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슴발지렁이 Mar 02. 2024

“저항력을 느껴야 추진력이 생겨요.”

저항과 추진의 지속은 탄성력에 있다는 걸 잊지 말구요.  


"몸이 저항력을 느낄 정도여야 추진력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허벅지가 터질 듯이 발차길 해야 해요."     

                                                     2019.12.06. 수영 일기 중          



수영에서 저항을 가르는 건 발차기와 손 젓기다.

 

먼저, 발차기는 지금까지 지적 받는 것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애초에 부족한 근력 탓이다.   

발차기가 도무지 늘질 않아 PT나 헬스로 근력을 만들 필요가 있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수영 하나로도 버거워 그럴 의지까진 내지 못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손을 쓸 수 있게 되면서는 발은 적당히 차고 질질 끌면서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자유형을 할 때면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확연히 몸이 물에 잠긴 채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정쩡한 롤링(물 밖으로 손을 들 때 물에 닿은 팔 쪽으로 몸통을 틀면서 손으로는 물을 밀어주는 자세)까지 곁들어져 난감한 상태다.  

           

경험상 평영은 특히나 발차기가 전부인데 이때 나는 수영을 관둘 뻔 한 고비를 겪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ed)냐면

내가봐도 선생은 위대하다 싶을 정도로

끝끝내 발랄하고 우렁차게 “회원님, 회원님, 할 수 있어요. 아잣!” 하시던 성생님이...

하다.. 하다...  

(오죽) 하다...

어느 날, 끝내! 예고도 없이 본인이 나서 내 반을 다운그레이드 시켜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ing)냐면

핀(오리발)수영 고급반에서 이번 달 수업 시간을 조정하면서 얼결에 평영반으로 왔는데

“회원님 아무래도 킥 판 잡고 다시 연습해야 겠는데요?... !!” (쿠쿵 -- !!!)

그리하여... 선생님의 진지한 조언을 받잡아 킥판 잡고 평영 발차기 무한루프 중이다.        


결국, 앞으로 가자면 뭉개고 눙치며 어떻게든 앞으로 갈 순 있지만

근간을 뭉갠 채론 어느 단계 이상은 가기 힘들다.           


(둘째, 최소한의 발차기가 되어야 뭘 할 수 있지만 손을 쓰기 시작하면 손도 큰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다른 편에서 다뤄 보겠다.)




수영 첫 단계의 강습 내용이란 건

풀 귀퉁이에 앉아서 발차기,  

풀 귀퉁이 잡고 물 안에 들어가서 발차기,  

그러다 킥판 잡고 발차기다.    

거기에다 나는 단독 풀로 옮겨져서까지 발차기하는 시간을 거쳤다.     

  

키즈용 풀에서 혼자 물을 차다 한기로 몸 떨며 내 꼴의 형편없음을 인지하게 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다 고개 돌려 저쪽 풀의 물로 뛰어 들고 가르는 수영인들의 힘차고도 멋진 광경을 김 서리고 물 찬 수경으로 보자면 아득하고 흐릿한 게 이래저래 그야말로 꿈처럼 느껴진다.

     

여기 내 꼬라지 만프로 인식하는 순간, 저쪽 모습 꿈처럼 바라보며 망중한(‘망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의 한 가운데서 느끼는 한기’)을 때릴 때면 생각의 끝은 정해져 있다.  

    

'이정도면 때려 쳐도 핑곈 아닌 거 아냐?!...'




"사슴발아, 이럴 땐 엉덩이 달싹 대지 말고 그냥 꽈악- 눌러 앉아.

어차피 엉덩이 달싹 댄다고 가시방석 달라지지 않아.

그냥 눌러 앉아 피 흘려.

그리고 그 가시방석 꽃방석으로 바꿔 앉는 거야."

      

나의 첫 직장, 첫 선임의 조언.   

이 말을 들은 진 십 수 년 전인데  

‘피 흘려’란 조언의 유효함과

‘가시방석이 꽃방석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갈등은 지금도 풀지 못한 상태다.

정확힌 ‘내가’ 이걸 풀 수 있는 인물인가가 더 큰 의구심이다.

그래서 이 말은 잊지 못할 내 인생의 말이자 질문으로 항상 남아 있고.. 남을 거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피를 안 흘렸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래도 피를 적잖이 흘린 축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는, 진짜 피를 흘렸다. 2020년 나는 한 달 사이 응급실에 두 번을 가 호르몬 기관 두 곳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그 중 한 곳은 암일 수 있단 진단을 받아 수술했고 지금은 두 곳 다 팔로우 중이다.

다음으로, 피의 은유가 눈물과 땀이라면 이것도 오지게 흘렸다. 어디서 그 많은 눈물이 마르지 않고 날 수 있냐할 만큼. 특히나 눈물은 항상 갓 터진 유전마냥 '솟구치는'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타인에게 일중독자 내지 완벽주의자란 소리를 꽤 들어왔다. 그러다 죽는단 소리도. 참지 말란 소리도. 더는 그만 참아도 된단 소리까지. 정말 많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참고, 참고, 참아서!

다행히, 5년간 6번‘만’ 이직할 수 있었다!!!! (훗-!)      


처음에는 가시방석을 눌러 앉으며 언젠가의 꽃방석을 생각했다.

나중에는 가시방석을 눌러 앉으며 이 상태 그대로 난 뒈지고 말거라 생각했다.

처음과 나중 할 것 없이 변함없는 올곧음으로 나는 가시방석을 향해 정면 수직낙하했다.      


그런면에서 나는 저항감에 굴하지 않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번번이 번아웃했고!   

그래서 나는...? 완전히 경로이탈했다!!   

  

어떤 결국은, 앞으로만 가겠다고 제 수준과 상대 수준 깡그리 무시하면

‘어느 단계’는 커녕 시작한지 얼마 안 돼 KO 먹을 수 있다.      




"부러진 회초리는 힘이 없잖아요. 그러면 안 돼요.  

구부러져도 꼿꼿해야 합니다. 발차기는 탄성력이 중요해요!"    

                                              2019.12.09. 수영 일기 중

      


몸이 살과 피로 이뤄져 있고 살을 뚫을만한 무언가의 충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피는 살 밖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내 다리가 관절 없는 통째 한덩어리 뼈가 아닌한 휘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순살로 가시방석 다짜고짜 눌러 앉다간 과다출혈 쇼크로 한방에 갈 수 있다.  

그러니, 휘지 않는 다리로 물을 차자면 두세번이면 거기서 꼬르륵- 일거다.   


그러니!!

'꼿꼿해야'하는 게 방법이 아니라 ‘구부러져도’가 방법이기도 하단 걸.  

이건 내 상태에 대한 진단이라기보단

되려 내가 계속할 수 있는, 내 수준에 더 어울릴 살아내는 방법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쳤다.


구부러지기도, 꼿꼿하기도 한 것 모두가 탄성을 말하는 거라면 그건 그래도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내 유일한 용기가 되었다.   


("다리 펴고!!.. 펴고!!, 펴고!!, 다리이~~~ 펴고~~~ 오!!!!"만 듣던 중에 그게 ‘구부러져도’란 말씀을 안 해 주셨다면.. 곧이곧대로인 나는 발차기에서 관뒀을거다.)




지금 내 단계가 어느 단계인진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근간을 뭉갠 채 어느 단계 이상을 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느 식으로든 이 그라운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도.  

그래서 지금 난, 이 두 가지가 엉겨 몹시 괴로운 상태란 거야말로 확실히 알고 있다.  

다만 어떤 과정과 순간에도 ‘탄성’만은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걸.  

이제는 그거면 하나면 된다는 생각을 최후 보루 삼은 채 나는 언제나처럼 같고도 다르게 필사적이다.     

              

그런 탄성의 힘으로      

하다...

하다...

하다 보면 ....

어쨌든!! 하게 되는 난생 신기한 경험을 비로소 수영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어쨌든!!, 난 평영을 한다! (훗-!)

(바로 이게 중요한거라구요!! 하고 싶은데... )

...

..

(여보란듯) '설마 여기서 끝난 줄 알았니?' 하는 단계를 만난 게...  

지금의 나는, 괴롭기보단 반갑다.

경로이탈이 경로였던 나로선... 참,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중력과 부력이 수평한 순간을 느껴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