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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슬 Jul 09. 2024

Global friend(下)

외국인을 만나면 E가 되는 아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왜 그런지 나조차 모르겠지만, 남다르게 '외국어'를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하였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어렸을 때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영어테이프를 들으며 자거나, 엄마차에서 흘러나오는 영어동요노래들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엄마가 나를 어렸을 때부터 조기교육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말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한 만큼, 영어도 귀에 익도록 들었다. 나는 기억에 나지는 않지만, '전화영어'도 했다는 엄마의 말씀에 궁금증이 생겼다. 

"전화 영어를 하면 전화는 언제 왔었어요?" 


"아침 7~8시에 왔었을걸? 시간대를 정하고 그 전화영어학원 측에서 전화가 오는 거니까" 

"... 흐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께 질문을 드렸다.


"그러면 아침마다 거의 'Good morning' 또는'good'빼고 하는 말은 또 뭐 없어요?" 


"없지. 그냥 회화만 하는 거니까 5살짜리가 영어도 안 가르쳤는데 뭐 그 정도 하면 학습되는 거지."

라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표정은 당연하면서도 하는 회화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말을 내가 콕 집어내자 머쓱한 표정도 공존하였다. 하지만 그때 영어학원이나 영어유치원을 안 다녔으니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 7년 차 될 때쯤 '영어학원'이라는 곳을 다니고 시작했다. 거기에서는 영어이름도 지어서 원래 이름대신에 영어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이름은 'Jane'이었다. 뭐, 지금까지도 이 이름을 쓸 때도 많지만. 외국인 베스트프렌드 중 J 군이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도 나를 Jane으로 이름을 부르기에 꽤 애용하는 이름 중 하나의 이름이다. 

영어학원에서는 내가 병원 때문에 학원을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발음이 좋다.'또는 '영어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기도 했고, 이 이야기는 학부모인 엄마 귀에도 들어간 소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짝은 하나의 마케팅 수단인 '립서비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소식임은 분명하다.


평범하던 날, 그때 나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중국어를 배워야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중국어의 경우,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배우고 다시 교실로 복귀하여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뽀로로 같은 아니 조금은 <파이어족이나 욜로에 가까운 삶>을 지향했 소녀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필했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들 속에 '중국인' '중국어선생님'과 영어로 치면 ABCD를 한국말로 치면 'ㄱ,ㄴ,ㄷ,ㄹ'를 배우고 있었다.


중국어교실이 솔직하게 말하면 재미없는 편에 속하였다. 언어의 장벽을 거기서 느끼게 되고, '말이 안 통해'를 속으로 외쳐대며 수업을 들었지만, 이것은 내 미래의 도움이 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J군을 소환해 보자.


솔직하게 J군의 프로필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인가 모르는 내 내적인 마음 중 외향적인 면모가 있음을 알려줬던 사람이 J 군이었다. 지금도 그는 내가 좀 더 활동적인 일들을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했으면 나의 인생에 에너지를 줄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주곤 한다.


지금도 말 하지만, J군이 나를 공략하여 구워삶은 것도 무엇인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 순수하게 '친구'를 구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특유의 당돌함이 나를 끌리게 했다.

  

내가 싫었으면 'NO'하고 거절을 하거나 메시지를 씹었으면 됐을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그런 내가 그에게 매력이 느껴지고, 시간까지 정해서 '며칠 몇 시에 통화하자'라는 약속을 내가 먼저 잡을 정도였으니까.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J군은 'Jane은 외향적인 아이일 수도 있겠다라'고 나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람? 하며 나는 말했다. 


"낯을 가리지만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외향적인 파티 또는 모임활동을 활발하게 즐기는 것 같았어?" 


"엥? 어째서?"

 

"너는 의외로 적극적이고, 내향적이며 강한 아이이기 때문이지"

라는 말에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내가?" 하며 J군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는 그를 응시했다.

그는 나에게 미소를 지었고, 팩트로 반박불가를 나에게 호주에서부터 한국까지 로켓배송 마냥 빠르게 전달해 주었다.


"응 네가 만약에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안녕?', '요즘 어떻게 지내?', '응 난 잘 지내'같은 꽤 진부한 대화를 하고, 거기서 연은 끝났겠지. 그래도 너는 '적극적인 태도'니까 번역기라도 쓰면서 대화하는 것 아냐?"


팩트지만, 꽤 수줍은 느낌은 왜 느껴지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


'적극적 태도'라..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애묘가인 J는 고양이를 보는 반응하고 똑같다. 흠, 가끔 J군은 내가 고양이 같은 때, 또는 어린아이 우리나라로는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아이로 해석이 되지만, 도대체 J군은 생각이 깊고, 정성스럽게 배려하는 아이라고 한다. 


'음.. 글쎄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의미의 <적극적 태도>라는 표현이기에 정말 오묘하다.


주섬주섬 J군은 자기 침대에서 무엇인가를 갖지 왔다. 의외인 물건.


'엥 무슨 곰인형이람?'


"곰인형?"


"인형 안 좋아해?"


"아니 좋아해. 근데 인형이 침대에 있네?"


"내 애착인형이야 오래된 친구지."


"오호. 나도 있어."


나는 꽤 당당한 걸음으로 초등학교 3학년인가 선물로 받은 호랑이 옷을 입은 곰인형과 고양이 있는 인형을 보여주었고, J군 앞에서 걸을 때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모르고 캠을 켜고 같을 때, 그때 무슨 '잘못 한 아이'처럼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때 1도 잘못하지 않았다.'라고 말해주는 어른은 J군 밖에 없었다. 그것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너무 귀여워."

라고 이야기하면서 '너무 귀엽다 너랑 잘 어울려'라고 이야기할 때 '그런가?' 하며 굉장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너무 귀엽다'라고 할 때 서양인들의 그 특유의 말투는 잊히지 않을 만큼 굉장히 미국드라마를 보는 듯한 말투였다.


지금까지는 만날 수 없는 환경에서 '인터넷 펜팔'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하짐만, 대학 재학시절 '동화책'을 주제로 '책의 구성과 내용'등 문학적인 강의를 교양과목으로 선택하여 들은 적이 있었다. 역시나 강의실은 좁기 때문에 휠체어 대신에 보조기구를 이용하여 들어갔다. 그래도 많이 좁은 편이었지만.


눈이 그렇게 좋지 않은 아니, 의학적으로도 수술을 많이 한 편이라 좋다고도 할 수없고 <나쁘다.>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시력을 갖은 나는 주로 앞자리에 앉았다. 처음 보는 교수님이셨는데 나를 잘 챙겨주시면서 지나가듯 보면 마치 '조교수'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왜냐하면 대학교 재학생이라고 하기에는 교수님과 사이가 애매했고, 어림 짐작하여 조교 같아 보였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내가 불편하진 않는지 보는 분위기였다. 아침 연강이었기에 그녀도 졸린지 모르겠지만, 따뜻한 커피 홀더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그때..


교수님이 다가와 말씀하셨다.


"언니가 많이 챙겨줄 거야."

라는 말씀을 듣고, '그래서 나에게 말을 할 듯 말 듯했었나?'라는 의문 점이 들었었다. 그제야 그녀는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중국어로 대답을 했다. 물론 존댓말이었지만.

"안녕하세요.(아침인사로) 저는 다슬이고,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어요."

라고 이야기를 하자마자 우리는 중국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처음에는 중국어를 하는 내가 많-이 신기해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배운 중국어를 되살려서 대화를 하니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이이고,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하고 있어요."


인사 하나로 우리는 친해졌고,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위챗(한국으로 치면 카카오톡 같은 어플)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다가 정상을 찍은 일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교수님들 회의'에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닌 교수님의 호출이 있었기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다가 '제이'의 친구 D 씨를 알게 되었다. 그녀도 중국인이라서 뭔가 친해지고 싶은 욕구가 뿜뿜거렸다. 그녀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지만, '제이'처럼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본인의 모국어인 '중국어'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무슨 용기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D 씨에게 다가가서 자기소개를 하며 친해지자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D 씨 또한 '제이'같은 반응이었다.


'한국인여자아이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친해지자 그런다? 이것 참 신선한 충격이구만.' 이런 느낌이랄까. 바로 그 자리에서 D 씨의 전화번호, 위챗을 교환하였다. 풍문으로 듣기로는 중국인들은 '친하지 않은'이상 '위챗을 교환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 나에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회상해 보면 D 씨는 '제이'보다 더 수줍음이 많고 하얀 얼굴에 큰 눈 분홍빛 입술이었고, 짧은 머리지만 되게 곱상하게 생겼다. 


한참 친하게 지내다가 개인사정이 생겨서 다시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제이'와는 연락을 하고 있어서 '점심식사'를 같이하기로 하였다. 


"그새 중국어가 늘었네"


"언니는 한국어가 늘었네"

하며 꺄르륵 웃으면서 대학로 쪽 레스토랑으로 가게 되었다.


점점 언니는 한국어 대신 <중국어>를 쓰기 시작하여 나는 웃으며 '언니 왜 한국어 안 써'라고 이야기를 하니, 머쓱 한 표정으로 웃었다. 우리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지 않는 사람들이 반 이상이기에 주문을 하려니 아르바이트생은 '어떡하지.'라는 눈빛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저 한국인이에요."


"다행이다."

라고 이야기하자 중국어로만 대화를 하니 그래도 오해를 할 만했다.라고 생각을 하고 식사를 얻어먹게 되고 '고맙다'라고 몇 번을 이야기를 하며 오순도순 대화도 하였다. 급하게 가야 되는 일이 생겨 나는 마음을 담아서 커피 기프티콘이라도 보냈다. 참 웃긴 해프닝.


그 뒤로 중국드라마나 중국어 또는 일상 공유 등등 연락을 하였다.


그녀들도 내게 그랬다.


"다슬 너는 외향적이고, 친화력이 있는 아이라 배려심도 깊어서 더 챙겨주고 싶어."

라고 자주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때가 요새 그립다.



@write_das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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