비 맞는 걸 싫어했다. 설기는 가리는 것이 꽤 많은 가탈스러운 염소였는데 그게 다 주인인 한실댁 닮아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주장했다.


설기가 있는 곳까지 가자면 약 십여 분 걸린다. 도로를 따라 골짜기 안쪽으로 올라가다가 산을 조금 타면 나오는, 문비도 익히 아는 장소였다.


산허리에 비교적 편평하게 자리 잡은 옛 절터는 잡목이 드문드문 자라는 가운데 풀과 인진쑥이 무성했다. 문비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참나무에 매인 줄만 풀숲에 떨어져 있고 정작 설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설기야, 설기야.”


설기는 목줄에서 목을 빼어 사라졌다. 산짐승이라도 가까이 지나갔거나 다른 무엇에 놀랐거나 했을 테다. 한실댁은 설기를 숲에 매어 놓을 때면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부러 목줄을 느슨하게 해 두었다. 언제라도 목을 목줄에서 빼어 달아날 수 있도록.


“설기야, 어딨니?”


목줄을 벗어나도 설기는 멀리 가지 않는다. 익숙한 목소리가 부르는 걸 들으면 반드시 돌아온다. 그 사실을 아는 문비는 주위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계속 불렀다.


“설기야, 아이고 설기 거기 숨어 있었어?”


저만치 칡덩굴 뒤에서 뿔 달린 흰 얼굴이 빼꼼 비어져 나오는 걸 본 문비가 줄을 들고 가만가만 다가갔다.


“우리 설기, 문비 언니 알지? 누가 우리 설기를 놀라게 했을까?”


설기가 매애애 대답하면서 주뼛주뼛 문비 앞으로 목을 내밀었다. 문비가 설기 목에 목줄을 채우고 달랬다.


“이제 괜찮아. 집에 가자. 설기네 집…….”


설기네 집, 하다가 갑작스레 목이 메었다. 설기에게는 설기네 집이 있는데 문비에게는 문비네 집이 없다는 지각 때문이었다.


집이 있기야 있었다. 엄마가 남겨 준 아파트. 그러나 엄마가 세상에 없는 지금 그 아파트는 물리적인 의미의 집일 뿐 정서적인 의미에서의 집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집은 문비가 소유한 집일 뿐 문비네 집은 아닌 것이다. 함께 살고 기다려 주는 누군가가 없는 집이니까.


문비는 설기의 줄을 잡고 쭈그려 앉아 눈물을 뚝뚝 떨궜다. 멀뚱멀뚱 바라보던 설기가 칡덩굴 속에서 나와 문비 옆에 섰다. 설기의 몸과 문비의 몸이 닿았다. 둘은 잠시 그렇게 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생명 대 생명으로서의 교감. 차츰 눈물이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