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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발지렁이 Mar 31. 2024

“호흡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갈 수 있어요.”

‘음-’ 을 꼭 하셔야 합니다! 잊지 마세요!!


“발차기, 손 젓기 다 이상해도

호흡만 무너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갈 수 있어요.”

                                          2019.12.19. 수영 일기 중           


내 수영 일기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호흡에 관한 것이다.

목과 팔과 다리를 가누지 못하고 허우적대던 시절엔 호흡이 안 돼 답답해하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숨을 트일 수 있을까에 대한 걸로 호흡에 대한 언급은 빈번한 편이다.    

정확히 하자면 호흡만 문제겠냐만 호흡이 안 되면 뜬 채로 가다, 바닥에 섰다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호흡을 관리하는 건 수영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다.      


수영의 호흡법은 ‘음- 파!’ 다.

‘음-’ 은 물 안에서 길게 코로 뱉는 숨을 말하고

‘파!’는 물 밖에서 터지듯 입으로 뱉는 숨을 말한다.

(‘파’는, 내뱉는 걸 묘사하는 의성어 같은데 이때의 숨은 정확히는 내쉬며 들이마신단 의미까지 함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파’는 단음절의 간명함은 있지만 그리 사실적이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은 묘사라 생각하는 데 내가 알고 있는 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수영을 할 때는 물에서도 숨을 뱉고 물 밖에서도 숨을 뱉어야 한다.

문제는, ‘파!’는 생존에 직결된 자동반사에 가까운 숨으로 당연하고도 자연스럽지만

‘음-’ 하고 물 안에서 길게 숨을 뱉는 건 생존을 생각자면 어쩐지 본능을 거스르는 것 같기까지 하다.

시작은 여기에서부터였을 거다.      


‘음- 할 필요까지 있어?!’...       


그리하여 나는 꽤 오래간 물 안에서 ‘음-’을 안 했다.      

먼저는, 수영장 물이 잘 정화한다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오염된 물이 아닐 뿐 깨끗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이 뱉어내는 건 물론이고 그로부터 벗겨지고 떨어져 난 것들의 진탕인 초대형 탕(pool and (pot or soup))에서 가능한 코와 입을 닫아 두고 싶었다.      

다른 하난, 물 안에서 숨을 뱉는다는 공포심과 부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거다. 초창기 일기를 보면 숨쉬기가 안 돼 고생하다 ‘숨을 참다가 몸이 떠오르는 그 순간, 숨을 뱉는다’란 기록에는 뭔가를 체득하기까지 한 기쁨까지 묻어 있다. 그 덕분에 이후로 난 더 이상 물 안에서 숨을 쉴 필요가 없어졌을 거다.      


나름 이성의 합리와 심리적 기전에 따른 몸의 합리에 따라 나는 더 이상 물 안에서 숨을 쉴 필요를 모르게 되었다.        


...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OTL      



      

사주를 믿는 건 아니지만, 사주 탓인지 난 화가 많다.

거기에다 마음은 약한 편이고..

‘원수도 사랑하라’를 가르친 분을 참 존재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위(↑)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사주로 시작해서 개신교도를 밝히는 아스트랄한 정신머리를 갖고 있다.      


이런 탓인지.

대체로는 나는 화가 난 채로도 세상 쿨 한척 굴고 집에 와선 이불 뒤집어쓰고 엉엉 우는 스타일이다.

‘너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그러다 다박다박 따지기라도 한 날은 또 그게 속상해 집에 와 이불 뒤집어쓰고 엉엉 우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넌 대체 나한테 왜 그러고.. 난 대체 왜 이러는 거냐구..’      


어쨌든, 타인단죄와 자기정죄가 홍수처럼 터진 후자와 같은 날은 마음과 몸이 침대 안에서 더더 바사삭한 가리가 되어 눈물로 떡진다.      




“아니.. 그렇게 힘들어요?”      


50m 한 바퀴(25m 레일 왕복)를 돌고 와선 들짐승처럼 가슴 펄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나를 선생님은 당혹스럽고도, 웃기고도, 뻘하고도, 고놈 귀엽네 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보곤 했다.      

(말로 옮기자면 '얘는 심각하게 못하지만, 감동스럽게도 노력은 하고 있어!!' 정도일까?..)


이땐 몰랐다. 선생님은 더 몰랐을 게 당연하고.

그저 우린 내 체력이 형편없어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하고... 계속하다...      


마침내, 접영으로 단계가 넘어가며 나는 비염을 얻었다.

접영을 할 때면 신기하게 코가 아찔하게 매웠다.

접영으로 레일을 돌고 올라오면 코 안에 콧물도 같이 돌았다.  

수영장을 다녀온 다음날 오전 동안은 맑은 콧물과 재채기로 정신을 못 차렸다.        


“코 안 매우세요?”

‘코가 왜 맵지?’ 하는 부답의 어깨 으쓱-

“부쩍 물이 더러워진 것 같지 않아요? 맛도 그렇고..”  

“음… … 그렇긴 해요.”      


이때도, 몰랐다.  

비염이 생긴 건 수영장 수질관리가 안 돼서라고만 생각했다.




화를 터뜨리고 나면 더 해지는 우울감과 사회화 덕분에   

난 어느 때고 참는 데에 익숙해 갔는데..

문제는 돌연 ‘욱!’이 발동한 어떤 날,

난 세상 본 적 없는 또라이가 되고만다.

경보나 경고는 없다. 오직 ‘FIRE' 버튼 하나만 작동할 뿐.


“신이시여, 나에게는 이 자를 사랑할 능력이 없나이다아 ~~~~ !!!”      


세상 다 받아줄 것처럼 굴다

세상 다 박살낼 것처럼 돌변!


그래서 나는 살면서 몇 사람에게 아주 재미난 싸움 구경을 시켜 드린 적이 몇 번 있다.  

사실상 나로선 봉인해 뒀던 내 본모습을 드러낸 게 맞을 테지만 나의 또라이 변신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충격으로 입틀막 하곤..      


“안 그러던 사람이 그래서 놀랐잖아...('덜덜..' 또는 '헐~' ← 실로 이런 분위기다.)”

오죽하면 싸움의 상대조차도 “앞으로는 절대 참지 마!!”라 할 정도일까.       


이런 탓에, 이런 덕분에의, 덕분으로...

사실상 나는 타인으로 인해 어떤 걸 날려 먹기보다는

스스로 몽땅 말아먹는 타입이다.

이러나저러나, 과정이나 결과나,

자기학대와 파괴에 능한 타입!        


“숨 좀 쉬어. 그렇게 해선 길게 못 해!!”      

잊을 만하면 듣고, 듣고, 또 듣게 되는 이 말을...

사실 난, 최근에 또 듣고 있다.  




“숨을 안 쉬는 게, 막는 게 아니라...

숨을 뱉는 게, 막는 거야.

그래서 음- 을 제대로 안 하면 비염이나 중이염이 생겨.”

                                               2023.9.23. 수영 일기 중      


수영을 배우던 초기, 강습을 쫓아가지 못해 수영강습 경력을 가진 지인에게 개인레슨이 가능할지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무슨 레슨비냐고 밥이면 된다했지만 서로 현생이 바빠 수업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 후 무척 오랜만에 번개로 지인을 만나 수영 실력 고민은 건너뛰고 (그 순간에는 왠지 모를 ‘나 좀 컸다..’ 하는 으쓱함을 느꼈던 것 같다.) 비염을 얻은 근황과 접영을 할 때면 코가 매워 죽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가….


마침내!!! 알게 되었다.

  

숨을 뱉지 않는 걸로 물을 막고 있다 생각했것만..    

숨을 뱉지 않은 탓에 내 코는 대신 물을 한껏 채우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가혹한 공격에 내 코는.. 콧물로 살려달라 울었댔다는 걸.

목이 터뜨린 건 ‘에이취!’인지 알았는데 ‘에이씨’였을테구.


그러고 보면 물 안에서 충분히 숨을 뱉어야 들이마시기도 쉬운데

뱉질 않으니 마시는 숨은 짧았을 거고.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에는 몸이 더 가라앉아

몸통을 띄워 올리는 데 쓰는 힘은 항상 더 들었던 거다!


뎅 ~~~ ~~~ ~!!!!

이게 전부랄 순 없겠지만

‘음-’을 안 한 여파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이때서야 알았다.         


“아니... 대체 이걸 왜... 지금에서야 안 거냐고요~~~~~!”      


완전 그럴싸했던 처음의 생각이...

수영을 오래, 잘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남이 니 숨통을 막는데.. 왜 너까지 네 숨통을 막아?!

제발 전처럼은 하지 마.”      


여기에 다 적을 순 없지만 나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걸 바로 쓸까도 생각했지만 담아두었다 언젠간 꼭 쓰겠다. 아, 그 탓으로 업데이트도 늦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단계를 지난 것 같아 이런 나를 아무도 나무라고 있진 못하지만

모두가 신기하리만치 한 입처럼 당부하는 한 가지는

안 하던 짓, 못 한다고 생각했던 짓 좀 하라는 것!

차라리 이럴 바엔 하던 짓의 반대 짓을 하라는 것!

그리하여 남이 날 숨 못 쉬게 할지언정 내가 내 숨 틀어막아선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관성 같은 생각의 방향을 '틀어쥐고 고쳐 잡으려 ‘무념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내 수준이란 건 이렇다.)

...      


그래서 이후, ‘-음’ 하는 습관을 고쳤냐 묻는다면...

습관처럼 안 하던 ‘음-’을 단박에 고치긴 힘들었다.

지금도 코에 통증이 없는 영법을 할 때면 무심결에 숨을 참곤 한다.  

반대로 접영을 할 때면 어떻게든 통증을 줄이려고

코는 팔팔 끓어오르는 물을 담은 주전자 주둥이처럼 정신없이 보골보골보골~~~

시야를 어지럽힐 지경으로 숨을 뱉어 조절이 안 된다.

...      


아무튼, 뭐가 진짜 문제인지 알았으니 다행이다.

그걸 잊지 않고, 조금씩 잘해보려 하니 그걸로도 됐다.


That’s ALL!!

습관처럼 쿨 한척 하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숨쉬긴…

그걸로도 됐다 할 수 있는,

사실상 전부다.

이건 꼭 기억해야 한다.

… 고 다짐하며 이 앙물며 숨을 틀어쥐진 말자. ㅋ


(*재밌게도 생에 중요한 걸 배우는 건 항상 이런식이다.

드디어 알았다하지만.. 알게 된 채로도 나란 존잰 그것들의 퇴행과 진보를 반복할텐데.. 어쩌겠는가. 계속해볼 밖에. 누적되다보면 저장값이, 디폴트값 되길 바라며. 다만 그로 인한 다른 오류가 없길 바란다.ㅎ)



*수영 그림을 그리고 싶단 생각에 5월께부터 화실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핀터레스트의 수영 그림'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모사하고 있다. 이 그림 역시 그 중 하나. (오일파스텔 & 색연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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