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연수 Nov 19. 2024

도시가 『희망』을 일구는 터전이 되려면

                     

                                

“1985년 6월, 초여름에 접어든 태양은 짙푸른 하늘 밑 항도(港都)에 한가로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경인전철의 종착역인 하인천역에서 내려 중국인촌 골목의 가파른 언덕을 넘으니 자유공원 자락을 따라 직할시청 건물로는 퍽 작고 낡아 보이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듯한 근대양식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언덕바지에 서서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닦으며 눈을 돌리니 오른쪽으로 탁 트인 바다와 인천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양 최대의 도크항에 정박해 하역을 서두르고 있는 덩치 큰 화물선이 국제항구 도시임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생면부지의 부산에 있는 경남도청 근무를 자원해 부임한 이후 7년여 만에 집 근처로 와서 그런지, 새로운 임지여서 그런지 약간은 흥분되고 설레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가슴에 가득 차는 희망과 의욕의 느낌, 그것이 마약처럼 온몸과 정신을 달콤한 나른함으로 적셔 왔다.”  

    

필자가 인천에 첫 부임하던 날의 느낌을 졸저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어 놓은 남자(2008, 한국경제신문 한경 BP)’에서 회상한 부분입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인구는 130만에서 300만으로, 시역은 202㎢에서 1,010㎢로, 시청도 구월동으로 이전했습니다. 당시 경인고속도로, 경인국도, 수인산업도로 등 3개에 불과하던 외부와의 연결도로도 고속도로 6개를 포함하여 12개가 넘고 지하철도 2개 노선이 운행 중입니다. 무엇보다 인천의 발전을 견인하고 대한민국의 긍지와 미래가 되고 있는 인천공항과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그리고 인천대교 등 전국의 다른 도시가 따라올 수 없는 눈부신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제2의 도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당시 서슬 퍼런 수도권 억제정책과 서울의 그늘에서 고사되어 가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인천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중앙정부의 시혜가 아니었고 인천이 중심이 되어 인천 스스로가 각고의 몸부림 속에서 일구어낸 결과였기에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자랑스러운 발전이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였는가,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어 주고 있는가, 

이 도시에서의 삶이 덜 힘겨워지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도시의 발전과 함께 희망이 자라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부정적입니다. 

그것은 외형적인 발전이 내실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발전의 목표, 즉 “왜 발전을 해야 하지?”에 대한 답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는 도시경영 본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도시경영에서 지나치게 또는 생각 없이 수치에 집착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수치에 입각한 개발의 척도가 치적의 모든 것을 대변해 왔습니다.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 자동차는 몇 대가 많아졌고 지역총소득은 얼마나 증가했으며 도시의 면모를 해치는 불량지역은 몇 개나 재개발하였는지 등 수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시경영은, 도시의 성장만을 탐해서는 안됩니다. 

인구의 증가에 따른 과밀이 가져올 불편과 불안을 보살피고, 자동차의 증가에 따르는 체증과 사고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며, 소득증가의 내용을 살펴 그에 걸맞은 도시 서비스의 수준과 질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안과 함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보살핌의 수단도 강구하고, 획일적인 재개발의 그늘에서 눈물을 흘리는 약자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치적으로 삼아야 하고 평가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양적성장의 한계에서 질적 변화를 통하여 위기를 벗어나고 성숙해질 수 있는 길입니다. 

‘수치’의 함정에서 벗어나 ‘가치’의 세계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러나 도시경영에서는 ‘가치’의 세계로의 진입도 또한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땅히 ‘정취’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다른 배경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모여서 사는 곳이 도시입니다. 

도시가 매력을 가지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도시를, 고향과는 다른 의미의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과 긍지를 가지게 하는 요소가 그 도시의 정체성일 수 있는 정취적 요소입니다. 

더욱이 나날이 상실되어 가는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 방법은 ‘정취’를 심고 가꾸는 길이 그 해답의 하나입니다. 

파리에 사는 시민들의 긍지는 파리 그 자체이고 파리는 문화예술과 다양성의 정취가 도시 전체에 녹아 있습니다. 

뉴욕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도시입니다. 뉴욕의 정취는 빌딩의 숲 속에서 잉태되는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로움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가치와 정취는 무엇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