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슴발지렁이 Mar 01. 2024

"중력과 부력이 수평한 순간을 느껴보세요."

당기는 힘과 미는 힘, 대부분 나는 어느 한쪽에'만' 있다.


"물 위로 머리를 들면 중력의 힘으로 몸이 가라앉고
고개를 숙이면 부력의 영향으로 몸이 수평하게 떠올라요.
그걸 느껴봐요!"          
                                     2019.12.6. 수영 일기의 첫 줄 



중국 우한에서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는 우한 폐렴으로 불렸는데 그만의 이름을 얻었고 이제는 평생 공존해야 할지 모를 것이 되었다.

수영을 시작한 것 역시 딱 이즈음이다. 별 의미 없이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어쩌면 내가 평생할 어떤 것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늘 수영을 가지 않았다.  

2019년 12월 첫 수영 수업 이후 코로나로 드문드문 강제 또는 자발적 휴식기를 가지긴 했지만 최근 1년 9개월은 연강하고 있다.      


평생 수영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수영 자체의 쾌감  

둘째. 루틴으로 인한 자동반응

셋째. 살아냄의 방법을 익히는 묘한 자기계발의 채찍이자 현실위로        


이유의 경중을 따진다면 후자로 갈수록 엄청난 가중치를 가진다.      


한 번의 수영은, 정말이지 커피처럼 수혈해 주면 좋은

효과가 있으면서도 어쩌면 플라시보 만땅인 영양제고   

장기적으로는 갈고리 채찍을 맞으면서도 그걸 낚아채 반사를 시전 할 수 있는 맷집과 공격 가능한 상태를 키우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참으로 현대인답고도 도시인다운 마조히즘적이고도 사디즘적 발상이다 싶지만..

그 언젠가 <나는 자연인이다>의 뉴비가 되자면 <나는 이생망 도시인이다>의 주인공일지언정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 수영은 살풀이고 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쓰기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나 같은 당신이라면...  

둘째. 수영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때요?      




수영을 시작하기 한 달 전, 2019년 11월.

직장으로는 세번째던 회사가 다른 회사로 매각되며

매각 자산의 일부로 나의 포함 여부를 논하던 때, 난 선수 처 퇴사를 질렀다.      


인수처의 대표는 자본시장에서 이름난 M&A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언제든 옮겨간 그 자리에서 나 또한 손쉬운 처분대상이 될 거란 귀납적 확증이 확고했다.

그의 일원이 된다는 건 그것에 대한 수긍과 복종을 각오한, 스스로 음독제를 삼키고 ‘시한부’ 딱지를 붙인 채 ‘월급노예 OO호’로 차꼬에 목을 묶는거나 다름없다 생각했다. 지독한 현실인식과 과대망상 사이에서 비져난 수치와 분노는 별다른 땔감 없이도 거칠게 탔다. (애초에 어디서나, 언제나, 나는 시한부 월급노예지만 내 안에 급은 있었다. 이거야 말로 무슨 망상 같지만!)       


당시 내 주머니 처지는 누구 앞에서라도 납작 엎드려 마땅한 불행한 처지였으나

다행히 나 하나 건사하면 됐기에 쉽게 죽기야 하겠냐는 배짱이 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이라 말하는 이유와 '불행'이라 말하는 이유가 바뀌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이미 이 직장에서 너덜해질대로 너덜해져 1년 전 퇴사를 지른 적이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위의 모든 것은 퇴사하고야 말

'드디어 결정적 건수'를 잡고야 만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로서, 퇴사할 이유 완성, 자기 합리화 완료!      


하지만 당시 회사(피인수처)의 대표는 이런 나를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했고 프리랜서로 근무하던 분과 포지션을 스위치 시켜 '밥벌이의 숭고함'을 쉽게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정이 나가겠다면 갈 곳이라도 찾아 놓고 떠날 기회를 준 것이다.

직속선임은 "이런 때 운동이든 미뤄둔 논문을 쓰든(당시 대학원 수료 4년 차) 다른 걸 해보는 건 어때?"하고 권하셨다.       


그래서 시작한 게 수영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 해 마지막 날 나는 기어이 프리랜서직마저 관뒀다.

갈 곳을 찾아 두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수영은 나의 거의 유일한 일과 중 한 부분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로 수영장 문마저 닫혔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의 나쁜 사례가 있다면 그건 나다.   

이때 내나이는 30대 중후반, 자산은 1억 한참 미만이었다.

(구체 자산을 밝힐 수도 없을 수준이라 생각해 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이런 꾸준한 합리화로

이미 두 번의 직장을 때려쳤고 세 번째 직업을 바꾼 차였다.    

그리고 이후 나는 또 세 번의 직장을 거처 네 번째 직업 가졌다.


잠시 프리랜서 생활을 했던 때가 있는데 프리랜서를 빼고 직장으로만 치면

총 6번의 이직, 평균 근속연수는 9.5‘개월’. (이직 횟수*근속 연수 = 총 근무경력)

때때마다 철저히 가오 따지며 살아왔는데 총체적으로 가오less상태다.     




‘부력과 중력의 그 중간지대의 평온함을 나는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둥실방실 떠오르는 사람들 사이에 멀뚱히 서

나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그 모습을 내려봤다.


온갖 고집과 자존심을 제 뜻대로 부려 살면서도  

그게 고스란히 어떤 결과로 돌아와 나의 불만과 불안을 만들었다.

나는 당기는 것이 아니면 미는 것

그 어떤 하나의 힘 밖에 존재하지 않는 곳에 산다.       


여기서 안타까운 건 분명 두 힘의 존재를 알면서도

어느 한 가지 힘을 쓰는 순간엔,

어느 한 힘에 말려 들어간 순간부턴,

다른 힘의 존재는 깡그리 잊고 만다는 거다.  


당김과 밂이 어떻게 동시적일 수 있지?     

그래서 난 항상 질식해 죽을 것 같고,

이렇게 겉돌다 튕겨 나가 소멸되고 말 것 같은 순간에만 있다.       


그런데 그 중간 지대가 순간의 찰나일지언정,

그 공간이 얇디얇은 초마이크로 두께일지언정,

존재한다. .... !!   


힘쓰지 않고 떠오를 수 있는 공간이, 순간이 있다는 걸.

이 날 선생님의 말은 나를 조금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 날부터 이런 순간을 메모로 남기기 시작했다.        




수영을 할 때 떠오른 몸을 인식한 채로 머무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순간의 감각은 수영을 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게 된다.

마치 우리가 삶을 살다 경험하는 어떤 우주 대통합의 순(식)간처럼.

(정확히는 인지하는 게 순간일뿐, 그 힘은 항상 있다.)   

    

내 어떤 목적을 지우고

힘을 더 할 바 없을 때..

나를 위협했던 것이 합심해  

나를 살리기도 한다는 걸.


이대로 가라앉아 죽을 리도

물 밖으로 영영 튕겨 나갈 리도 없다는 걸 마침내 경험적으로 얻었다.    

요령만 생기면 그 순간을 더 자주 만들 수도, 연장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기억으로, 스스로를 물 아래로 눌러 넣었다 튀어 올라 숨을 뱉는다.      


딱 한 모금의 숨만큼 만한 나의 간신한 용기에...  

우주의 큰 도움을 구하며!     


첨벙-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